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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y 25. 2023

경기 불황과 맞벌이의 상관관계

나이 마흔 신입 일기_6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남편은 대기업에 다닌다. 아니다, 다'녔'다. 최근 매일 뉴스를 타는 IT기업, 그런데 들어가면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 그런데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IT버블이 푹 꺼질 줄 누가 알았나.


어쨌든 남편 '빽'만 믿고 열심히 뻘짓-교육 수강, 이직, 그리고 기타 잡다한 도전들-을 하고, 취업 후에도 회사 적응 한다고 아이들 케어도 상당 부분 맡기며 편하게 신입생활을 하던 행복한 나날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내가 '가장'이라는 짐을 대신 매야할 때가 온 것이다. 


매주 월요일, 매출 성과 보고에 질려 슬슬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건가...'하고 고민하던 차에 귀신같은 타이밍으로 경제상황이 내 발목을 묶어버렸다. 다음 달부턴 내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고 부족분은 저축에서 조금씩 갉아먹어야 할 테니 도망갈 구멍도 없다. 이제는 정말 이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남편 자리가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얌전히 내조하고 남편은 집에서 푹 쉬게 두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집 팔고 시골로 내려가야 하나?'

'남편이 그만두면 집안일이랑 육아를 전담해 주나?'

하지만 내가 내조의 여왕이래도 대다수가 권고사직을 받은 지금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을 테다. 차라리 나라도 일을 하고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낯을 너무 가리는 첫째 때문에 겨우 적응한 학교를 옮기기도 어렵고, 시골에서 남편 일자리가 구해질지도 미지수. 그리고 집안일과 육아는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나조차 전담을 해본 적이 없고, 그러니 다 떠맡길 수도 없다. 


남편은 동종업계를 알아보다 다들 상황이 안 좋다는 걸 깨닫고, 공무원 시험으로 전환, 하지만 본인도 큰 의미를 두진 않는지 좀 쉬겠다고 선언했다. 하긴 결혼생활 십 년에 총각 때까지 거의 20년을 쉼 없이 일했으니 뭐라 할 명분도 없다. 내 급여가 생활비를 100% 커버할 정도만 돼도 기간 걱정 말고 푹 쉬라고 할 텐데...


참 쓸데없다고 여겼던 나의 자아실현에 대한 고집 덕분에 이제는 우리 가족의 겨울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잘 버는데 그냥 얌전히 집에서 애나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던 자괴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력도 떨어지는데 왜 사서 고생하나 하던 고민. 그 짐 같던 '일'이 이제는 내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그나마 좀 더 좋아하는 일로, 좀 더 즐겁게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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