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신입 일기_4
나이 많은 신입은 제로 베이스도 아닌 '마이너스 베이스'에서 시작한다. -자녀가 있을 경우- 시간도 없고, -소기업의 경우- 예산도 없다. 많은 건 이제 계산하기도 힘든 내 나이뿐. 안팎으로 모든 자원이 부족한 내가 수습기간 3개월 동안 마주한 곤란함은 아래와 같다.
시간이 부족하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근무시간만 온전히 확보된다면 그 시간에만 바짝 일하면 되니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린 자녀라는 변수가 생기면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아이가 유아라면 전염병, 초등이라면 입학 등. 아이가 연차 일수에 맞춰-애초에 신입연차가 많지도 않고- 아픈 것도 아니라 결국 이 시기에 일하려면 서포트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출퇴근 시간 조정이 가능한 남편이라던지, 가까운 친정이나 시댁이라던지, 그것도 아니면 하다못해 아이돌보미 연락처라도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어야 일이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엔 올해 둘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했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를 모셔올까 했지만, 하교 두 시간 때문에 타지에 내내 계시게 한다는 것도 맘에 걸렸다. 나도 회사일에 정신없는데 시어머님을 신경 쓸 자신이 없었고. 고민하다 대표님께 반일근무를 하겠다고 제안드렸고, 아직은 홍보가 더 필요하니 나머지 시간은 재택근무로 채우라는 답변을 받았다. 거기까지 라면 해피엔딩이었겠지만.. 들쑥날쑥한 퇴근시간 때문에 재택일정을 명확히 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후 집에 있으면 불안하다. 아이 하교 후 공부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는 오후 시간, 아이들이 잠든 후 계속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저녁 시간. 24시간 중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지자, 출판사에 있으면서도 책 한 권 읽기가 버거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한건 거의 처음이라고 했다. 고로, 마케팅 예산이 0원에서 내가 쓰는 만큼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 면접당시부터 회사 규모를 보며 어느 정도 예상한 데다, 간이 큰 편은 아니라 크게 일을 벌일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간과한 게 하나 있었으니... 마케터를 채용한 목적이 매출 증대, 그것도 꽤 많은 매출 증대에 있었다는 점이다. 온라인 부문에서만 월 x억 매출을 목표로 발표하는데...
나 : "대표님, 목표 매출액인 x억의 5~10%는 마케팅 예산으로 잡으셔야 하는데요?"
대 : "그럼 당연히 되지~!"
말하는 당시도 미심쩍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맘까페 홍보를 말씀드리면 오케이였다. 그리고 예산안을 뽑아가면 대답은 "그건 좀..."
인플루언서 협찬광고를 말씀드리면 오케이, 해당 업체의 영업담당과 미팅을 한 후, "이건 좀..."
다양한 이유들로 다양한 홍보기획안이 반려되었다. 내 설득 스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유독 금액 큰 것들이 걸리자 이제 알아서 적은 비용을 들일 마케팅 방법을 찾게 되었다. 결국 3월엔 매출목표 x억을 달성하지 못했다. -저비용 바이럴하자고 책을 들고 지하철역에서 춤을 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개인적인 면에서도, 커리어 면에서도 아직은 힘든 시기이다. 하필이면 이 둘이 3월에 동시에 걸렸다는 게 운이 없었달까, 판단미스랄까. 어느 하나 완벽하지 못한 채 뒤뚱뒤뚱 나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엔 아이가 인라인에 도전했다. 첫 바퀴는 내 손을 잡고도 세 번을 넘어졌고, 두 번째는 혼자 네 번, 세 번째엔 두 번을 넘어지다 마지막엔 넘어지지 않고 혼자 완주해 냈다. 엉거주춤 달려와 안기는 아이의 상기된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내 커리어와 육아도 여러 바퀴를 돌며 넘어지며 동시에 일어서는 방법을 연습 중이다. 병설 유치원부터 학교에 다닌 둘째는 빠르게 적응을 마치고 언니와 둘이서 하교에 성공했고, 회사에선 결이 맞는 인플루언서를 직접 찾아내 홍보를 하기로 승인을 받았다. 나는 지금 경험, 시간, 예산 모두가 부족한 극악의 퀘스트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은 쌓이고 있으며, 아이들 적응 후 근무시간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마케팅 예산은... 언젠간 증액되겠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