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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Nov 25. 2019

관계

어른이 되어도 어려운 관계

미투, 지금은 성폭력/성희롱 폭로 운동을 지칭하는 단어지만 십 년 전만 해도 그 의미가 꽤 달랐다. NHN(네이버)에서 만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미투데이(me2day)의 준말, 보라색 말풍선이 뜨면 모르는 사람들과 나의 하루를 시시콜콜 나누던 그곳. 묘하게 트위터와 비슷했지만 한국 사람만 가득해서 더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그 시절, 나는 참 겁이 없었다. 아는 친구 하나 없이 그 세계에 입성 이런저런 허세 가득한 뻘글을 쓰다가, 올라오는 타인의 포스팅을 살펴보곤-오픈 당시엔 모든 포스팅이 이웃 아닌 타인에게도 공개 되었다- 괜찮다 싶으면 무조건 미친(미투데이 친구의 준말)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를 타고 가 또 미친을 맺고... 당시 기백 명으로 기억하는 미투데이의 이웃은 백 프로 온라인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젊음의 패기였을까, 처음 만난 사람과 함부로 말 섞는 것도 모자라 오프라인 모임도 겁 없이 참석했다. 당시에도 '~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모임이 있긴 했지만, 미투데이에선 친목 위주의 소그룹 모임이 더 활발했다. 나는 순둥이 캐릭터를 내세우던 'P'님과 꽤 친해져, 그분이 속한 동년배(사실 나와는 띠동갑이었던) 그룹의 다른 분들과도 이웃을 맺고, 결국에는 "우리 홍대에서 모일 건데 오실래요?"라는 초대까지 받게 되었다.


글자나 사진이 아닌 실제 마주한 얼굴은 조금 낯설었다. 술 마시며 농담 따먹기 하는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공개'라는 꼬리표를 떼고 우리끼리 골방에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본래의 나'라는 그림자를 떠올리게 했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물 위의 기름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던 까만 기억이 발 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걸 애써 무시하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몇 달을 그들과 재밌게 놀았다. 그러다 얼마 후 사달이 나긴 했지만.


그날은 특별하게 여자들만 모이자는 제안에 "콜!"을 외치고 퇴근 후, 홍대에 달려갔다. 'D'언니와 'A'가 나를 반겼다. 술이 돌아가자, 'F' 언니는 발그레하게 취해 "난 예쁜 게 좋아. 너는 얼굴이 예쁘고, 너는..." 하며 이상한 칭찬 릴레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기억이 뚝 끊겼다.


정신 차려 보니 'F'언니가 내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느새 길거리 한복판이었다. 삿대질까지 하며 흥분한 그녀를 'D'언니가 말리고 있었다. 날 부축한 'A'에게 "무슨 일이야?"라고 물으니 언니가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단다. 분명 정황상 내가 했을 텐데, 나도 'A'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마침 길 옆에 있던 탐엔탐스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술을 깨고 가자는 말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지만 노려보는 언니 앞에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이웃은 끊겨 있었다. 다음 날 'D'언니에게 물어봤으나 "네가 이상하게 쳐다대"라는 허탈한 대답뿐. 미투데이에서 농담 잘하고, 잘 까불던 나는 그날 언니의 서슬 퍼런 눈빛에 다시 현실의 지질한 나로 돌아갔다. 'F'언니의 번호가 있었으나 감히 전화해 물어볼 두도 못 내고 답 없는 문자를 몇 개 깨작거리는 게 전부였다.


거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지질한 나는 또 실수를 저질렀다. 이제는 연락이 뜸해진 그 그룹 사람들에게 새해 안부 문자를 보내며 그 언니도 포함시킨 것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금은 풀렸을까,하고 찔러보는 식이었달까. 그러자 언니는 내가 보낸 문자를 사진으로 찍어 포스팅했다. "이런 게 쓰레기"라며...


다시는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새 또 까먹고 온라인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다면 "쟤 정신 못 차리고 또 저러네."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몇몇 분들이 주신 격려와 관심 덕에 둥실 떠오르지만 또 언제 피시식 가라앉을지 두렵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에 무소의 뿔보다도 부족한 인간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또, 상처 받을 줄 알면서도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발을 들여놓는다. 같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던 다른 이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지 않을까 믿으며...


(c)쏘냐 님이 보내주신 엽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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