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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Dec 30. 2020

어쨌든, 이지혜

지극히 개인적인 팬심과,

현재 출근하고 있는 회사는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적막을 깨는 MBC FM4U의 백색소음. 반일 근무를 시작하는 1시에는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이 흐르고, 한 시간 뒤에는 안영미와 뮤지의 '두 시의 데이트', 두 시간 뒤엔 이지혜의-맞다, 그 옛날 S#ARP의 이지혜다- '오후의 발견', 그리고 6시에 배철수 DJ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퇴근하곤 한다.


입사한 지 백일 될 동안 매일 다섯 시간씩 대화를 엿들으며, 나는 파티션 아래에 숨어 그들과 함께 쿡쿡 웃거나, 한숨을 쉬거나, 가끔은 울컥하는 무언가를 참기도 했다. 매일 만난 친구같은 느낌이랄까? 그중에서도 제일 가깝게 느껴졌던 건, 말재간이 뛰어난 김신영도, 음악성이 뛰어난 뮤지도 아닌, 샵디, 이지혜였다.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이 공감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겠지만 무엇보다 실수투성이의 인간적인 모습이 참 와 닿았기 때문이다.


전화연결에서 '교직원' '조직원'으로 잘 못 알아듣는다거나 '리키 마틴' '에릭 마틴'을 헷갈린다거나 하는 건 애교. 종종 터지는 실수에서도 그녀는 주눅 하나 들지 않고 당당하게 웃으며 넘긴다.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모를 수도 있지. 뭐 어때요?"

오히려 실수투성이의 자신을 브랜드화해 '성장형 디제이'로 부른 건 정말이지 자존감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녀가 마냥 밝은 건 아니다. 가끔 불쑥불쑥 아쉬움과 좌절을 내비치기도 한다.

"예전에 안 좋은 일을 참았다면 백지영 씨처럼 최고의 가수가 되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일이죠."

"오늘 진짜 엉망진창이네요. 죄송합니다."

떠나간 애청자를 찾는 코너에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심지어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차갑게 전화를 받는 사람도 있다.-이럴 때면 갑질 고객과 통화하는 나와 겹쳐져 '저 직업도 참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씨릿~!!'을 외치며 오후 네시부터 여섯 시까지 직장인들의 기운을 돋아준다. 마치 '여러분 조금만 힘내세요, 퇴근시간이 오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그런 그녀가 2020년 MBC 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말실수가 많아도,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정신없는 워킹맘이라도 그녀는 열심히 했고, 그래서 받을 자격이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본다. 우리 모두 엉성한 실수투성이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수상 축하해요, 샵디.


멀리서 기뻐하는 바릉이 백일 차 올림.




배경 (C)이지혜 영상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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