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신입 일기_3
그러고 보니 마케팅 얘기만 잔뜩 썼지,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한 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쓰지 않은 것 같다. 요새는 속칭 '중고신입'이라는 키워드가 핫하지만 내가 말하는 '나이 많은 신입'은 아예 다른 직무로 전환했을 때의 이야기이므로 열외로 한다.
부제목과 같이 나는 마흔이다. -2023년 6월부터는 다시 젊어질 예정- 특유의 역마살 덕분에 한 직장에 오래 머문 건 최대 5년이고, 다양한 사유로 직장을 옮겨 다녔다.-덕분에 물경력 행- 출산과 육아가 닥치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결론 내렸고, 2022년 말에 취업 부트캠프를 수강 후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취업준비에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준비 기간이 끝났다. '나이 많은 신입'에 장점이 있을까 싶겠지만 나름 겪어본 일장일단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취업 걱정을 하는 경단녀 친구들에게 돌림노래처럼 하는 얘기가 이거다.
아줌마도 수요가 있어
구직난이 매일 뉴스에 나오는 시대에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눈을 낮추면 된다는 얘기다. 서울 대기업 말고 지역 중소기업, 풀타임 말고 파트타임. 남편이 메인으로 벌고 부수입을 얻고자 하는 아줌마를 원하는 틈새수요는 취업시장에 분명히 존재한다. 같은 논리가 '나이 많은 신입'에게도 먹힌다.
솔직히 이야기하자. '나이 많은', '신입', 핸디캡이 두 가지나 존재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쌍수 들고 반길 수 없지 않은가. 대기업 타이틀이든, 연봉이든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하면 길은 분명 있다. -애초에 직무 전환을 고민하는 시점부터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운 좋게 취뽀를 한 후, 출근을 하면 기존 직원들과 인사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어디에 껴야 하나...
물론 태생이 마이웨이라 영혼 없이 일만 하며 회사를 다니는 분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어울려야 회사생활이 유지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이게 첫 번째 문제였다. 나이로 따지자니 또래는 다 부장 이상급이고, 직급으로 따지자니 비슷한 동료는 이삼십 대가 대부분이었다.-심지어 바로 옆엔 대학생 인턴이 앉아 있었다- 결론적으로 감사하게도 '신입 무리'에 끼게 되었고, 무사히 적응을 마칠 수 있었다.
예전 직장의 사수에게 부당한 일을 토로하면 종종 듣는 말이 있었다.
그거, 나이 들면 다 해결돼~
헛소리는 아니었던 게, 극 I인 나도 대화를 하며 '상대방 의도 간파', '협상하기', '휘둘리지 않기' 정도의 스킬은 알아서 발동이 된다. -아마 상대 쪽에서 어리다고 얕잡아보지 않는 것도 작용하는 듯하다- 이건 어느 직급을 가든 플러스 요인이라 외부활동이 많아진 새로운 직장에서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삼사십 대쯤 되면 하나둘 지병이 생기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밤을 새우는 등 무리를 하게 되고, 지병은 더욱 악화되기 일쑤. 더욱이 삼사십대라면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할 때라 무리함은 배가된다. 삼사십 대의 직무전환은 건강과 등가교환을 할 정도로 간절한 사람만이 완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맞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나이에 어디로 옮기나,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는 의문들. 나의 경우에 10년 경력을 버리고 옮긴 이곳이 천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업무도 많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 육아에 정신 차릴 수 없이 일이 몰아치지만 버틸만하다. 레드불을 연거푸 들이켜고, 어쩌면 나보다 어린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업무 관련 조언을 얻으며, 매출 결과에 눈치 보일 때도 있지만 괜찮다. 더 배울 것이고, 더 나아질 것이고, 그 과정을 내가 견딜 수 있으니까. 나이 많은 신입은 분명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라는 점에서 경력직 이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물론 연봉은 다르다- 지나친 환상도 비관주의도 없이 정말 원한다면 현직장의 장단점을 버리고 새로운 장단점을 떠안을 각오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