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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Sep 30. 2019

카페인을 끊자, 몸이 정직해졌다

중독은 생각보다 교묘하고, 격렬했다.

저는 심각한 카페인 중독자 ‘였’습니다. 과거형을 쓴 건, 추석 이후 중독이 잠시 소강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피곤하다는 핑계로 한 스푼, 두 스푼 커피 섭취량을 늘려왔습니다. 추석 전엔 깨작거리는 숟가락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커피를 병 째 들이붓고, 거기에 더해 모카를 만든다고 카카오 가루까지 더하니... 아마 한 잔에 성인 하루 카페인 최대 섭취량인 400mg은 넘게 마신 지 오래였을 거예요.


과거 커피를 줄이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몇 년 동안 소화불량으로 고생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죠. 하지만 누적된 피로는 줄기차게 등에 업혀 번번이 시도를 무산시켰습니다. 왜 일요일엔 자도 자도 피곤할까요? ‘나이 탓’이라던가, ‘스트레스’, ‘피로 누적’ 등 다들 아는 뻔한 이유 때문인 줄만 알았습니다. 이번 추석에 앓아눕기 전까지는요.


추석 당일, 두통이 심해 헛구역질에 오한까지 들었습니다. 몸을 일으키면 머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두통에 밥 한술 뜨지 못하고 연휴 내내 누워있었습니다. 당연히 커피는 마실 생각도 못했습니다. 두통이 심한데 더 예민해지는 카페인이 가당키나 하나요!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오래간만에 긴 휴식을 취했습니다.


일주일 정도의 카페인 금식 기간을 마친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 저는 피로 누적이 아니었어요! 일과 중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종일 피곤하지 않았습니다.-일이 많은 날 오후, 밤샌 다음날은 약간의 피로가 찾아왔지만 일찍 자면 금세 피로가 가셨어요. 과거처럼 피로에 찌든 상태는 아니었죠.- 문득, 어쩌면 커피에 대한 갈망이 피로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독은 생각보다 교묘하게 저를 속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두통도 카페인 금단 증상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카페인 공급이 중단되어 갑자기 늘어난 뇌혈류가 두통을 일으키게도 한다네요. 추석에 커피를 마시지 못해 두통이 생겼고, 두통이 커피를 끊게 하다니…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힘든 일상에서 위안을 얻기 위한 행동은 쉽게 중독이 되곤 합니다. 카페인 외에도 담배, 쇼핑, 웹서핑 등 우리가 인식 못하는 중독까지 포함하면 누구나 몇 개씩 가지고 있죠. 나는 그걸 쉽게 끊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지만... 글쎄요, 중독된 신체의 거부는 생각보다 격렬했습니다. 피곤과 두통에 시달린 일주일은 그렇게 사랑하던 커피를 끊게 할 만큼 지독했으니까요. 당연하게 지속하던 나쁜 습관(중독)을 끊고 내 상태를 세심히 살피는 건, 성가시기도 했지만 뿌듯하기도 한 경험이었습니다.


때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보상처럼 홀짝이곤 했던 달콤한 카페모카가 그립습니다. 나른한 오후에 정신을 반짝 차리게 하던 진한 아메리카노의 향도 그립고요. 하지만 이제 더는 카페인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피곤하면 잠시 바깥바람을 쐬며 쉬고, 그래도 피곤하면 일찍 자기. 스트레스 때문에 모카가 당기면 일과 나를 분리해 생각하고, 퇴근 후 좋아하는 일로 보상하기로 했어요.


                                                         (c) https://www.instiz.net/pt/6143048


‘그래서 커피를 완전히 끊었답니다~!’로 마무리하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다시 한 잔씩 마시고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업무에 집중이 안 된다는 사실이죠.-일해야 먹고사는 직장인의 숙명이랄까- 하지만 예전처럼 포샷을 한꺼번에 탄다던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진하게 마시는 행위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한 잔만으로도 가끔 두통이 오는 느낌이거든요.


‘중독’이라는 핑계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던 나쁜 습관들. 그건 나를 돌보지 않은 둔감함에서 기인한 행동이었습니다. 세심한 사람이 된다는 건,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도 포함이 된다는 걸 이번 기회로 깨달았습니다. 중독으로 나를 속이고, 그 이면의 진짜 문제에 눈 감는 실수를 또 반복했습니다. 매일 글을 통해 반성하다 보면 이런 실수가 언젠가는 줄어들까요?




Photo (c) by Mike Kenneall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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