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제 수능 외국어 영역 1등급을 만든 건 팔 할이 채널V였습니다-현재의 MTV와 같이 팝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주로 다루던 채널-. 빨간 쫄쫄이를 입고 등장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금발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나타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뮤직비디오 시장은 그에 편승해 나날이 현란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뱅글이 안경을 쓴 고딩은 리키 마틴과 비욘세에 흠뻑 빠져, 가사까지 달달 외우는 덕력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교 시절 뮤비 사랑에서 시작된 음악 사랑은 팝을 넘어 힙합과 클래식 등의 장르까지 확장되며, 이십 대 방황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린 날엔 리한나와 조깅을 했고, 남자 친구와 헤어진 날엔 김연우, BSB(Backstreet boys의 준말)와 함께 정동진 여행을 했으며, 상사에게 깨진 날엔 피아졸라의 위로로 분을 삭였습니다.
십 년이 넘도록 한결같던 음악 사랑은 결혼 후 임신과 함께 잠시 주춤하는 듯했습니다. 첫째와 단둘이 보내는 적막한 일상에 동요나 차분한 클래식만으로도 과한 자극이었을 만큼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모든 게 빠르다지요. ’엄마 마음 편한 게 무조건 최고다!’라는 기치 아래 마음껏 팝송으로 태교를 하고, 출산 예정일 한 달 전에 부른 배를 안고 오랜 팬이었던 박효신 콘서트를 다녀오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지금도 육아에 치여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가장 쉬운 해소법은 음악 듣기입니다.
“얘들아, 엄마 음악 들어도 돼?”
한 번은 엄마 음악, 한 번은 뽀로로, 그 이후엔 쭉~ 엄마 음악. 이렇게 딜을 하고 가뿐해진 기분으로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요새는 신스팝에 꽂혀, 가끔 남편이 퇴근해,
“뭐야, 음악이 왜 이렇게 끈적해?”
라고 할 때도 있지만 제 취향을 잃지 않고 아이와 함께 즐길 방법을 찾아 참 다행입니다.
‘21세기의 소울 디바’로 불리는 아델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같이 듣던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축척해 음악인으로 성장하게 되었지요.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도 음악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첫 곡을 썼고요. 지금 아이들과 듣는 음악도 무언가 남는 게 있겠지, 합리화해봅니다.
성장한 후, 아이들의 기억에 엄마와 함께 나눈 음악이 남아있을까요?싫었던 기억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가끔 “삐용삐용 하는 노래 틀어줘~”하는 걸 보니 엄마 취항을 조금은 닮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