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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 Mar 03. 2024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2)

청개구리의 반란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별 문제는 없으니까 다음 주에 뵐게요. 축하드려요"

"네 - 원장님, 그럼"






산모들에게 인기가 많으신 원장님이라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처음의 불안함을 잊기 위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히 기다렸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테스트기에도 통화했고, 병원 문턱을 넘어서 배부른 산모들 사이에 있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훠이훠이 - 손짓하면서 생각들을 날려버렸다. 이 놈의 상상력이 또 발동을 걸었다.

착상되지 못한 아이와 코로나 사건이 있은 후 3개월 만에 다시 나는 임신하게 되었다.

산부인과를 다녀온 날 밤, 늦은 귀가를 해서 피곤한 남편에게 비타민 같은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다.






"오.... ㅃ"

"@$%^***&^$#@@$%$#^%$"





'저 놈의 사업은 집안 문턱을 넘지도 못하게 하네.'



마당에서 한참을 그렇게 왔다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통화하는 남편을 보면서 심장이 또 두근거렸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금전적인 사항으로 미팅은 잘 끝난 건지 

모든 귀의 신경들이 우리 집 반려견보다 더 쫑긋하고 있었다.

나도 뭔가 잘 모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우리는 연애시절부터 남편의 사업 초창기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눈 감고 들어도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질 정도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그렇기 때문에 안 좋은 점도 있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오늘 산부인과에 다녀왔어. 나 임신 5주 반 - 6 주정도래."

"오 - 축하해 OO아 ~ ^______^ "

"침착하자. 아직 모르니까 , 이번에는 좀 더 있다가 말씀드리자."

"그래, 알겠어."





밤이 아주아주 길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다음 날 퇴근 후에 돌아온 남편이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 어어 - 일단 얘기해 보고 연락 다시 줄게."


무슨 얘길 한다는 건지 짐작은 갔다. 모르고 싶었고, 기분이 그냥 싫었다.









"다음 주에 ** 결혼해서 모인다고 새신부도 온다는데 갔다 올게 -"

"꼭 가야겠어? 임신했다고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 언제 한 번 제대로 있어본 적이 있어야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 그냥, 하루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

"OO아~ 제발 (표정을 찡긋거리며 양손을 비벼가며)-  한 번만"

"몰라- 알아서 해라. 모르겠다 진짜..;;"






우리를 주선해 줬던 **언니에게서 전화가 계속 왔다. 

사실 감정적으로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들까지 철이 없는 건가 싶었다.

아이를 가져서 좀 예민하니까 다음에 보자고 왜.. 말할 수 없는 걸까..?

임신했다고 말했는데 나오라고 말하는 **언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멍- 했다.

심지어 **언니는 유산을 한 번 했었던 경험이 있었고, 

상심이 컸어서 두 번째 임신에는 연락조차 끈고 두문불출했었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별 일 없이 지내다 있는 일이었으면 적당히 알아듣게 얘기하고 일찍 오는 걸로 타협을 봤을까?

왜 나는 배려받지 못한 상태로 임신까지 하고서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결국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남편을 보지도 잡지도 않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고 있었다.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은 화장실로 가서 토를 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화장실 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오빠아! 미쳤어? 어? 정신 나갔냐고 - 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





토하고 있는 남편의 등을 모든 힘을 다해서 내리쳤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고 실망감이 컸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술냄새 풍기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며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술냄새가 가득한 방 안을 환기시키고 잠시 누워서 이마에 손을 짚고 있었다.

나에게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받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와서 나는 목구멍까지 찬 먹먹한 무언가를 삼키며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네 - 언니."

"어~**아, 어제 너무 많이 마셔가지고, 

새신부랑 너희 남편이랑 끝까지 남아서 마시고 새 신부 걔도 장난 아니더라..."

".... 네에.."





'끝까지 남아서 마신 거구나.. 그런 거구나..' 


아무런 얘기도 들리지 않았다. 

대화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언니도 눈치가 보였는지 그만 끊었다.

남편을 향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떠오르지 않는 말들을 억지로 떠올려야 했다. 






"미안해. OO야 - 다시는 안 그럴게."

"........"



이미 일어났고, 다시 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또 올까?

모든 인생의 장면들은 찰나인데 왜 지금 이 순간을 내 기억에서 이렇게 남겨야만 할까?

