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똥손 일대기
네 ,그렇습니다. 접니다...
남편은 목요일마다 소포장된 반조리 식품을 온라인으로 쇼핑한다. 그러면 늦어도 금요일 저녁에는 쇼핑한 것들을 담은 스티로폼 박스가 문 앞에 도착한다. 회사를 다닐 당시는 그게 참 좋았다. 그냥 재료를 썰어서 준비된 육수와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이면 짜잔, 끝! 이 얼마나 편한 준비인가. 이 세트를 개발한 회사에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요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되어도 그의 쇼핑은 끝나지 않았다. 저번 주도, 이번 주도 현관 앞에 얌전히 나를 기다리는 스티로폼 박스를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여태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자부심, 바로 요리 실력에 대한 의심이었다.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을 거부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주말마다 주문을?? 마음속 갈등을 견디다 못해 그에게 정공법으로 질문을 던졌다.
"오빠, 혹시 내가 요리한 음식 먹기 싫어서 시키는 거 아니지?"
3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잠시 눈에 초점을 잃었다 찾은 남편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야, 싸서 산거야!!"
"그래서 얼만데?"
"6천 원... 아니 8천 원?"
싸긴 쌌다. 마트에서 2인분씩 소포장으로 사기 어려운 데다, 대충 마트의 상품을 2인분으로 계산을 한다 하더라도 말한 가격과 비슷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내 '요리 부심'은 상처가 난 뒤였다.
생각해보면 내 요리 부심은 근거가 미약했다. 나나 남편이나 -오랜 자취 기간으로 인해-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편은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 그저 소금 좀 치면 열심히 먹는 것으로 화답하곤 했다. 오히려 아이들이 종종 "엄마 요리 맛없어~"라는 말을 가감 없이 했으나 나는 애써 그걸 외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입맛을 모른다는 얄팍한 핑계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없던 신혼시절에도 그랬다. 특히 명절, 솜씨 좋은 큰어머님의 진두지휘 아래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전 뒤집기와 설거지가 전부였다. 결혼 후 첫 해, 설거지를 마치고 사과를 깎다가 허공에 날려 아가씨에게 스트라이크로 전달한 후론, 어느 누구도 나에게 칼을 맡기지 않았다.
최대 난관은 출산 후 찾아왔다. 어른 음식이야 사거나, 대충 만들면 그만이지만 이유식은 그렇지 않았다. 다지고, 육수 내고, 끓이기의 연속. 여태까지 육수내기는 국 끓일 때 멸치 대충 몇 개 던져 넣으면 되는 줄 알고 있던 나로서는 멸치 똥을 따고, 볶아서, 깨끗이 닦은 다시마와 한참 끓이는 일이 -퍽 귀찮은- 신세계였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끓였건만, 실수로 불에 달궈진 유리 뚜껑이 냄비 위에서 와장창 부서졌을 땐, 정말이지 눈물이 날 뻔했다.
싱글일 때 맨날 사 먹다가, 결혼만 하면 갑자기 요리 능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로 착각했다. 아니면, '결혼한 여자는 요리라면 무조건 잘하는 거 아냐?' 하는 맹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요리를 잘하는 먼치킨 같은 엄마는, 여태까지 내가 겪은 바로는 없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어느 차장님은 결혼 15년 차를 달려가도 요리엔 소질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어느 부장님은 무침은 자신 있지만 국 찌개는 못하겠다고 했다. 시어머님도 꼭 내 손으로 자식들 밥을 해 먹여야 한다는 집착이 없다. 남편의 고향에 가면 그저 좋아하는 것 먹고, 즐겁게 지내다 가면 그뿐. 덕분에 나는 '요리 똥손'임에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여성이 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듯이, 날 때부터 '요리 금손'도 아니었으리라.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방법을 시도할 뿐이다. 여성이 선천적 요리 전문가라는 생각은 그렇게 스스로를 근거로 깨져갔다.
배경 (c) tvn 박보영 출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