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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푸쉬야 Mar 24. 2024

값진 보석의 실체



값진 보석일수록 그 값을 톡톡히 한다. 

목 아래에 작은 스마일은 그런 점에선 지금의 우울한 나를 대신해 웃음 지어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병원에서 수납 순서를 기다리며 잠깐 앉아있을 때의 일이다. 

50대 후반 정도의 고상한 아주머니께서 옆에 나란히 앉으시더니 말씀하신다.





" OOO원장님께 수술받았어요? "

" 아 - 네 "

" 아직 젊은 나이인데 목에 스마일을 그려놔서 어떡해 - "

" 아 - 그래도 결혼은 해서 괜찮아요^^;; "

" 하하하 - 그래요? 그래도 몸관리 잘해요. 이게 빨리 복귀하는 것 같아도 쉽지 않더라고.. "

" 네 ~ 체중이 제일 문제 이긴 해요. 숨 쉬기도 불편하고 그러네요 - "

" 맞아 맞아 - 나이 들수록 합병증 조심해야 해. 심혈관 질환 같은 거 - "

" 아.. 그렇구나.. "






퇴원 이후에 얼마동안은 이전보다는 살 것 같다고 할 만큼 좋았다. 

서서히 나를 갉아먹으며 일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해소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몸에 있던 어느 부분이 도려내어진다는 것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던 날들에 비하면 

낡은 컴퓨터처럼 속도가 느려지고 어딘가 주먹손으로 탕탕 -! 하고 쳤을 때 

다시금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사람의 인체 어느 한 부분이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하나둘씩 비워내고 내려놓으며 나의 30대를 하나씩 보낸다. 

아직 조금 남긴 했으나,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4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차례차례 조금씩 자기 때를 벗긴다고 했다. 

마음의 시계보다 빠르지 못한 두뇌를 가져서 그런지 감정조절이 쉽지 못해 행동이 먼저 나갈 때도 있지만,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제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행운이다.

그것은 아마도 경험에 의하면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저 깊은 곳 어딘가에 '두려움'이라는 씨앗이 자리 잡고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의 단짝 '불안함'이 함께 찾아오고 그럼으로써 '불행'이라는 싹이 돋아나는 것 아닐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반드시 얻게 되어있듯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차분히 집으로 돌아왔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오르락내리락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거나 하는 증상들을 겪게 되고,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험들도 하게 되었다.

피부가 메마른 느낌과 트러블성 혹은 주사피부염 같은 증상들도 생겼다.



한방병원에서 뜸치료 중에 옆쪽 침대에 누운 아주머니께서 친구와 나눈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면역기능이 떨어지니까 계속 피부도 마르고, 

두드러기 같은 게 생기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더라고."

양쪽팔을 걷으시더니 양손으로 번갈아 가면서 매만지시는데 

나도 모르게 양팔에 올라온 두드러기를 바라보며  "그런 거구나." 했다.




때로는 이렇게 의사 선생님보다 직접 경험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치유되기도 한다.

아주머니의 편안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 묵묵히 자신을 바라봐 주고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이로써 건강은 조금 잃었지만 적어도 불행의 싹은 틔우지 않아서 값진 지혜 하나를 얻게 됐다.

인간은 늘 똑같은 패턴으로 별 다를 것 없이 살다가는 존재라는 걸 

왜 머리가 희어지고 행동이 느려질 나이쯤 알게 되는 것일까?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해 보면 신기할 정도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주어졌고, 

그 고통을 묵묵히 견뎌낸 사람들에 마음의 크기를 감히 말하자면 

우주만큼 가늠이 안될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니까, 나라서, 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었고, 

그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나와 연결된 주위를 생각해 봤다. 가까운 가족부터 주변 가까운 이웃. 

그들이 나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정답은 "NO!"이다.

드라마 같고 영화같이 주어진 인생의 주인공은 오직 혼자 뿐이다. 

사유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며 

그것에서 얻은 값진 값으로 인생을 탐험하는 것이 행복인 것 아닐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을 놓으면 안 되는 이유로도 연결된다.



착한 남편은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10년을 보내고 

행복의 단짝 '고통'과 함께하는 중이다.

병원에서 돌아온 나에게 호되게 당하는 나날들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성벽(일)의 작은 틈새 구멍 때문에 와르르 무너져가는 것을 경험한다.

뒤늦게 호위무사에게 찾아왔지만, 아프고 병든 호위무사는 한쪽 팔이 잘려나간 채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나도 모르는 감정기복의 파동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밀려나갔다 하는데 

아침에는 분명 차분했는데, 저녁에 돌아와 보니 성난 고양이 마냥 날카롭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교차적인 감정에 놀라기도 하며, 웃으면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도저히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은 오죽 답답하고 놀랐을까?

남편이 봤을 땐 감정의 웨이브가 요동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무런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의 마음은 감각이 무뎌지고 감정이라는 지점이 사라졌는데, 

몸의 신경들은 학습된 것을 인지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을 보면 미소 짓거나 웃고 있지만 마음속의 본질은 무표정인 것.

슬픈 장면을 보거나 남편에게 서운할 때에도 마음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런 파동이 없었지만 눈물은 흘리고 있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을 때도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이 때는 내가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표정도 없고 그저 가만히 넋을 놓고 있는데 

슬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흐르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위의 감정상 태일 때는 감사했다. 

