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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Feb 06. 2020

망한 면접과 대기업 남편의
상관관계

면접을 봤다. 망했다. 대기업부터 소기업까지, 십 분짜리부터 면접 후 술자리 동석 요구까지, 그동안 유구히 쌓아온 망한 면접의 역사가 이 면접은 망했다고 속삭였다. 망했어, 망했다고!


이력서를 넣을 때까지만 해도 느낌이 좋았는데,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느낌은 면접 후 본색을 드러낸다.

  

직접 보니 너 별로다.. (c)  괜찮아 사랑이야


정말 누가 말하듯이 애나 키우면서 남편 덕이나 볼까 십 초 고민했으나 어림없는 소리다. 장난인지 진담인지 툭툭 던지는 말들에 마른 모래처럼 파스스 부서질 만큼, 쉬는 동안 나의 멘탈은 가루가 되었다. 집안일 지적은 기본이고, 또 시작된 공무원 준비하라는 타령에 -이 노래는 벚꽃엔딩처럼 접수 시즌만 되면 반복된다- 지쳤다. 가출해볼까 하다 그건 아닌 것 같고 해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다 면접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하필 지금은 신종 코로나 대유행. 어린이집이 문을 닫고 아이들이 종일 하하호호 집에서 뛰어놀고 있을 때였다.

"나 목요일에 면접 보는데 휴가 좀 낼 수 있어?"

"어딘데?"

"**동. 근무는 *~*요일이고, 연봉은..."

미주알고주알 풀어놓는 사이 그가 콧방귀를 뀐다.

"거의 최저임금이잖아. 그걸 왜 해??"

...


인정할 건 해야겠다. 남편은 능력이 좋다.-이건 자랑이 아님을 곧 알게 될 테니 진정하시라- 그 덕에 내가 편하게 살고 있는 건 인정하지만 모든 장점에는 단점이 있는 법. 위처럼 대기업 이외의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한 언을 자주 흘린다. 아저씨, 중소기업 평균 연봉이 삼천오백이에요...그리고 댁이 일 안 한다고 무시했잖아...라는 말이 재채기기처럼 튀어나오기 전에 황급히 막고 일단은 좋은 말로 구슬려 목요일 휴가를 내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다.

"멀다고 포기한 회사 대신에 여기라도 면접 봐야지. 휴가 낼 거지?"

"어이구, 그 회사도 후기가 뭐 같더구만. 별로 좋지도 않은데..."

여기까지 듣는 내 목이 뻣뻣하게 굳어질 무렵 그도 적당히 눈치를 보고 하루 휴가를 내마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바로 면접장으로 향했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았으니 바로... 포. 트. 폴. 리. 오. 원래 일하던 분야가 아니라 기존 작업물을 다 뒤지고 다시 정리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던 것이다. 그것도 애들을 데리고. 어설픈 작업물과 어설픈 면접 스킬로 망한 면접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하기 싫다고, 이미 망했으니 치우라고 몸부림치는걸 겨우 끌고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 망했다.


아이들과 남편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나를 맞는다. 나는 이 곳에 남아야 하는 걸까. 이 곳이 나의 자리일까. 마음이 복잡하다. 자존감이 높지 못한 자의 도전은 그렇게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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