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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Aug 07. 2019

이름

지극히 개인적인, 지극히 사회적인

“안녕하세요, ‘미’라고 합니다”

이름이 특이한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잠시 침묵 후)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본명 맞아요? 외국인인가?”

(외자인 경우) 그래서 성이 뭔가요?”

(성이 특이한 경우) “이런 성이 있다고요? 씨 중에 유명한 사람 있어요? 한국에 몇 명이나 살아요?”

호기심에 번들거리는 몇십 개의 눈. 우리 조상님은 과거에 업적 하나 안 세우고 뭐하신 걸까. 따가우리만치 빼곡한 시선에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정신은 탈진 상태가 되었다.  동공은 흔들리고 말은 더듬더듬 길을 잃는다. 거품처럼 삽시간에 꺼져가는 기대와 관심. 나의 자기소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내 정체성은 특이하면서도 특이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기묘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엄마는 이 난감한 작명 센스의 범인을 아빠로 지목했다.

“나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느이 아빠가 너 낳기 전에 혼자 정해버렸더만. 여자면 ‘미’고 남자면 ‘민’이라고.”

(99%의 확률로 예상하건대 아빠는 술김에 정한 것이 틀림없다)


초등학생 시절엔 이름을 딴 온갖 해괴망측한 별명에 시달렸다. 변비, 형수님, 형형색색 등등. 청소년기 때는 성을 붙여야 하나, 이름만 불러야 하나 친구들에게 늘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성인이 되어서는 입사 후 근 일 년을 대표에게 ‘김미’로 불렸다. 어떤 때는 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전화상담원과 입씨름을 하느라 내 성이 들어간 온갖 단어를 줄줄이 불러야 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채 산다는 건 아닌 이가 상상하는 것만큼 멋진 생활이 아니었다.  


종종 특이한 이름을 동경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다. ‘자신도 이름이 특이했으면 좋겠다’며 빈말이 아닌 부러움을 내비치는 사람. 그들 중 간절한 누군가는 법원 문을 두드려 개명신청을 하고, 그보다 덜 간절한 누군가는 결혼 전부터 아이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궁리한다.-그 소망의 주체가 누구인지 잠시 헷갈린 덕분이리라- 그러나 후자를 보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아이에겐 ‘튈 권리’가 아닌 ‘평범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이다. 부모의 소망 하나 충족하자고 아이의 어린 시절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좀 가혹하지 않은가.  


아이가 외향적이라 튀는 걸 즐기면 괜찮지 않겠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지는 걸 중시한다. 다른 또래와 동질감을 느껴 집단을 만들고, 그 또래집단 속에서 서로를 모방하며 사회화를 달성하기 때문이다.(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2017) 이 경우에도 튀는 이름은 또래집단에서 플러스 요인이라기보다는 마이너스 요인에 가깝다.


10년 전에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 적이 있다.

http://m.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43413&referer=

이름이 튀어 항상 주목받고, 지겹도록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는다면 반사회 인물이 되는 건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농담입니다-


불용 한자(이름에 넣지 말아야 할 한자)를 떡하니 써 어디 가 좋은 평가 한번 못 받아본 내 특이한 이름. 소심한 성격 덕에 '타인에게 각인'이라는 소기의 목적조차 이루지 못한 채 닳고만 있는 나의 이름. 게으름 덕에 미루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개명신청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지선'이라던가 하는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그러니 이 글을 혹시 보게 될 예비 부모님은 개성 넘치는 작명 욕심을 부디 내려놓길 부탁드린다.




Photo (c) by Blake Barlow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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