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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y 20. 2020

어쨌든, 인스타

 대학 신입 때, 종교도 없는 주제에 얼떨결에 기독교 동아리 연합 오티에 참석해서 졸업 때까지 기독 동아리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반 때,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 일당에게 붙잡혀 두 시간을 허비하다 신입생으로 보이는 낯선 이에게 구조(?) 당했다. 내 시험기간에 친구 숙제를 도와주고, 팀 내 잡음을 처리하는 폭탄 떠넘기기는 다 내 차지. 나는 생겨 먹기를 본투비 호구, 호구킹으로 살아왔다. 다행히 이런 스스로를 잘 알아,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좀 까칠하게 구는 노선을 택해왔. 결과적으로는 그게 독이 됐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등처먹힐 일은 없다고 안심했다. 얼마 전까지는.


 '요즘 인플루언서가 대세라던데 나도 컨셉 좀 잡고 해 볼까?' 라는 마음을 먹고 야심 차게 인스타 계정을 새로 만든 게 한 달 전쯤의 일이다. -그 사이 기존 계정을 날려버리는 사고가 있었지만 그건 논외로 하고- 내가 좋아하고, 계속 지속할 수 있는 '북스타그램'이 좋겠다 싶었다. 간간히 공부하고 있는 철학 이야기도 곁들일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철학 스터디의 카드 뉴스를 인스타에만 올리면 되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철학이 가미된 특이한 컨셉 덕분인지 초기 구독자가 확 늘어 '이러다 금방 인플루언서 되나?' 하는 행복 회로도 잠시 돌릴 수 있었다.


(c) 레바


 모두가 친절한 곳,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하트를 날려주는 곳. 그곳은 천국이었고, 그곳의 나는 허상이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었다. 문제는 인스타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는 괴리율이 꽤 컸다는 것 정도? 현실의 나는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에, 끝나지 않는 어린이집 휴원, 집안일 폭탄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카드 뉴스를 작성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했고, 책을 읽으려면 육퇴 후 밤늦게 잠들어야 했다. 급기야 몇 년간 운동 한번 제대로 못했던 비루한 몸뚱이는 견디지 못하고 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씻고 나왔는데 인스타에서 웬 일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너는 어디에 사니? 무슨 일 하는 거야?'

 분명 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어떻게 DM을 보냈지? 전에 팔로우했던 사람 중에 이름이 바뀐 건가? 그날따라 왜 이리 알람은 많이 울리는지.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은 미루고 잠을 자기 위해 핸드폰을 꺼놔야 했다. 그 다음날 낮까지 기절하듯 긴긴 잠을 잤다.


 핸드폰을 켜자 인스타 DM창이 난장판이었다. 어제 말 걸던 일본 여자애, 뜬금없이 자신의 영화를 봤냐며 접근하는 자칭 톰크루즈까지. 그 와중에 자주 교류하던 인친님의 다급한 메세지가 보였다.

 "혹시 계정 해킹당하셨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황급히 내 홈으로 돌려보니 떡하니 바뀌어 있는 이름과 소개 문구.

 "★☆쎅알바 구함☆★ 남녀 모두 가능합니다. 카톡 아이디 ~~으로 언제든지 연락해~"

 당당하게 문구를 바꿔놓곤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무작위로 팔로우해놨던 게 어제 알람의 원인이었다. 너무 당황해 캡처할 새도 없이 바로 문구와 비번을 바꾼 후 메일함을 뒤져봤다. 내가 쓰지 않는 갤럭시 S8로 일주일 전부터 로그인을 해놓고 -내 폰은 A50이다- 때를 노리다 하필이면 앓아누운 그날 행동을 개시했나 보다. 나는 왜 메일함 자동 분류를 썼을까 자책했지만 이미 소는 잃어버렸다.


 반격을 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호구가 아니니까. 사이버 안전국에 알리니 인스타는 IP 추적이 안된단다. 홍보에 이용했던 카톡 아이디도 탈퇴가 쉽기 때문에 잡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내 계정을 지키는 방법은 자주 비번을 바꾸고 보안 탭에 들어가 누가 로그인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갤럭시 S8는 뜸할 때면 한 번씩 내 계정에 접속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2차 인증(문자로 인증받는 방법)까지 해놨는데도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느 날은 비번을 바꾸자마자 '갤럭시 S8로 접속이 되었다'는 메일이 두통이나 도착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까지 다 보고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PC를 뒤지고, 공유기 기사님을 부르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아직도 어디가 원인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2단계 인증을 SMS에서 앱 인증으로 바꾼 지 오늘로써 4일 차. 아직까지 보안 탭에 침입자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마음을 놓는 순간 떡하니 들어와 있을까 불안하다. 침입자를 두려워하는 가련한 나의 인스타 페르소나는 어쩌면 현실의 나와 정말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젠 정말이지 호구 탈출하고 싶다.




Background Photo by Jakob Owe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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