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 Oct 10. 2019

외로워서 씁니다

글을 쓴다는 건, 정말 고독한 일일까?

어린 시절엔, 그러니까 혼자서 일기를 끄적이는 게 내 글쓰기의 전부이던 시절엔 글을 쓰는 일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끝도 없는 어둠과 추위, 소리쳐도 메아리조차 없는 적막. 그래, ‘작가’라면 모름지기 고독한 이미지가 제격이지. 고독에 시달리며 어둠에 차곡차곡 글을 쌓는 것이 쓰는 이의 숙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쓰고 나니 그건 나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가정해보자. 어떤 사건을 겪고, 사건과 연관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걸 생각에서 그쳤다면,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한 번의 생을 살고 사라진다. 이후 그걸 갈무리해 비밀글을 쓴다면, 그 생각은 또다시 생을 산다. 사건 당시와 쓰는 당시, 두 번의 생인 것이다. 그런데 글을 공적인 공간에 발행하고 만 명이 읽는다고 가정한다면, 생각은 만두 번의 생을 살게 된다. 그냥 사라질 운명이었을 내 경험과 생각이 독자들의 머리에서 다시 생을 반복한다. 어떤 콘텐츠를 창작하고 대중에게 내 보인다는 건 이런 매력이 있다. 내가 아무리 달변이라 한들 오프라인에서 만 명의 사람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게 가능할까?


몇몇 독자는 글을 훑고 ‘흥미롭네’ 하고 넘길 것이다. 몇몇 독자는 공감이 간다며 댓글을 달 수도 있다. 그리고 몇몇 독자는 글쓴이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에도 내가 쏘아 올린 이야기는 계속 그들의 머리에서 생을 지속한다. 만세 번, 만네 번. 그리고 누군가는 그 생각을 발전시켜 다른 글을 쓰고 전파한다. 나의 생각은 다른 형태가 되어 더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다시 생을 반복한다.


글을 쓰는 지금, 외로움이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조회수가 1이라도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나의 느낌을 같이 느낀다고 상상하면 외롭지 않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찬바람과 함께 찾아와 나를 벼랑으로 몰던 계절성 우울이 사라졌다. 남과 비교하던 열등감이 사라졌다.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데만 집중한다. 더 좋은 글을 위해 내 관심이 머물만한 곳에만 신경을 쏟는다.


지금도 광활한 우주를 홀로 헤매는 느낌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저 너머에 반짝이는 별들이 존재함을 안다. 내가 쏘아 올린 가느다란 빛, 그것을 반사하는 수많은 행성.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내가 생명을 불어넣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다가가 새로운 삶을 산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신호를 쏘아본다.


Q) 글은 만남의 다른 얼굴임을 기억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의 글은 누구에게 인사를 건넬까요?




다음 매거진 글은 '글로 밥 벌어먹는 여자' 작가님의 <흑역사를 공개하면 생기는 일>입니다. 내보이기 어려운 상처를 글로 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글밥 작가님의 경험담에서 살짝 엿보는 건 어떨까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할지 막막하다면 지금 《매일 쓰다 보니 작가》글을 추천드립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며 자신만의 무기를 단단하게 다진 작가의 노하우가 궁금한 분들은 매거진 구독 부탁드릴게요.



Photo (c) by Logan Lamber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도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