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때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렸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 수용소 생활을 통해 자신이 배웠던 의학 교과서가 얼마나 많은 오류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가령 교과서에는 사람이 며칠 잠을 못 자면 견딜 수 없고 죽는다고 했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거의 일주일을 이상을 못 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또한 그 안에서는 양치질을 할 수 없고 비타민이 결핍돼 있었지만 놀랍게도 잇몸이 그전보다 건강해졌다고도 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이라고 했습니다. 독일군들이 유대인들을 돼지라고 부르고 실제로 돼지처럼 취급했습니다. 또 다른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자신이 책 출간을 하려고 했던 평생 동안 연구한 임상 자료를 빼앗긴 일이라고 했습니다.
돌려달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했고 그는 평생의 연구 자료를 한순간에 뺏긴 뒤 너무나 망연자실하게 넋을 잃은 채로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냈습니다.
당시 그에게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줄만한 어떠한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자식도 없었고 소중히 여겼던 원고마저 빼앗겨 버렸죠. 그러다 발진티푸스로 열병까지 심하게 앓으면서 그 원고가 인쇄되는지의 여부가 정말로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그 후 더 이상 원고를 잃은 것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원고의 가치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런 깨달음을 얻게 후에는 어떤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그의 삶의 의미를 손상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가 사용한 방법 중에 하나는 동료들과 함께 유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였습니다. 그들이 석방된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을 적고 이야기했습니다. 가령 전쟁이 끝난 뒤 일상생활 속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습관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면서 웃는 거죠.
프랭클은 이러한 유머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각한 상황, 죽고 싶은 상황에서도 계속 유머를 만들고 활용하면서 그 상황으로부터 잠시 분리된 느낌을 갖고 거기서 또 새로운 희망을 얻는 겁니다.
또 그는 아우슈비츠가 주는 고통에 완전히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방어 기제 중 억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올 때마다 이 고통은 이미 다 과거에 지나간 일이고 자신은 전쟁 후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하는 것처럼 느끼려고 계속 노력을 한 거죠.
고통스러운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본인의 관점이 아닌 과학적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학자의 관점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심리적으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 기술을 쓴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은 예측이 불가능했습니다. 독일군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 좌지우지됐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이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프랭클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들에 더욱 집중하면서 힘든 나날들을 극복해 낸 겁니다.
아우슈비츠 유대인들은 새벽 휘슬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깨어나 고통스러운 하루 일과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얼어붙은 신발을 신고 노역장에 나갈 때 고통스러운 신음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아침에 프랭클은 주머니에서 작은 빵 조각을 꺼내서 입에 넣곤 했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부족한 식량을 쪼개고 쪼개 저장해 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정말 심리 기술의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아우슈비츠 생활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용되기 전 미국에 이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강제 수용소로 가는 것을 택한 겁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임에도 미국행을 망설인 이유는 바로 연로하신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당연히 아들이 미국으로 떠나길 바랐지만 프랭클은 결국 스스로 힘든 상황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기 전부터 앞으로 겪을 고난들을 실감 나게 상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미리 갖췄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지옥 같은 생활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악몽처럼 줄곧 프랭클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명저들을 계속 집필하고 끊임없이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로고 테라피, 실존적 의미 치료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랭클이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외부 상황이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최후의 선택권 만큼은 결코 빼앗아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로고 테라피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하는 작업을 통해서 내면의 고통을 창조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빅터 프랭클을 생각할 때마다 굉장히 경건한 마음이 들고 또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할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저에게 언제나 교훈을 주시는 분이라 생각하면서 계속 힘을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자신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안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되어도 빅터 프랭클이 겪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는 분명 별거 아닐 것입니다. 항상 빅터 프랭클을 마음에 담으시고 더 집중할 것에 집중하시면서 여러분의 멋있는 삶을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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