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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Jun 12. 2019

빨간 머리끈을 묶은 아이

일의 역설

7개월 휴직을 끝으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몇몇 지인에게 알리고 축하를 받으며 득의양양하게 출근길에 나섰다. 어수선한 사내 분위기, 어색한 느낌. 첫 출근 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래간만에 일해서 그런거라 애써 외면하며 하루를 보냈다.


퇴근 후, 피곤함을 핑계로 꺼내놓은지 한참된 철학책은 못본척 지나쳤다. 끊임없이 어지르는 아이를 혼내며 ‘어쩔 수 없잖아. 애들이 너무 말을 안 듣는 걸.’하며 자연스럽게 합리화 했다. 공부는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책상 한편에 제법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은 자격증 문제집은 조만간 먼지가 소복이 쌓인 얼굴로 나를 책망할 것이다.


출근을 시작한 월요일을 기점으로 평상시 머릿속을 맴돌던 글감이 어디론가 도망쳤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던 손에는 어느새 폰이 들려 있었다. 귀한 시간을 죽이며 ‘괜찮아, 조금 뒤에 일하기 전에 쉬는 건데.’라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변명을 했다.


회사에 매인 대가로 얻는 평온함.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안온한 삶. 바라던 안정을 얻었으니 누려도 될까? 이렇게 영원히 살아도 좋을까? 내가 깨어있는 반나절을 돈으로 바꾸고, 적당한 피곤을 얻어 잠드는 것이? 모래 위에 종이로 만든 회사에서 무언가 있어 보이는 소꿉장난을 한다는 게?


머릿속이 복잡해질 새도 없이 아이는 아침부터 울며 떼를 썼다. 제가 좋아하는 빨간색 고무줄로 머리를 묶어주지 않았다고 난리였다. 엄마는 빨간 머리끈이 없으니-매일 그것만 묶고 잃어버렸는데 남아있을 리가 만무했다- 노란색이나 주황색으로 하자고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아이는 고무줄 통을 보지도 않고 설득하는 엄마도 믿지 않았다. 혼날 줄 알면서도 기어코 통을 뒤집어 구석에 숨어있던 빨간색 머리끈을 찾아냈다.


아이들은 참 단순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방해따위 상관없이 그것을 추구한다. 부모는 아이의 고집을 꺾어 세상에 순응시키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순응이 꼭 옳은 것일까? 사회생활을 잘하도록 아이를 억눌러 보통 사람으로 만들고, 결국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게 바른 길일까? 그렇게 가르쳐 아이가 나의 삶을 답습하고, 또 아이의 아이가 그 삶을 답습하는 형태로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그걸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알량한 소속감 하나조차 갖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시류를 따르는 사람으로도 키우고 싶지 않다.-아니, 애초에 부모가 아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게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내면에 귀 기울여 매일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아이와 함께 나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하는 중이다.



Photo by Andre Ben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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