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오픈 카톡으로 카톡 철학 스터디 방을 만들어 내가 찾은 자료를 공유하고 공부를 독려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한 시즌 당 3주, 두 시즌을 지나 이제 세 번째 철학자인 '니체'를 공부하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본다면 뜬금없이 무슨 철학 공부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내가 철학 공부를 하게 될지 몰랐으니까. 어쨌든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면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란 예상으로 시작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철학에 꽂힌 최초 계기는 사르트르의 다음 구절 때문이었다. "타자는 나를 옭아매지만, 동시에 타자의 시선이 나의 존재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문장이 문득 눈에 밟혔다. 나를 더 많은 타자에게 드러낸다면 내 존재는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휴직 후, 사람에 질려 책만 보며 칩거하다시피 하길 몇 개월, 혼자 지내다 보면 회복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반대로 점차 연약해지는 자아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무렵,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사르트르의 구절이 다가왔던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너를 드러내.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운 건 이상한 게 아냐. 모두 그렇게 느끼니까.
그 후에 접한 구조주의는 어떤 재미를 주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거라고? 옛날에는 나와 다른 문화를 드러내 놓고 비교하는 게 당연했다는 거지? 현 사회의 가부장제, 수직문화... 이게 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건 아니라는 거지? 칸트를 알면서 왜 법이 동기를 봐주는지, 마르크스를 알면서 왜 한 번씩 불황이 찾아오고 장기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당연하다 여기기만 해던 현상들의 원인이 조금씩 보였다. 지금 공부하는 니체를 읽으며 우울에 빠진 나를 다룰 실마리도 배워가고 있다.
철학은 아마 생각의 건강검진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생각,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 전반의 생각을 검토한 후, "여기, 여기가 좋지 않습니다. 주의하세요."라는 철학자들의 진단을 새겨듣는 것. 인문학의 부재를 개탄하는 이유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꽤 아는 것처럼 써놨지만 사실 아직 헤매는 중이다. 지금 하는 철학 공부가 열매를 맺어 나를 바꾸고, 내 글을 바꾸고, 읽는 독자들도 바꾸는 꿈같은 날을 소망하며 더듬더듬 읽어나갈 뿐. 죽기 직전까지 책을 쓰고(마르크스), 미치기까지 책을 쓰며(니체) 그들이 인류에게 남기려 했던 말이 무엇인지 한 번쯤 귀 기울여도 나쁘진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