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밥을 한 수저 뜨던 남편이 움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먹던 삼계탕 때문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밥이 가득한 입가엔 쑥스러운 웃음기가 어려있다.
"너무 기대돼서 땀이 다 나나 봐?"
"푸하하하하~"
웃었다. 시트콤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그는 미안함을 가리기 위해, 나는 억울한 심정을 털어내기 위해 둘이 거의 동시에 배꼽 빠지게 웃었다.
한 달 전부터, 아니 남편의 생일이었던 4월부터 계획했던 일정이다. 남편은 매년 자신의 생일 선물로 산행을 할 수 있는 며칠간의 자유시간을 요구해왔다.-남편은 엄청난 등산 애호가다. 결혼 전에는 12월에 산에서 비박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가 한 달 전, 오늘 출발할 2박3일의 외박을 통보한 건 정당한 요구였다.
그러나 유아기 아이를 둔 가정의 계획은 항상 어긋나는 법. 민이는 며칠 전부터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다 급기야 열이 치솟는다. 다음날 출근이 아득해지고, 그가 다음 주에 친구와 간다던 캠핑이 눈에 거슬린다. 그것 또한 나름의 정당성이 있지만, 하필이면 일주일 간격으로 갈건 뭐람, 심사가 뒤틀린다.
등산장비며, 기차표며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쁜 남편을 그냥 곱게 보낼까, 하다가 억울해졌다.
'왜 아이 문제는 엄마만 이렇게 신경 써야 해?
왜 아빠는 신경도 안 쓰는 거야?'
딱 일 년 전, 전 회사에 있을 때 매일 복기하던 억울함. 왜 나만. 왜 나만 맨날 선생님께 미안해하고, 회사에 미안해하고,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온갖 서류 제출이며, 납부며, 준비며 왜 나만 해야 하나. 해소되지 않은 문제의식은 나 자신을 견디기 힘들게 괴롭혔다. 왜 나만 이렇게 괴로워야 해? 저 이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는 듯 평온한데?
카톡으로, 통화로, 얼굴을 보고, 참 많이도 싸웠다. 그 투쟁 덕분인지 그는 육아를 많이 '돕는'-사실 이 말 참 싫어한다. 애초에 엄마가 담당이라는 뜻 아닌가- 가정적인 남편이 되었으나 아직 불만이 남는다. 가령, 오늘 같은 날.
사람은 변한다. 암, 일 년이나 지났으면 변해야 마땅하다. 어차피 보낼 거, 웃으며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단, 생색은 내는 것으로 마음속 합의를 한다. 삼계탕을 끓여주고, 웃으며 뼈 있는 말을 던진다. 보내는 주겠으나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도록. 나를 즈려밟고 가, 자유를 즐기소서.
급하게 서재로 가 기차표를 확인하던 그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오늘 가지 말까?"묻는다.-물론, 내가 만류할걸 알고 꺼내는 말이다-
"괜찮아, 다녀와~ 많이 힘들겠지만 난 괜찮아, 하하"
또 시트콤처럼 대폭소를 한다. 그는 미안한 척, 나는 쿨한 척. 그리고 잘 다녀오라 배웅한다. 3일간 혼자 힘에 부쳐 남편을 욕할지도 모르지만, 난 금세 까먹고 시커멓게 절어 돌아온 남편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또 무언가 돕겠다 종종거리고, 나는 또 웃으며 갈구고, 그는 또 집에와도 퇴근한 것 같지 않다며 투덜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