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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 Mar 31. 2024

요즘 사람들의 가스라이팅

어리석은 그이는 덤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순간순간들 속에는 항상 한 인물들이 존재했다. 

남편은 그들을  "믿습니다"에 빠져서 오히려 나에게 화살을 쏘아댔다.

결론적으로는 "믿습니다"라는 그 행보들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파괴를 불러왔는지 

지금 남편은 고행을 하는 수행자 같은 모습으로 내게 비쳤다. 

'요즘 사람들'이란 늪에 빠져서 허우적 대다 결국은 돌아올 수 없는 블랙홀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남편을 "믿습니다"에 감염되어 아직도 기다림으로 무장하고 있다.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목덜미를 잡힌 듯 다시 돌아가는 걸 보면 

남편이 오히려 어마무시한 교주쯤 되는 거 아닌가? 

"믿지 않습니다"를 강하게 믿는 나로서는.




처음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랬었다.

아주 착한 얼굴을 하고선 간사한 뱀 한 마리를 달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동업자로 적합하지 않았던 그 사람을 보내는 시간이 무려 5년이나 걸렸다. 

그 5년 동안 내가 감염된 "믿습니다"는 시간도 돈도 사랑도 일상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어서 금전적 사항들이 여유롭지 못했고, 늘 끊임없이 쏟아부어야 했다. 

하지만 공동대표였던 친구는 본인의 몫은 꼭 가져갔었고,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은 씹다 뱉은 껌 같은 것들만 돌아왔다. 

그래도 행복한 듯 웃고 환하게 착하게 나아갔다. 

그 모습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본인의 일에 대한 사랑이 넘쳐 행복해하면 됐지.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일은 그 친구가 벌여놓고선 뒤처리는 남편이 하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펼쳐내며 그 친구는 밖에서는 엄청난 회사인 척, 

대표인 척하며 뒷감당을 못하고 남편에게 미뤄댔었다. 

남편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저렇게 살면 좋을까?' 라며 입이 나도 모르게 삐죽삐죽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었다. 

처음엔 친구라서 정말 친구를 생각해서 저렇게 잘해주는 건가? 생각했지만 

이 생각이 이어지는 지점은 "혹시.. 저 사람 게이 아닐까?"로 이어졌다. 

남편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하며 나를 밀어내려는 말들을 많이 했었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옳고 그름에 있어서 

따질 땐 따지며 할 말은 하는 스타일에 공과 사에 대한 태도와 평등함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비쳤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나를 견제하고 남편 옆에 있는 내가 고깝게 보였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누렸던 편안함이 사라진다고 예상하지 않았을까?






"음.. OO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아마 싫어할걸?"

"이거 말고 저거 좋아하는데.."

"OO가 왜 좋아? 어디가 좋아?"




나중엔 이 모든 말들이 비꼬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했었다.

주말이면 데이트도 좀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보내려고 했지만, 그 마저도 허락되질 않았다. 

평일에 처리하지 못하거나 본인의 스케줄에 맞추려고 

일을 주말로 미뤄 부탁하거나 현장 작업에 가야 하는 그런 일들이 빈번히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착한 척을 하며 남편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뱀 같은 인간이었다. 

여행을 갔을 때도 급하게 발표를 해야 하는데 본인이 할 수 없던지 (동업자이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만에 있던 우리를 불러야만 했다. 

호텔에서 밤새 울면서 남편에게 화를 내고 '그 인간'이란 심한 말까지 붙여가며 

동업자로서 합당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 조목조목 얘기했었다. 

결국에 큰 마음먹고 간 여행은 온 지 하루 만에 다시 표를 끌어서 돌아갔고, 발표는 시원하게 떨어졌다. 

(후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애초에 떨어질 발표였었다.)

착한 남편은 당연히 "미안하다"는 네 글자를 아주 공손하게 말하곤 했었다. 




하루는 식사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 옆자리에 있었던 그분은 나에게 무슨 영문인지 얘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여주며)"얘가 너처럼 멀쩡하게 생겼는데, 이상한 남자만 만난다?"

"???"(아무 말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그 뻔한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믿지 않습니다"의 스위치를 항상 켜두고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한 남자라는 정의는 남편을 두고서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상한 멘트 중 하나였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이간질을 시도하던 뱀 같은 행위를 

또 내가 당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게이인가? 차라리 이것이 사실이었으면 했지만. 

(괴롭히는 이유가 그쪽 취향이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결혼한다고 발표를 하고 

축하받아 마땅할 시간들 사이에서 "쓰-읍.. 어떻게 OO를 꼬셨지? 대단한데?" 

이런 말들을 흘리며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흐리는 못난 말들을 내뱉었다.

그러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본인도 결혼한다고 했었다.

