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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 Mar 10. 2024

단단하게 밧줄을 만들어 봅시다.


' 부부는 함께 하면서도 남과 같은 사이라는 걸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 리트머스지에 스미듯 점점 촉촉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대로를 바라보려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고, 마음을 매일 리셋하기엔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아프다. 나에게 부모님이 부재하고, 친정이란 곳이 없어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이번 생애 내가 받을 전생의 벌인가 보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짝에게서 위로받지 못할수록 점점 차가워지고 냉정해지고 더 독립적으로 혼자여서 불행하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간다.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도 문제가 되는 걸까? 나는 참 뻣뻣한 사람이다. 

꼬꼬마 시절에는 참으로 샤르르 녹는 아이스크림 같은 인간이었는데, 세상의 안티들 속에서 점점 그렇게 표정도 사라지고 딱딱한 장작이 되어갔던 것 같다.



재활치료를 하러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내 머릿속 생각 주머니들이 터질 듯 커져가고 있었다. 버스 안으로 시선을 옮겨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온화한 모습, 저마다의 인생에서의 힘든 시기들을 모두 이겨내고 따뜻한 봄날을 맞이한 듯한 얼굴과 자태를 읽을 수 있었다.

잠깐의 사색에서 깨어난 뒤, 현실에서의 나는 2주 동안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완전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재활이나 아쿠아로빅을 추천해 주셨는데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한 때는 요가선생님이었던 나는 재활 필라테스를 향하게 되었다.

' 3층이라서 혹여나 걸어서 가야 하면 어쩌지? 죽음을 경험할 텐데.. ' 라는 생각으로 입구까지 도착했다. 

감사하게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재활 필라테스라고 되어있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구를 써서 하는 걸까? 필라테스는 잘 모르겠어서 상담 후에 결정 내리기로 마음을 먹고 갔다.




한 발 한 발을 끌어다 놓듯 하며 통증을 감내하면서 여자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갔다. 

친절하게 하나씩 알려주셨고, 중증환자들도 오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잘 찾아온 것 같아서 마음이 1차로 놓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남자 선생님과 예약을 잡고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조심조심 또 조심하면서 다치지 않게 천천히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심장 졸이는 일주일을 보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가슴은 멍울져 딱딱해져 갔다. 

밤이면 마당 평상에 반려견과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며 위로받고 있었다.   

일 중독에 빠진 착한 남편은 "괜찮아?"라는 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이 '괜찮을 거야 '라는 말뿐. 

일에 빠져 가정적이지 못한 모습이었다.



집에서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힘들었고, 밥을 먹을 때도 업무적인 통화로 밥을 먹다가 체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내보다는 회사의 직원들이 우선이었고, 남에게 베푸는 삶, 자신의 모든 것들이 외부로 향해 있었다. 예전에 베이비박스 선행하시는 이종락 목사님 부인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목사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내조로 힘들었던 사모님은 결국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치매에 걸리셨다. 그 다큐를 보고선 한참 눈물을 흘렸었다. 

너무 가슴 아팠고, 목사님이 믿으시는 하나님의 뜻이 가족을 헤치는 것인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속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개인적인 속상한 마음으로 연결 지어 혼자서 또 상상에 빠졌다. 

외부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모님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드셨을 거라 짐작됐다. 

남편은 회사가 자신의 이번 생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노력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밥 한 끼 편하게 먹지 못하는 삶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던 그림이라 언제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결국 스트레스로 입원까지 하게 된 내 꼴이 우스웠다.

어떤 날은 10분을 걷는 것조차 힘든 날들이었고, 또 어느 날은 20분을 채우기까지 엄청 난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걸어야만 했다. 

나를 곱고 씩씩하게 키워주신 할머니를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어떤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게 매일 명상도 열심히 했고, 감정 흘려보내기에 집중하며 보냈다. 

매일매일 죽고 살기를 반복했지만 슬픈 감정도 기쁜 감정도 그 어떤 감정도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어 이성의 끈을 붙잡고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드디어 지났다.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하고 공간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조금 일찍 가서 둘러보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재활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대기하는 동안에 쭈뼛쭈뼛 보일 듯 말 듯 서로가 불편하지 않은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오신 것 같았는데, 나이가 아주 많으신 듯 보였다. 

재활을 마치시고 나서 갑자기 망부석이 된 것처럼 서서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에 무언가 묻었나 싶어서 이리저리 만졌다. 요양 보호사님께서 휠체어를 밀고 오시더니 모셔가셨고, 나는 재활 선생님과 잠깐의 눈 맞춤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재활 선생님은 겨울에 수건으로 땀을 닦으시며 힘들어하셨다.

다음은 내 차례였는데, 약간의 긴장과 낯선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잘못 만지게 되면 신경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올 거니까 나도 모르게 공포스러웠다.




" 자, 천천히 어깨부터 풀어볼게요. 긴장 푸시고요. 

저는 OO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재활치료사를 10년 넘게 했고요.

