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sHya푸쉬야 Apr 08. 2024

 ,  풀때기의 외침

갑상선 이후 비건의 시간들 그리고 마침표.



1. 마크로 비오틱 이야기


-마크로비틱이란?

macro(크다, 위대한) bio(생명, 생물) tic(방법, 기술)의 합성어로, '위대한 생명의 기술'이라 

해석되는 자연건강법이다.

동양사상이 근본을 이루는 마크로 비오틱은 식재료를 통째로 먹는 것을 원칙(껍질부터 뿌리까지)으로 하며, 자연에 가까운(무농약, 친환경 농산물, 전통 식품) 제철 음식을 음양의 균형에 맞춰 먹는다. 

정제된 것, 가공 식품을 최대한 피한다.  


먹는 것에서 만큼은 시골 할머니처럼 먹었다. 

결혼 전까지는 조부모님과 같이 살기도 했었고, 집안사람 모두 고기를 먹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마도 고기보다는 생선을 많이 먹었을 것이고, 

취향 특성상 고기보다는 생선 위주와 야채를 더 많이 좋아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니께서 신실한 불자였기 때문에 

고기 요리를 만드는 것과 먹는 것을 즐겨하시지 않으셨다. 

그러한 탓에 자연스럽게 나는 고기를 먹을 일이 

외부의 사람들 보다는 적었고, 고기 앞에만 서면 소심해졌다. 


결혼 후 지금의 착한 남편을 만나면서 시댁과의 식사자리에서 

처음 접한 골고루 음식 문화에 신세계를 느끼고 고기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처음 맞이한 명절에는 응급실행을 하게 되었고, 

두 번째 해에도 열개의 손가락을 모두 따고 나서 화장실로 직행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해나가고 싶었기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식습관과 선택적으로 먹지 않았던 날들을 뒤로한 채 

식도락을 즐겨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사실 엄숙했던 친정에서의 식사시간에 비해 

시댁은 아주 화기애애하고 사랑이 넘치는 식탁문화였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사람의 정과 나눔에 대한 것들을 알고 싶었고, 즐기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음식 나눔을 시작으로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고, 

그럼으로써 이곳저곳의 삶을 탐험해 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나의 욕심이었다. 

음식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행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건강을 생각해서 한국식 마크로 비오틱 전문가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음양오행에 따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알려주셨는데,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식재료의 궁합은 물론이거니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나눔의 따뜻한 마음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반대로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감히 '자격'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 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의 차이를 알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태국 음식점을 갔을 때 팟타이를 시켜 두고서 


"이곳 팟타이가 태국의 팟타이 맛이야!" 

"이거 태국에서 파는 팟타이 맛이랑 다른데? 맞아요?"라고 말하면



(**실제 아는 지인분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인이 태국 현지에서 팟타이 먹었는데 맛이 다르다며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고 했다.) 

태국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팟타이도 지역마다 싱겁거나 짠 정도의 차이와 

집집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를 뿐 '맛있다, 맛없다'는 개념이 없다고 태국친구에게 들었다.) 


자격이란 문구로 돌아가면, 

음식을 먹을 때 자연에서 얻어진 식재료가 주는 감사함을 알고, 

식재료 하나하나 완성된 요리 앞에서 편견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음식을 수용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었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 부족하고, 늘 같은 것만 추구하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크로 비오틱 전문가 과정 이후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건강이 회복될 수 있으니 

좋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부수는 과정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2. 생채식 이야기


갑상선암수술 전, 후에 마크로 비오틱을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왔다. 

음식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적인 부분도 중요한데 숟가락 하나도 들어 올릴 기운이란 것이 남아있지 않았고,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면서 매일같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바람이거나 정신이 저기 안드로메다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던지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몸에서는 계속해서 자극적인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만 할 뿐. 건강하고 싶지도 먹고 싶지도 않게 했다. 

의욕이 없으니 당연히 우울감은 극에 치달았다. 

평소에 아로마테라피를 자주 즐겨했었는데, 

아로마테라피 전문가분과 함께 향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물론, 혼자 블렌딩 하고 즐겨도 좋지만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평소에 오일을 공급받고 알고 지냈던 대표님이 계셔서 향수 만들기 클래스를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 연락하고 지내오면서 몸이 회복되는 것이 힘들어지고 

아프다는 소식만 전했던 터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했었는데 쌈채소까지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사실 마크로 비오틱이 많은 회복에 도움을 주었지만, 나는 편식을 하는 편이기도 했고 요리를 하고 나면 음식을 맛보지도 못하고 뻗어버렸었다. 

