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신입 일기_5
가끔, 어떤 회사는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고객층을 마케터로 채용하기도 한다. 그 타겟을 파악하려고 굳이 수고를 들이기보다 그 자체인 사람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니까. 그리고 그게 늦깎이 신입인 내가 교육분야 출판사에 입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초등 자녀를 둔 30~40대 여성. 그들이 원하는 것과 불안해하는 것, 그리고 정보를 얻는 통로까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길목에 미리 서서 그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회사와 책을 알린다. 그게 현재 디지털 마케터로서 내가 주로 하는 업무이다.
마케팅을 하며 학부모나 학원 선생님들을 온라인으로 대면하다 보면 내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나도 그들에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시도에서 지원하는 무료 온라인 수업, 저렴한 프로젝트 수업, 혹은 입시정책 변화 같은 정보들이 여과 없이 나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애초에 그들이 학습 관련 태그를 달고 인스타를 하는 이유도 (1)학원 홍보이거나, (2)비슷한 엄마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니, 어쩌면 그 무리 중 하나인 내가 영향을 안 받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처럼 부지런히 정보를 모으고,-어차피 SNS관리가 업무이니 발품을 팔 필요도 없다- 좋은 기회라면 신청해서 아이들에게 들이밀어 보기도 하며 나름 합리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다. 인스타에 '#엄마표', '#홈스쿨' 해시태그를 단 수많은 엄마들처럼.
내가 노력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줄 수 있어.
'엄마표'같은 키워드야 워낙 꾸준히 언급되어 왔고, 최근에는 과도한 사교육을 비판하는 책이 줄줄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면 '엄마표'를 타겟으로 한 시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규모도 제법 크다-. '엄마표'이니 말 그대로 엄마가 자유의지로 전집과 문제집을 골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엄마표'를 지지하는 인플루언서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1)선생님, (2)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둔 xx맘. (1)은 권위를 세우기 쉽기 때문에 보통 책을 써서 앞서 말한 베스트셀러를 만든다. 그렇게 검증이 되면 본인 이름을 내건 교재를 출간하거나, 혹은 강의 판매로 수익을 올린다. (2)는 친숙한 이미지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같은 엄마이기 때문에 니즈를 잘 파악해서 학습자료를 나눔 하거나 양질의 정보를 공유한다. 중간중간 -영재원 입학 같은- 아이 자랑도 섞어주면서 문제집 푸는 사진을 보여준다면... 그게 공구다.
초등 학습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는 아예 처음부터 학원(B2B)과 엄마표(B2C)를 분리해서 영업/홍보 전략을 짠다. 규모가 작다면 한 가지를 선택해서 주력으로 밀고, 규모가 크다면 둘 다 가져가는 투트랙 전략을 쓰기도 한다. '서포터즈', '체험단'이 대표적인 B2C 전략이다. 무료 교재를 얻으니 엄마들은 좋고, SNS 포스팅과 까페 활성화를 얻으니 출판사도 좋다. 까페활성화가 왜 필요하냐면... 계속 그곳에 상주하는 인원에게 프로모션을 공짜로 뿌릴 수 있기 때문이고, 일부는 '찐팬'(충성고객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아무 이유 없이 교재와 기프티콘을 뿌릴 리 없다.
좀 더 딥하게 들어가면 '대디' 인플루언서, 혹은 카페에서 화상 수업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엄마표 프로젝트 1년 커리큘럼을 짜서 전집과 함께 파는 업체, 순수 온라인 수업을 '엄마표'로 포장하는 업체 등 정말 다양하다. 이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엄마표도 가능하다'라고 역설하지만 몇몇은 따라가려면 학원 못지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몇몇은 교묘하게 학습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다. 이게 현재 '엄마표'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선 엄마표는 저렴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엄마표' 껍데기만 쓴 커리큘럼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그렇다. 엄마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멍청비용을 필연적으로 유발한다. 아무리 사전정보가 많더라도 그건 '일반적'인 정보일 뿐 '내 아이에게 맞는' 정보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몇 번 삐끗하다 보면 '이럴 바엔 학원을 보내지' 싶은 돈이 나간다.
그리고 관계. 남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일 학습상태가, 내 아이가 될 때 수긍하기가 어렵다. 자식이기에 "방금 알려줬잖아. 이것도 못해?"라는 말이 나오기도 더 쉽다. 결국 돈 버려, 마음 버려, 체력까지 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대목에서 가족끼리 가르치는거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대부분 과목을 엄마표로 진행하고 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상대적으로 가르치기 쉽고, 아이의 학습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마 학원으로 돌렸다면 정말 꼼꼼히 봐주시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 이상, 첫째가 공간감이 약하다는 것을 몰랐을 테고, 둘째가 문자를 읽는 것은 빠르지만 쓰기는 약해서 파닉스도 오래 걸린다는 것도 수긍하기 어려웠을 테다. 집에서 술술 푸니 셔틀, 숙제 같은 시간도 걸리지 않고, 반응을 보며 난이도와 진도조절이 가능한 장점도 있다.-하지만 뭘 시킬지 몰라 이것저것 다해보느라 아이들이 고생하기도 했다-
아마 '엄마표'의 성패를 가르는 제일 큰 요인은 '아이'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소화가능하고 싫어하지 않는 학습인지, 혹은 그 원인이 엄마의 부정적인 피드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살피고 반영해야 한다. 또 비용을 아끼려는 의도로 시작했다면 인플루언서나 커뮤니티에 너무 깊게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지갑을 지키고, 본전생각에 아이를 들볶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교육격차'라는 키워드가 핫하다. 엄마표에 매달리는 일부는 대치에 보내지 못하는 보상심리로 그렇게 엄마표와 교육 정보에 목매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심리를 이용하는 시장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결국 엄마표의 중심은 '스카이'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