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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y 30. 2019

수채화 클래스에서

부정적 반응에 대응하는 자세

제가 사는 고양시 시립도서관에는 문화센터 못지않은 저렴하면서도 알찬 강좌가 많습니다. 인문학 강좌, 자서전 쓰기, 독서토론, 영화평론 등등.-심지어 드론 교육도 있답니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 제약만 빼면 대부분 무료인 강좌는 노다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수가 된 이후 월말이면 홈페이지에 들러 들을만한 강좌가 있는지 훑어보는 것이 일종의 월 마감 의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4월 말에 한 달짜리 수채화 클래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요새 너무 하고 싶지만 온라인 강좌도 십만 원을 넘어가는 가격에 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4회에 단돈 오천 원이라니!!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예약 링크가 열리는 아침 9시 전부터 창을 띄워놓고, 콘서트 예매 때 갈고닦은 광속 클릭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세이프!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열린 지 10분도 안돼 마감이 됐다네요. 강남에서 몇십만 원짜리를 이렇게 저렴하게 하는데 당연한 결과였죠.-


도서관 지하 문화교실은 땀을 흘리며 앉은 지 1시간도 안돼 한기가 들었고, 집도 멀어 가끔 빠지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자석에 끌려가듯 착실히 수업에 출석했습니다. 수업에는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보다 어려 보이는 20~30대의 아가씨도 있었고, 50대의 중년, 70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호호백발의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학구열에는 나이가 없다는 걸 증명하듯, 색색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들 손에서 피어났습니다.


강사님은 학생의 장점을 빼놓지 않고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주면서, 자칫 고요하기만 할 뻔한 수업을 즐겁게 리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백발의 학생도 정말 열심히 하셨습니다. 하지만 욕심보다 부족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3번째 ‘해바라기 그리기’ 수업에서는 푹푹 한숨을 쉬다 급기야 짜증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이게 뭐가 이상해. 이파리 그리기가 힘들어요.”

“어떤데요? 조금만 보강하면 되겠는데요 왜~ 보세요, 이렇게~”

강사님이 달려와 그분을 달래주며 종이 한쪽 빈부분에 이파리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니, 이렇게 아무 데나 그려놓으면 그림 망치잖아!”

그림에 애착이 강해서인지, 작업하던 종이에 낙서를 했다고 오해하신 듯했습니다. 강사님께 화를  내시더군요.-연세는 많으셨지만 반말로 화를 낼 때는 저도 너무 하신 게 아닌가 싶어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아니에요~ 하하. 보세요, 이렇게 연결하면 되죠?”

실상 선생님은 전체 작품의 부족한 부분에 이파리를 보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몰랐던 백발 학생은 머쓱하게

“아, 그러네. 난 또 낙서하는 줄 알고..”

하고 미안함을 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강사님은 내내 웃는 표정으로

“제가 다 생각이 있어서 거기에 그린 거예요~ 아무렇게나 그리는 거 아니에요.”

라며 그분의 머쓱함을 덜어주었습니다.


강사님이 갑자기 멋있어 보였습니다. 부정적인 말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일관적인 미소, 친절함. -설사 마음속에서는 흔들렸더라도- ‘이런 것 따위는 내게 상처 줄 수 없지.’라는 내공이 엿보이는 단단함에 빠져버렸습니다. 닮고 싶어 졌습니다. 수업 내내 작업 과정과 전시회에 대한 열정적 설명을 들으며,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저런 아우라를 풍기는구나.’ 감탄했습니다.


어떤 일과 사랑에 빠지면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외부의 어떤 부정적인 말도 웃으며 넘겨버리게 만드는 사랑에 저도 한번 빠져보고 싶어 졌습니다.





미나쌤의 수채화 전시를 막간 홍보합니다!

https://m.blog.naver.com/mina0610/22154490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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