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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Oct 11. 2019

Chloe

나의 짝사랑

한 시간째 쇼핑몰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끌로에,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름, 그리고 이 가방의 브랜드명. 살까 말까,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러면 분명히 사고도 후회하겠죠. 너 결제해놓고 환불할 거잖아. 가방을 받는다 해도 아까워서 이 가격만큼 들고 다닐 수나 있겠어? 마음 속 저울이 기우뚱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 접자, 접어. 내 주제에 무슨. 아, 근데 너무 예쁘다.


사건은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친구의 명품 가방.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도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듯한 존재감.

“아, 이거 그 가방이야? 출장 가서 남편이 사 왔다는?”

“응, 독박 육아 한 달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좋아하던 브랜드는 아니라 그저 물끄러미 보다 돌아오는 길에 ‘끌로에’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오랜 사랑. 아니, 정확히는 하나도 산 적이 없으니 짝사랑이겠지만.


오 년 전쯤엔 자수가 발등 부분을 가득 채운 샌들이 너무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얀 리넨과 파스텔톤 자수가 나를 소녀로 변신하게 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샌들 제품명 앞에 붙은 브랜드명 끌로에, 단어 하나에 샌들은 위시리스트에서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었습니다.(품절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년 전쯤엔 지하철에서 또래의 여성이 차고 있던 팔찌에 꽂혔습니다. 종이를 구긴듯한 이상한 모양의 팔찌.

‘독특하고 예쁘다! 저걸 차고 싶어!’

검색 신공으로 알아낸 모델명 앞에 역시나 붙은 이름 끌로에. 그리고 이번에도 예산보다 0이 하나 더 붙은 액수. 남편에게 사달라고 조르고 졸라 결국 답을 받았지만, 내 돈이 아까운데 남편 돈이라고 안 아까울까요. 또 위시리스트에 저장해놓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언젠가는 -그러니까 로또가 당첨되거나 하는 날엔 당장- 살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리고 이번엔  가방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돈도 버는데 제대로 된 가방을 사자! 이 기회에 끌로에로! 최저가를 찾아놓고도 결제를 누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두 배 되는 액수를 첫째 영어 수업에 선불해놓곤, 이번엔 결제 버튼 위에서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끌로에’라는 이름이 붙은 위시리스트는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몇 년째 이어져 온 짝사랑이니 이만하면 진심이 전해진 것도 같은데, 지갑은 마음을 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게 명품이어서 예뻐보이는 걸까? 뭐 어쨌든, 딱 반값이라면 좋겠다.-그럼 또 반값을 소망하겠죠.- 복잡한 생각 속에서 지갑은 또 열렸다, 닫혔다, 팔랑팔랑 나부낍니다. 언젠가는 -로또가 되거나, 갑자기 연봉이 세 배된다거나 하는 날이 온다면- 짝사랑이 이뤄질까요?



배경 (c) 끌로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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