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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Nov 20. 2019

다이소는 죄가 없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산 물건은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은 좀 다르다. 충청도 박달재 고개, 어느 주막의 인심 은 주모가 그곳을 묵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에게 꾸러미를 주곤 했다고 한다. 선비가 이것이 무엇인지 묻자, "비지떡을 쌌으니 배고플 때 드시라."라고 대답을 한 게 와전되어 현재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엔 별 재료 없이 남는 콩비지로 저렴하게 만드는 음식이었으니 오해할 만도 하다.


나는 다이소를 좋아한다. 밝은 분위기, 바닥부터 내 키만큼 빼곡히 매대를 채운 물건들. 눈을 어디로 두어도 '나를 집어 주세요!'라고 외치는 오만가지 제품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적인 분위기가 그곳의 문을 열 때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당최 기분전환할 길 없던 출산 휴가 중에는 살 것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그곳에 들러 한 바퀴 둘러본 후 천 원짜리 물건을 하나 집어오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가끔 외출할 곳이 없을 때면 아이들과 한 바퀴 둘러보고 색칠놀이책이나 이상하게 생긴 간식 쇼핑을 소일 삼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다이소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과 만날 때가 있다.

"거긴 좀 별로... 금방 망가지고 말이야. 차라리 제 가격 주고 사는 게 낫지."

"맞아. 거기서 사면 결국 돈을 더 쓰는 것 같아"   

중국산 제품이라는 오명 하에 나의 이상한 나라는 평가절하된다.


하지만 '제 가격'이란 무엇일까? 한국산으로 만들었을 때의 가격? 우리가 한국산으로 알고 있는 상품의 상당수가 중국이나 베트남 OEM으로 한국 상표만 달고 있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은 아닐 게다. 그럼 그 제품군 대부분이 채택한 가격? 보통, 가격은 수요-공급 논리에 의해 정해지지, 원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럼 더 싸게 물건을 팔아 경쟁력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견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 가격'이라며 굳이 비싼 제품을 사는 이유는 뭘까. 보드리야르의 '디즈니랜드' 비유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디즈니랜드라는 허상에서 재밌게 놀고 나와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LA, 미국 자체가 허상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사람들은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이 가짜라고, '제 가격' 제품의 아류라 생각한다. 하지만 '제 가격'이란 없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제 가격에 제품을 사야 한다'는-혹은 '내가 사는 물건의 가격이 내 품위를 결정한다'는 숨겨진- 사회 전반의 생각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일 뿐이다. 마치 '싼 게 비지떡'이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사용되는 것처럼.




(c) 위키디피아 '다이소' 항목: 다이소 종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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