'갑자기? 이렇게 빨리? 뭐지?' 내 머릿속 레이더망으로 회로를 돌렸다. 

뒷목을 잡고서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는데 

결혼식 비용까지 회사의 돈으로 도움을 줘야 했던 그 그림을 

남편에게 아주 나중에 들었을 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결국 내 머릿속 회로들은 말해주고 있었다. 

착한 남편 주머니에서 본인의 결혼식 비용이 나오는 찬스는 

지금이 아니면 어렵겠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는 결론. 

끝까지 이용하고 또 이용하려는 그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하나라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착한 남편은 끝까지 "믿습니다."를 나에게 강요했다.


"친구잖아." 

"형편이 좀 그래." 

"사람이랑은 적을 두는 게 아니야." 





그 사이 나는 무수히 많은 나날들 속에서 배려받지 못하고 양보해야 했고, 강요당해야 했다. 

마음에 상처는 결국 폭발에 이르렀다.

결혼 이후로 월급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에서 생활에 까지 방해받으며 참을 수 없었다.

그 사람 때문에 왜 우리는 상처받고 싸워야 할까?

남편을 데리고 심리상담을 받게 해야 할까? 

그런 감정 시름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조차 싫었고 이해되지 못했다. 

그렇게 연애 3년 결혼 이후 5년이 지나고서야 헤어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미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헤어질 때까지도 이기적인 태도와 자신의 다른 친구를 내세워 셋이서 함께 해보자는 헛소리를 했다. 

영혼까지 모든 걸 털리고서야 헤어질 수 있었던 남편은 오히려 담담했고, 나는 스트레스에 치를 떨었다. 

살면서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감정을 고단백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그 모든 시간들 속에서 몸이 아프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후엔 달라질 거라는 기대보다 무난히 인생이 흘러가길 바랐다.

그저 직원들이 무덤덤하게 회사생활에 충실히 해주길 바랐고, 

누구 하나 튀는 사람이 있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대표의 아내가 왜 이렇게까지 관여를 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착한 남편의 인간관계는 늘 가스라이팅과 함께 흘러갔으며 

그것은 곧 우리 가계의 금전적 사항과도 직결되는 부분이었고, 

고스란히 집에 있는 내가 받아야 했기에 더 이상은 가만히 두고만 볼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회사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착한 사람은 없다. 

착한 남편 같은 사람 옆에 이용하려는 사람만 존재할 뿐이었다.




남을 탓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남편에겐 심각한 병이 있다고 생각된다. 

무조건적인 동정과 연민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잘못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느 행성으로 가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어느 날인가 만난 직원의 따뜻함이 우리 집이 쑥대밭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 여직원은 나에게 정말 살갑게 했었고, 

회식하면서 수육에 김장김치까지 싸들고 올 정도로 과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와서는 나눠먹고 싶다고 했었고, 

너무 살갑게 굴어서 

'저런 딸이 집에서도 저렇게 잘하면 부모님이 참 좋으시겠네.'라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점점 그렇게 잘 아주 잘 - 회사생활에 적응하며 남편의 일들을 도맡아 가며 잘하는가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착한 남편 옆에만 오면 누구든 변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더니 회사 내에서 사내커플이 생겼다. 

남편이 나에게 말해서 나는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큰 회사도 아닌데 그렇게 사내에서 커플이 생기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나는 반댈세."(고개를 도리도리)

"뭐 어때 - 젊은 남녀가 사귀는 건 좋은 거지."

답답한 소리 좀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내 일 아니겠거니 그냥 넘겼다.






어느 날 살갑던 여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잘 지내고 있지? 아 참! 사내커플이 생겼다고 하던데 알아?"

"아.. 제가 연결시켜 줬어요 -"

"뭐? 아.. 왜그랬어? 

밖에서 사귀는 건 자유지만 회사도 작은데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면 좋지 않을 것 같네."

"....... 음.."



악몽이 다가오는 시간은 아주 타이트하게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이 커플 둘의 개념 없는 행동은 드러나는 데 있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회사 옆 공원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장면을 연출해서 

주위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고, 커플이란 티를 있는 대로 내고 다니는 듯했다.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왜? 또 무슨 일 있어?"

"아.. 그 친구 둘이 회의시간에 테이블 아래에서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아."

"뭐? 내가 뭐랬어 - 당신 도대체 왜 그래? 일부러 그래?"




화가 났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불편한 기류가 감돌았다.

주변 직원들도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친하게 지냈었던 한 직원이 너무 불편하다고 말하며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퇴근 시간에 잠깐 사무실에 들렀는데, 

그 커플 친구 중에 여자친구가 실크 남방을 입고 

아래에는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도 모르게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놀라다 못해 이게 회사에서 입을 복장인가 싶었다. 

단추는 활짝 열어 풀고서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게 입었다.

