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광고 대행사의 현실 - 3
중소 대행사에선 대리님 보기가 꽤나 힘들어요. 신입사원, 1~2년차를 지나는 주임님들 그리고 과장님은 여기저기 많은데 대리님들은 유난히 없는 곳들이 많죠.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들도 다 대리직급을 거쳐서 오셨을텐데 도대체 대리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사실 대리는 보이지가 않을 뿐이고 여기저기 아주 잘 숨어있어요. 찾기힘든 대리님들은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숨은대리님찾기를 시작해 볼게요
대행사 마케터들은 정말 많은 사람을 상대해요. 클라이언트사는 분명 한 곳인데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은 최소 두 세명인 경우가 많죠(그 두 세명이 말이 다 달라요) 게다가 상대하는 기업들의 담당자는 보통 그 곳의 인하우스 마케터이거나 또 다른 대행사의 직원들인데 이들조차 자주 바뀌는 편이죠. 게다가 우리 회사 사람들도 아마 계속 바뀌고 있을 거예요 분명 1년 다녔는데 1년 전에 있던 직원들의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는 경험도 하게 되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탓일까 이상하게 마케터들은 사람 보는 촉이 발달하게되죠 그 촉은 특히나 대리를 달면서 가장 날카로워지는데 이 때는 채용공고만 보고도 회사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게 된답니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더 회사를 고르는데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어요. 그러니 회사들은 대리들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회사를 거를 수는 없죠. 코인 대박이 아닌 이상 회사를 다녀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하루23시간 37분가량 퇴사 생각을 하던 대리님들은 주로 다음 경우로 자신이 있어야할 곳을 정하게 돼요
흥선대원군형 : 마케팅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지구 어딘가
보통 회사에서 가장 바쁜 건 대리에요. 실무도 어느정도 손에익었고 아직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면서도 어느정도 요령도 생기는 시기여서 일 처리가 빠르다보니 특히나 많은 일들이 들어오게 된답니다. 특히 신입부터 시작해서 이직없이 첫 직장에서 대리를 단 케이스라면 이미 그 회사의 모든 실무들은 그 대리님의 손이 걸쳐있을 거예요. 이쯤 되면 본인의 개인생활은 없어요. 주말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그냥 없어요)아무튼 없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는 결심이 선 대리님들은 연봉과 경력을 포기하고서라도 다른 직종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보통 회사에서도 일을 굉장히 잘하고 똑똑한 대리였을 확률이 높고, 마케팅과 다른 직무를 찾으려 해도 거의 모든 직무에는 마케팅이 포함되어있어 어딜 가더라도 금방 익숙해지는 경우가 많답니다.
지박령형: 그냥 존.버.
이들은 이미 회사의 지박령이 된 대리들이에요. 다른 대리들은 이미 다 사라졌지만 타이밍을 놓친 이 대리는 도망칠 힘도 사라진 상태고 기계처럼 반복되는 루틴에 너무도 익숙해져 그냥 회사-집-회사-집으로 이어지는 무한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요. 물론 이들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능력에 잡아 먹혀 모든 일을 다 도맡아 하다가 그 상황에 익숙해져 버리고 결국 회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져버린 경우가 많죠. 그게 아니라면 아직 차 할부금을 갚고있는 중일지도 모른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 이직 타이밍은 한번 더 오게 되는데요. 끈끈하게 연을 이어왔던 광고주를 당당히 등에 업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는 케이스랍니다.
적당히형 : 도긴개긴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치 야생의 밀림 같은 대행사를 거치다 보면 아주 사소한 차이만 발견해도 그로 인해 벌어질 폭풍같은 자신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되어요. 심지어 광고주 관상만 보고도 앞으로의 업무난이도를 예측하는 대리님들도 있답니다. 게다가 그동안 쌓아둔 많은 정보력으로 본인 회사와 다른 회사의 관계들을 속속들이 꿰고 여러 회사들의 장, 단점을 이미 파악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내가 어딜 가든 여기나 거기나 다 여기서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지금 회사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내가 포기할 수 있는 부분들은 포기하면서도 원하는 것들은 가져갈 수 있는 회사들을 선별해서 선택하게 되어요. 여기저기 부족한 대리들은 어떤 회사에서든 대부분 환영받기 때문에(일을 잘한다면) 꽤나 많은 기회가 생긴답니다.
이 글의 도입부를 보고 어? 우리 회사에는 대리님들 많은데 라고 느꼈다면, 그 회사는 그래도 좋은 회사일 확률이 매우 높아요. 혹은 아주 작은 경력으로도 대리를 달아주는 회사일 수도 있지만 보통 많은 대리들이 선택한 회사는 그만큼 조건이 괜찮았다는 얘기죠. 물론 과장 이상의 직급에서는 회사별로 사람별로 연봉격차가 커지고 생활패턴도 바뀌는 경우가 많아 각각 다른 이유들로 선택조건을 바꾸기 때문에 대리들과는 다르답니다.
여러분들의 회사엔 대리님이 많으신가요? 아직도 잘 찾기 어렵다면 회사 사정을 다시한번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몰래) 그럼 다음화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