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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n 13. 2019

듣고 싶지 않아요.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잡담을 하다, 문득 제주 얘기가 나와 살인 사건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습니다.-밥 잘 먹다 영문도 모르고 끔찍한 사건 소식을 처음 접한 동료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다음, 네이버 포털 어디를 가도 끔찍한 뉴스가 이어집니다. 어떻게 살해를 했는지,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펜션에 있던 아이는 뭘 하고 있었는지……. 자극적인 기사는 우리의 상상을 부추겨 더 끔찍한 것을 연상하도록 합니다.-당장 뉴스의 댓글 창만 봐도 웬만한 공포 영화 저리 가라 할 만한 추측이 난무합니다.- 그 자극적인 말들은 머리 어딘가에 잔상으로 남아 맴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새로운 소식 없나?’ 하고. 살인자의 한마디, 행적 하나가 기사화된 뉴스는 웹서핑을 하는 우리의 시야를 불쑥불쑥 치고 들어옵니다.       

그것은 일종의 중독과도 같습니다. 마약 중독자가 같은 양의 만족을 얻기 위해 점점 약을 늘리듯, 자극적 기사에 무뎌진 우리의 감각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합니다.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황색 언론은 이러한 수요를 놓치지 않고 발 빠르게 기사를 공급합니다.


매일 반복되어 지루하다 못해 짜증 나는 일상. 자극적 뉴스는 마법처럼 우리의 시선을 일상에서 빼앗아 새로운 것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 사라진 불쌍한 아이. 모두의 관심이 모인 그곳에 나의 관심도 존재한다는 것이 일견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에 줄 관심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입니다.     


나의 마음은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들으며 평온할 수 있는지, 자극적 이야기로 내 고통을 잠시 덮은 건 아닌지, 사건이 끝난 후 깨닫기엔 너무 늦습니다. 자극적 기사는 끊임없이 공급되고, 연달아 그것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삶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닫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불편한 침묵이 친숙해질 때까지.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만 나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약속시간을 잡듯, 나와 만나는 시간도 따로 정해야합니다.


그동안 ‘세상 돌아가는데 밝은 사람’이라는 이름표 하나 받으려 나의 관심과 시간을 과도하게 투자한 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Photo by Irina Vinichenk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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