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책이 나왔습니다. 고양문화재단에서 시민작가 양성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이번 해 삼 월부터 진행해온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매주마다 모여 멘토 선생님의 지도 하에 글을 다듬고, 책 홍보 방법과 PDF 수정 방법 등의 강의를 들으며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출발할 당시 서른다섯 명이 넘던 예비 작가들은 스물여섯 명 만이 완주선에서 책을 들고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구 개월의 여정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 그런 걸까요. 무심한 듯 시크하게 책을 받으려 했던 원래의 다짐은 어느새 사라지고 온 가족을 대동하여 기념회에 참석했습니다.
책이 든 상자와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축하 공연을 보는 동안에도 책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말에도 서점 모임 공간에서 선생님을 만나 교정을 해야 할 것 같고, 책의 목차도 더 고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첫 책의 작업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부족하지만 부족한 대로, 책 작업을 하며 느꼈던 좋은 점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컨셉의 중요성을 깨닫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제 발목을 잡은 컨셉. 이전까지는 저 좋을 대로 써왔지만 출간 계획서를 쓰는 순간부터 명확한 컨셉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만을 위한 글은 컨셉 따위 상관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책을 읽고, 사고픈 마음이 들게 하려면 신선한 컨셉은 필수입니다. 그건 글을 쓰는 순간부터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죠.
2. 삶을 되돌아보다
글을 쓰며, 수정하며, 제 글과 삶을 수없이 반추했습니다. 혼자 잘난 맛에 살던 삶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고, 반성을 하게 되었죠. 글에 등장했던 가족, 친구들, 직장동료... 그들의 입장을 쓰면 쓸수록 깊게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책에 어느 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자, 책장을 허투루 넘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책 한 구절에서 그 사람의 살아온 과거와 성격이 보인 달까요. 그래서 다시, 내 글은 가능한 진심을 다해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3. 순수한 쓰기의 즐거움
기획출판에선 어려웠을 테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상업성을 위해 글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압박이 크게 없었습니다. 컨셉에 맞는 글 몇 개를 더하거나 빼고 맞춤법이나 문체, 비문 등을 수정하는 게 전부였으니까요.-덕분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원고 수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공들인 만큼 많이 얻는 법이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면 나가떨어지기도 쉽죠. 특히 쿠크다스 멘탈인 제겐 이번 책 쓰기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다행인 셈입니다.
4. 꾸준함
쉽다고 얘기했지만 마냥 쉽지는 않았습니다. 시작할 당시, 브런치에 글도 몇 편 안 쓴 주제에 겁도 없이 덜컥 신청한 것이 발목을 잡았어요. 책 분량을 채우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편을 마감 때까지 계속해서 썼습니다. 게으름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제가 근 일 년을 이런 생활을 한 건 선생님과 마감 덕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멘토 대표님은 소감에서 따끔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소원 1위가 뭔지 아세요? '내 이름으로 된 책 내기'예요. 여러분은 그 소원을 이루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지금은 벅차고 들뜬 기분이겠지만, 내일을 조심하세요.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도 내 책에 관심이 없고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요. 우울감이 올지도 몰라요. 이 책이 시작이라는 걸, 여러분은 막 스타트를 끊었을 뿐이라는 걸 기억하시면 조금은 도움이 될 거예요.
미약하게나마 출발선을 끊었습니다.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꿈은 아직 아득하지만 이 기억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연초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연말에 내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내년말엔 또 다른 어떤 모습이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