심장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짜는 상상을 했다.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입맛도 없었다.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면서 밥을 어떻게든 먹어야 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서 그랬다.

원래부터 대식가는 아니어서 이것저것 잘 먹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서 먹었다. 

이런 게 모성애인가?

무표정하게 무심한 듯 꼭꼭 씹어가면서  '먹자. 먹고 힘내자! ' 나의 편은 나뿐이다.

다음 날,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난 후부터 배가 조금 아픈 것 같았다.

누워서 한참 동안 배를 쓸어내렸다. 그런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다.

옆으로 돌아도 누워보고 화장실도 가보고..

그러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배가 좀 수축하는 느낌이 있다가 통증이 좀 있는데 괜찮을까요?

병원으로 가야 할까 해서요 -"

"아, 일단은 피가 비치지 않으면 좀 더 있어보셔도 될 것 같아요."

"네...."




10분 후, 화장실을 갔는데 피가 살짝 비쳤다.








"어.. 피가 살짝 비치는데.. 일단 병원으로 가도 될까요? 아무래도.."

"아 그래요?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나는 얼른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탔다. 점점 혈의 양이 늘어나는 듯했다. 

아이가 살기 위해서 온몸의 모든 것을 빨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유산한 어느 산모에게 요가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울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모든 것들을 빨아 당기는 느낌 때문에 온몸이 간지럽고 그러다 유산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접수를 했다. 

이후에 앉아있는데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져서 간호사님께 손짓하며 불렀다.







" 저.. 너무 어지러워요."

" 어머- 많이 어지러우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이구 - "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간호사님께 맡기고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피를 너무 많이 쏟아서 그런지 누워있는 동안에도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간호사님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를 살폈다.

드디어, 굴욕의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진찰하는 동안에도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피를 너무 많이 흘리시네요.. 쓰읍.. 음.. " 




아무 생각도 바람도 사라졌다. 이 기억들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


.


.


.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과거로서 지나간 찰나의 기억을 바꿔야 한다. 

 ' 지금 바로 '

믿을 수 없는 기억을 버리자. 

지금의 상황들을 상상력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그렇게 속이자.

그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차디찬 몸을 손으로 몇 번이나 주물렀는지 모르겠다.

창 밖은 회색빛으로 스산하니 날씨마저 내 몸 같이 차갑게 보였다. 

창문을 열고 크게 숨을 쉬었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산길을 돌아내려 오는 길에 자연의 냄새로 모든 걸 씻어 내리고 싶었다.

인간에게 위로받는 것보다 자연이 나에게 풍겨주는 향기가 어느 때보다 곱게 느껴졌다. 

집 앞에서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2층계단으로 가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을 아는 듯이 반려동물들도 짖지 않고 조용히 맞이해 주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 한 마리씩 번갈아 가며 나를 보살피듯 냄새를 맡고 

자신의 품으로 손을 끌어다 놓기도 했다.

눈을 감아 버렸다. 한 걸음씩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도 우리는 조용했다. 무슨 말을 할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면 사라진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잊자.

한 손으로 어깨를 토닥여 준 남편이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다.

갑자기 올라온 말도 안 되는 감정으로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 그러게 나가지 말라고 했지!!!!!!! 왜!!!!!!! 네가 뭔데! "

" 하아............. 미안.."

" 도대체 미안할 짓을 왜 하는 건데! 그만 미안해하라고 좀!!!!!!!!!!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하라고 - "

"............."




수 분간의 정적이 지나고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고,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또 살아내야 했다. 집안 살림이라는 것도 회사의 경영관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잘 이겨내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폐업하거나 동업자와 갈라서거나인데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

.


.


.



" 배 안 고파? 밥 뭐 먹을까?"

" OO아, 미안해.. 진짜 미안.. 근데.. 뭐 하나만 얘기해도 돼? "

" 뭔데? "

" 나 있잖아... 코로나 걸렸어;; ㅠㅠ " 

" 뭐??????????????????!!!!!!!!!!!!!! "




기억은 믿을 수 없다. 매 순간을 지우면서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와 있었던 일들이 왜곡된 진실로 남듯이. 

웃자. 그리고 다시 씩씩하게 착한 남편과 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지혜롭게 이겨 낼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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