이성적으로 생각지 못하게 된 결정적 끝판대장을 만났고, 그것은 바로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분노는 인간이 참기 힘든 감정중의 하나인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서 이상한 공 하나가 만들어져서는 

입을 통해서 뱉어내야지만 끝나는 것이다. 

참으면 참을수록 그 공이 탁구공에서 야구공으로 또 축구공만 하게 커지는 거다.

분노의 양이 늘어날수록 호흡은 거칠어지고 몸은 더 쪼그라들어 작아지고, 

줄어든 몸의 크기만큼 마음의 크기도 작아졌다.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 말을 막 쏟아내어서 상처 주거나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분노가 데려온 이상한 연결고리들. 이를테면 집착, 욕망, 만족하지 못하는 무지한 마음이 따라왔다.

자존감에서 자존심으로 전환되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선 

난 아프지 않다고 남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아집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전에 방송인 서정희 님께서 유방암 투병 이후 항암으로 머리가 빠졌을 때 

이겨내는 시간들 속에서 가발도 예쁘게 쓰고 옷도 더 예쁘게 입고 

아픈 티를 내기 싫어서 높은 힐도 신으면서 건강할 때보다 

더 예쁘게 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비록 지금 상황들이 힘들어졌고, 나 또한 건강을 잃었지만 당당하고 싶었고 

건강해 보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분노에서 이어진 집착이란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을 낳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가져도,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만족보단 공허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채우면 채우려 할수록 풍요 속의 빈곤만이 자리 잡을 뿐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눈이 뻑뻑하니 퉁퉁 부은 채로 일어났다. 


'눈두덩이가 왜 이렇게 부은 거지?'


안과로 갔더니 글쎄.. 왼쪽은 다래끼와 결막결석 오른쪽은 헤르페스성 염증이 생겼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안질환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몇 차례나 병원을 드나들었고,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며 피곤하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줌마가 피곤해봐야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넘기려 했는데 보통일이 아니었다. 

충혈되고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시간들에 눈을 뽑아 내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막지막은 주사피부염이 눈알로 찾아왔었는데 자주 병원을 방문하게 되니 민망함에 그저 양손만 비벼댈 뿐. 






"아니, 무슨 힘든 일을 하세요? "

"아.. 주부인데.. 혹시 제가 얼마 전에 갑상선암수술을 했거든요. 

그 이후에 계속 이런 상태들의 연속이에요."

"그러셨구나 ~ 그럴 수 있죠. 

대부분 환자분의 증상들은 면역기능이 떨어졌을 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거든요.

특히 주사피부염 같은 경우는 회복이 힘들죠.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을 도려냈으니 회복이 사실상 힘들어요. 

관리를 하면 된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증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즉시 병원으로 오셔야 해요. 

시력저하,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날 저녁,

"오빠, 밥 먹자~ "

"어~ 오늘 내가 생명공학연구원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갑상선약 안 먹는 게 좋데. 

약 때문에 무뎌져서 남은 반쪽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고 그러시더라고.. 

약을 한 번 끊어보면 어때? "

"그래? 생명공학? 음.. 뭐 모든 약이 좋진 않겠지만, 지금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난 건 아니긴 한데.. 

약을 먹는 건 좋은 건 아니니까. 

근데 이거 약 중단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일단 뭐 시도는 해보지 뭐"










'병은 의사말을 믿어야지. 

갑자기 무슨 또 바람이 불어서 생명공학이 어쩌고.. 

아무튼 모르겠지만 너무 진지하게 말하니까 들어볼까?'


한 번도 진지하게 조언해 준 적 없는 남편이어서 솔깃했을까? 

심신증 때문이었을까? 

괜히 잠이 설쳐질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리는 정확한 시간에 먹었던 약을 먹지 않았다.

또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정확히 3일이 지나고 4일째 되던 날, 나는 바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남편은 미안해함과 동시에 양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빌어댔다.



"와.. 미안해ㅠ 진짜... 몰랐다. 

뭐에 씐 건가? 나 왜 이러지? 왜 맨날 실수하지? "

"진짜.. 제발.......... 그냥 아무것도 안 바래.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



지나가다 갑자기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돌에 맞은 느낌이었다.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급히 갑상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러저러해서 병원에 입원 중인데 지금부터라도 먹어도 괜찮으냐고.

지금이라도 이어서 계속 복용하라고 하셨다. 

'다음 예약된 날, 병원에 가서 원장님 뵈면 혼나겠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찡긋 대며 한숨을 쉬었다.






혼자 있고 싶어졌다. 

남편과 서로 좋지 않았던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명상하며 가만히 내면에 집중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50 : 50 이긴 하지. 

이미 조직은 걷어냈는데 건강하겠다고 안 먹은 내 잘못. 

아니.. 거기다 의사말도 안 들었잖아? 그리고 남편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고 무시했잖아.. '





결론적으론 나 자신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야 눈을 천천히 뜰 수 있었다.

나, 너 50 : 50이라는 계산법은 상대에게 50을 미루어야 편해지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 것이겠지.

50이라는 숫자가 서로 각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생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마음먹기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지금 눈앞에 펼쳐진 영화의 장면이 전환되고, 

결국 주인공이 승리하게 된다.

마음의 주인을 잘 다스리면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부딪힐 일이 있을까? 

이로써 인생의 희락을 누릴 자격이 생긴다.

당신은 어떤 주인공으로 만들어질 것인가? 

분노에 굴복하는 비인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주인공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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