냄새에 이미 질려버려서 먹고 싶지 않았다. 

아프기 전에는 남편의 밑반찬을 만들어 주는 것과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만 봐도 기쁜 나였지만, 점점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고 계속 바쁘게만 밖으로 돌아다니는 남편과 멀어지면서 밥을 할 일도 멀어졌다. 그렇게 쌈채소를 선물 받은 이후에 너무 감사히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는데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았어요? 혹시 생채식해본 적 있어요?"

"생채식은 해본 적이 없어요."

"과일이랑 견과류 쌈채소, 현미 이렇게 해서 먹는 것 한 번 해보면 어때요?"

"어떻게 하는 거죠?"



그렇게 이것저것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생채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처음 목표를 한 달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몰라보게 달라질 정도로 좋아졌다.

(처음엔 그랬다)

무엇보다 음식 냄새의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 좋았고, 

때마다 혼자서 뭘 먹을지 생각지 않게 되어서 더 좋았다.

남편 없이 혼자 먹을 땐 음식 재료들을 다 먹어 치우지 못해서 매번 남은 재료들을 버리기 일쑤였다. 

음식을 버리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또는 환경을 위해서 등등 좋은 이유는 한없이 많았다. 

생채식이 잘 맞는 착한 남편은 정말 호로록호로록 입속으로 잘 들어가고 배변활동도 정말 원활해져서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반짝반짝 빛날 지경까지 갔다.

(말 그대로 착해서일까? 정말 부럽다 부러워.) 


하지만, 나 같은 겨우 좋았으나 가스가 차면서 복부가 처음에는 불러오고 

불편한 느낌이 있어서 적응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생채식만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이 되어서 저녁식사를 대신해서 

생채식을 하는 것으로 루틴을 조금 바꾸어 봤다. 

뭘 해도 나는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며, 한 번에 딱딱! 맞아떨어진 적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관자놀이를 짚고서는 미간을 찡그렸다. 스스로 몸에 맞는 것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요동치는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부터 천천히 하나씩 노력해 본다. 

나 하나 데리고 살기도 힘든데 왜 하나를 더 달고서는 지금 이렇게 생고생을 하며 

발걸음을 맞추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으쌰으쌰! 혼자서 난리를 치다가 결국은 '쪽. 박'이다. 

남편을 바라보며 소가 여물을 씹어먹듯 와그작와그작 씹어 삼킨다. 

밉다가도 짠하다가도 한숨 한 번 푹 - 쉬어주고 다시 데려가야지. 

내가 살아야 남도 산다는 말이 지금 나에겐 약이 돼버렸다.






1년은 365일.

사계절 속에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자연의 일부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마음은 늘 흔들리고, 변덕스럽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가 따뜻함도 잠깐 느껴보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계절 속에서 저마다 다른 시계를 가지고 우리는 걷고 있다.

모두가 다르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서로의 시계를 훔쳐보며 배우고 닦고 또 위로받고 나아간다.

상처로 찢겼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마음의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려 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에서 

'나와 너는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행복의 지점과 사랑을 알게 된다. 




**아직도 써야 할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이 있지만, 그저 행복의 지점은 이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쓰면서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라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파와서 힘들었어요. 정확히는 마음이요.

(제가 쓴 글들을 남편이 읽고선 마음이 아파 서로 울 때도 있었습니다)

힘들게 했던 분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저의 마음과 나란히 두며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서랍 속에 집어넣으려 글을 쓰기 시작했기에, 정리하는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은 많은 부분들이 해소되고 있는 과정에 있어요 -

남편과 저의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씩 비슷해지는 지점에서 좀 더 이해하고 나누며 맞춰가고 있습니다.

잔잔한 빚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며 옥탑방에서도 이사하게 되어서 

월세 20에서 60으로 이사하게 되었고요.

'행복이 지점'이란 타이틀에 맞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저와 저의 가정을 바라볼 때 

산 정상에서 아래의 풍경을 내려다보듯 뿌듯할 때도 있어요 : )

저의 아픔을 브런치의 첫 작품으로 묶어서 이제 집어넣으려 합니다.

다음은 ' 위로 '라는 작품으로 만나게 될 거예요 -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눠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이젠 누군가에게 '위로'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