지금은 결혼해서 아내랑 같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친절히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 네 - 필라테스라고 해서 기구사용하고 그런 줄 알고 걱정했어요. 

저는 재활 위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여서요."

" 그럼요. 일단 몸을 천천히 회복하는 것 위주로 집중해 봅시다."

" 네 - "



" 참! 아까 할머니께서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놀라셨죠? 

뇌졸중이 오셔서 몸이 불편하신 분인데,

오늘내일하시는지 재활치료 중에도 자꾸만 뭐가 보이신다고 그러세요. "

" 네에 ~ 저도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서 이해해요 - 

얼굴을 매만지시면서 얼굴에 뭐가 붙었나 봐 달라고 하시지 않으세요?

예전에 병원에서 일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할머님, 할아버지 대부분 나이 드셔서 그런 증상들 있으시죠.."

" 저도 이전에 병원에서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 

혹시 회원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실까 봐서요^^ "

" 뭐.. 다른가요? 우리도 언젠가 그럴 때가 올 텐데요. 마음이 쓰일 뿐이죠.. "





재활치료를 받는 내 모습이 할머니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저 할머니는 나이에 맞게 아픔이 찾아오신 듯한데, 나는 벌써 이렇게 일찍 아픔이 찾아오다니 부덕한 탓일까. 괜스레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으며 어깨를 움츠러뜨려본다.

재활치료 후에 돌아오는 길은, 한결 좋아진 허리 상태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마음일까? 마음이 몸일까? 몸이 한결 좋아지니 예민함도 줄어들었다. 

예전에 요가를 했었을 때의 상태로 돌아간 듯, 편안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 상태가 자유롭게 느껴졌고, 한낮의 햇살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2번씩 재활을 하자고 하셨다. 

생각보다 너무 심각해서 일상에서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게끔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간들이 찾아왔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숙여서 내려가는 것은 선생님이 받쳐주지 않으면 통증 때문에 힘들었고, 뒤에서 허리를 받친 상태에서 치료실을 걷는 연습을 지속해야 했다.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나를 보기가 싫었고, 결혼은 왜 했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듯, 나에게 가르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매듭지어져서 여기까지 온 건지, 나는 왜 아픈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독 착한 남편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 잔소리하고, 화내는 나의 모습, 우울하게 아파서 침대에 웅크리고 있던 모습 등등 지나간 일들이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러고 나서 이기적인 감정들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나 자신만 생각하자고 또 다짐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컨디션이 좀 어때요? "

" 네 - 괜찮아요. 앉았다 일어났다 굽히거나 숙이는 자세가 뻐근하긴 해도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죠. "

" 다행이에요. 치료 시작할게요~ "



.


.


.


.




" 장요근 쪽 주변이 완전히 뭉쳐서 신경을 누른 것 같아요. "

" 네 - 그래서 약침도 맞고 여러 가지 시도들을 많이 해봤어요.

제일 무엇보다 꼼짝없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픈 게 반복되면 아이 가지기가 힘들까 봐 두려움이나 걱정이 밀려오긴 하네요. "

(마음속 : 언제 가질지도 모르겠지만요.)

" 그죠, 병원에서는 별말씀 없으시던가요? "

" 이 상태로는 힘들다고 하시죠. 

아무래도 임신해서 배가 계속 나오면 문제가 되니까요. "

" 그래도 일단은 호전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그리고 우리 단단하게 밧줄을 만들어 봅시다.

밧줄을 단단하게 만들어 놔야 다음 과정으로 가서 아이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

" 네 - (마음속 : 밧줄을 단단하게 만들면 남편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확신이 안 생기네요.) "





조금씩 걸음걸이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이 풀어지는 시간들도 늘어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재활 선생님과 조금 가까워지고, 어느 날 선생님 부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 저는 완전히 I이고요. 와이프는 E에요.

같이 일을 하게 되니까 사실 울그락불그락할 때 많죠^^;; 그리고.....(생략)"

" 아 - 제가 I라서 좀 이해가 되네요 - 

그렇지만 여자와 남자, 남편과 아내로 나뉘면 또 다르죠^^;;

다각도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

" 그런가요? 하하하 "







소심한 선생님은 조용히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종종 했다. 

재활 치료실에서 거의 반경을 넓히지 않으시는 모습이 어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내 남편 남의 남편 할 것 없이 남자들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사는구나 싶었다.

이 선생님도 착한 남편인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착한 남편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화를 내고, 잔소리하고, 남편의 베푸는 삶이 우리 가정의 많은 부분을 힘들게 할 때면..)

나는 왜 그랬을까? 

(상상하긴 싫지만)

내버려 뒀으면 어땠을까? 지금 사라지고 없을 내가 눈에 선하다.

(넓은 마음을 끄집어내어 사용하지 못한 나는..)

남편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담기에는 내 그릇이 작은 걸까?



생각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다른 망상으로 이어진다.

나를 해롭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사람은 감사해야 될 대상이라고 했다.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고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착한 남편을 향해서 절이라도 해야 할까?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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