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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l 25. 2019

우이령길

나의 기다란 아지트.

힘든 시절엔 자주 어디론가 도망치려 했다. 10년 넘게 살아온 일산이 진저리치게 싫어져 서울 반대편 성남으로 도망가도 고무줄이 늘어났다 되돌아오듯, 다시 그곳으로 튕겨 돌아오곤 했다.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 궁했던 시절, 힘들 때면 산으로 떠났다. 약간의 간식과 물을 낡은 나일론 가방에 챙기는 게 채비의 전부였다. 등산화도 없는 볼품없는 차림이었지만 산은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다. 그래서 자주, 북한산으로 도망가곤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이령길을 좋아했다.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허용되는 곳. 돈도, 인맥도 필요 없이 오로지 산을 향한 열정만 있다면 갈 수 있는 특별한 곳.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면 그는 다른 듯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하곤 했다. 가끔은 푸른 얼굴로, 가끔은 하얀 얼굴로, 언제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나는 참 말주변이 없었다. 박봉에 부당한 대우를 당했던 초년 직장생활, 부모님과의 끊임없는 갈등, 오래된 남자 친구의 배신 등. 한(恨)을 가슴에서 턱 끝까지 쌓아놓고도 입 밖에 내는 방법을 몰랐다. 그저 우이령이 말없이 내준 길을 걷기만 했다. 저벅저벅. 걷는데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그 시절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면 미쳐 날뛰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조금씩 가라앉았다. 견디지 못할 일이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그렇게 2시간을 걷다 보면 반대편 우이동에 도착한다. 그러면 또 2시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 싫어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던 집으로, 고무줄이 돌아오듯 그렇게 또다시 원점으로. 언뜻 보기엔 아무 의미 없는 4시간짜리 여행 코스였다.

 

그러나 그 의미 없는 여행을 여러 번 반복했다. 교현에서 출발해 묵묵히 우이동으로 도착 후, 우이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빙빙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풍경이 떠오른다. 우이동 출구에 옹기종기 모인 정겨운 식당가와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줄 서있던 버스 종점. 그 풍경이 어제처럼 익숙하다.

 

아무말 없어도 괜찮으니 자주 오라며 내 등을 다독이던 우이령길. 그 숲길을 걷던 여행 덕에 조금씩 숨을 틔워 이십 대를 겨우 버텼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때를 어떻게 견뎠을까. 그가 그곳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이 낯선 길을 헤매다 울었을까.

 

가족을 이룬 후로 그를 한참 찾아가지 못했다. 아직도 저벅저벅 걷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가야겠다. 저벅저벅, 자박자박, 가만히 회포를 풀 수 있겠지. 그는 또 싱그러운 얼굴로 나를 맞아 줄 것이다.




background (c) by http://m.k-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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