너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런 나에게 말했다.




"왜요??"(뚱한 표정으로)

"회사에서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사실, 이 부분에 있어 남편이 아무래도 사무실에 한 번 와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었다. 

복장이 너무 불량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했는데 

대표의 와이프라는 사람이 회사에서 의부증처럼 말하는 건 

내 성향에도 맞지 않고 '이런 것까지 내가 나서야 해?' 라며 눈을 찌푸렸다. 

언제나 나쁜 역할을 해내야 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남자친구는 일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여자친구를 졸졸졸 - 따라다녔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이 일을 만든 살갑던 직원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만행에 

같이 동참해서 셋이 세트로 다니며 회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의 살갑던 오지랖들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대표를 사내에서 꼰대 미치광이로 만들어 자기가 회사를 멋지게 꾸려나가는 것처럼 

주변 직원들을 가스라이팅 하기 시작했다. 

대표가 너무 착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한다며 자신이 모든 것을 하고 있고 

본인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회사의 오랜 동료들은 회사를 하나둘씩 그만두게 되었다. 

다들 회사 분위기를 자기 아래로 줄 세우는 정치질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자신이 먹고자 하는 것을 먹어야 하며, 

다른 것을 먹겠다고 하는 사람을 왕따 시키거나 본인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에게 아주 고약하게 행동했다. 

(아마 추측하건대 학교 다닐 때 본인이 당했거나 자존감이 아주 낮은 친구인 것 같다.)

착한 남편을 구워삶아서 자기가 모든 걸 통제하고 마음대로 사람들을 조종했다. 

심지어 내가 오는 것이 싫다며 남편을 꼬셔댔다.

착한 남편은 이번에도 "믿습니다."를 외치며 내 말 따위는 들어주지 않았고 

회사의 금전적인 사항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공유하며 또 속을 뒤집어 댔다. 

정말 눈 뜨고 당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남편과의 조용한 이혼을 결심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갔다.

몸은 점점 회복하기 힘들 정도였고, 남편이 하고 다니는 행위들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실감과 실망감에 죽고 싶었다.

수도 없이 찾아봤다.



'가스라이팅이란?'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가스라이팅 피해'





그 여자 직원이 예쁘기라도 했으면 바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저팔계 같이 생긴 그 친구를 좀비처럼 신뢰하며 당하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깍듯한 척, 일 잘하는 척하며 사람을 홀려서는 본인의 이익을 취하는 

아주 파렴치한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놀라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행사가 있어서 외부에서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있는 자리에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서 남편을 힐끗힐끗 보며 귓속말을 해대는 그런 일도 있었다.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하는 짓들을 그렇게나 하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시간이 지나고 직원들도 많이 바뀌게 되었고,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고 남편은 거절하지 못하는 병과 남을 잘 믿는 그 두 가지의 성향 때문에 

점점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그런 남편과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첫 번째, 가족을 신뢰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고,

두 번째, 가계 사정은 바닥 그 이하로 힘들게 되었고,

세 번째, 내 몸과 마음은 회복이 힘들 정도로 바스러져 갔다.


마지막으로 그 여자 직원이 나가게 된 계기는, 

자신이 5년 동안 일하면서 많은 시간을 회사를 위해서 충성했다는 이유로 차를 사달라고 한 것이었다. 

팀장으로 와 계셨던 결혼하신 여자 팀장님께서 이상하게 여기며 

한바탕 시끌시끌한 사건이 일어나 더 이상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서는 

거의 실신하듯 씩씩대며 회사에서 무단이탈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는 3일 밤낮으로 징징대며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매달리다 결국엔 그만두게 되었다. 

새벽 4시까지 통화하는 통에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참지 못해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더 이상은 연락 오지 않았다.



나는 10년이란 시간을 버렸다. 

버틸 수 있을까? 버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단단한 바위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아무도 보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심지어 시댁이며 친정 쪽 친척들까지도(나는 친정이 없다.) 진절머리가 났다. 

(그분들이 싫다기보다 나 자신이 싫어지니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리고 혼자 있고 싶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인간으로 인한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고, 몸이 회복되길 기도했다.

감정의 쓰레기통을 찾다 그것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에 

상담이란 방법은 싫었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30대를 한 권으로 묶어서 집어넣는 지금의 시간들이 귀한 시간이다. 

어쩌면 유년시절을 포함해서 아픔의 시간들을 

남편보다 먼저 겪으며 힘들게 흘러왔기 때문에 이해하는 쪽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착한 남편의 인생의 시계는 어디쯤 왔을까? 

지금 힘든 시간들을 그는 보내고 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제 남편도 나와 같은 시간의 공간 안에 있는 걸까?'

명상을 하며 내 눈앞에 우리가 나란히 손 잡고 어느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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