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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l 07. 2019

다이어트 잔혹사

자랑 같지만, 나는 마른 편이다. 오늘 아침 체중계에서 잰 BMI는 17.5. 사람들은 종종 “원래 이렇게 말랐어요?”라고 묻곤 한다.-애 키우기 힘드냐는 질문은 세트다-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기 부담스러울 때는 그냥 웃으며  넘기지만 사실 원래부터 마르지 않았다.  


“야, 코끼리! 이거 받아.”
7살이 되던 해 여름, 수영 교실 강사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들에게 돌렸다. 친구 없이 혼자 다니느라 학원 봉고차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나를 ‘코끼리’라 부르며 그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첫사랑의 추억은 그날 학원차 안에서 박살이 났다.


큰 키 때문에 늘 거대해 보였다. 아니, 그전에 원체 식욕이 넘쳤다. 집안 곳곳 엄마가 숨겨둔 과자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 숨도 쉬지 않고 먹어대곤 했다. 겉은 거대한 동시에 속은 소심한 범생이, 그게 바로 나였다.


“엄마 나 예뻐?”
“음… 그래도 우리 미야는 똑똑하잖아~”
내 존재 의미는 오로지 공부였다. 예쁘지 않고 사회성도 모자란 나에게는 공부만이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학사경고를 꽉 채워 제적을 앞둔 나는 완벽한 낙제생이자 실패자였다.


존재 의미가 사라지자, 나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서서히 옅어지다 투명해져 아무도 나란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먹었다. 위장에 음식을 꽉꽉 채워 넣는 것만이 아무도 찾지 않는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음식을 먹는 순간은 오로지 그것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입에 넣기 전의 설렘, 위를 요동치게 하는 달큼한 냄새, 황홀한 맛과 식감, 배를 채운 후의 만족감. 그것은 흡사 사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폭식이라는 이름의 사랑에 빠졌다. 음식을 먹는 시간이 추레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집에 숨어 즐기는 폭식은 괴로운 현실의 피난처이자 위안이었다.


하지만 나가야 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더 거대해진 상태로 밖에 나오자마자 납작해진 자존감 때문에 또다시 고통받았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안여돼’(안경+여드름+돼지)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살을 빼야 했다.-사실 당장 입을 옷도 없었다. 프리사이즈는 프리 하지 않으므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원푸드, 덴마크, 단식, 식이 보조제 등등. 많은 이가 효과를 봤다던 다이어트는 내게만 효과가 없었다. 다이어트에서도 나는 실패자였다.


점차 사고체계가 뒤틀려갔다. 먹고, 토하고, 먹고, 설사약 먹기를 반복했다. 건강과 자존감을 내어주고 약간의 체중을 감량했다. 제정신이라면 성립하지 않을 거래였다. 얍삽한 방법으로 덜어낸 살은 얼마 안 가 득달같이 되돌아왔다.


“카복시 한 달 무제한, 99,000원!”-배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지방을 분해하는 시술법-

그 사이 세상은 변해 이제 미용시술도 온라인 공동구매가 가능해졌다.-가히 뷰티 공화국답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중 하나를 택했다.


허름한 가정의학과였다. 위생이 의심스러웠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고 시술을 받았다. 매번 꽂는 수십 개의 바늘에 배는 벌집이 되었다.


그날도 살찐 벌을 받으러 내 발로 그곳에 갔다. 간호사는 누워있는 내 배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젤을 바른 후 재빨리 바늘을 찔러놓곤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아팠다. 그 고통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뱃살이 그동안 잘 처먹고 이제와 배신하는 거냐며 장기를 꼬집는 것 같았다.


“톡!”
그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헛것을 들었나?
“토독!”
공기방울이 터지는 소리였다. 바로 내 배에서.
“토독토독 톡톡톡 토독토독토독!”
벌집이 된 배의 다른 구멍에서 이산화탄소 거품이 보글보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꺄악!! 선생니임~!”
비명처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뛰어온 간호사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추며 배와 이산화탄소 주입 밸브를 매만지곤 금세 사라졌다. 좀 전보다는 작아진 공기방울이 터지는 배를 바라보며 살과의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걸까, 죽기 전에 끝이 나긴 할까 한숨을 쉬었더랬다.


당시에 행한 폭식과 무리한 다이어트 덕분에 지금은 성한 곳이 없다. 이제 위며 대장이며 조금만 일을 시켜도 파업을 선언한다. 허탈하게도, 그 덕분에 갈망하던 체중 감량을 이뤘다. 망가진 건강과 정신은 날씬한 몸속에서 행복하냐고 묻는다.


폭식 시절, 식이장애 카페에서 본 수많은 게시글이 기억난다. 먹고, 토하고, 강박적으로 운동하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고통받는 여성들. 오늘도 누군가는 체중계에 올라 0.1kg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오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도 두 뼘의 감옥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7023&code=14130000&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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