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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푸쉬야 Feb 18. 2024

착한 사람 만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존재의 의미




나의 남편은 여자+남자 쌍둥이이다. 

아래로는 여동생이 두 명이 있고, 시부모님 두 분 모두 건강하시다.

시누이 2명에 형님까지 있으니 외부의 지인들은 



"오 마이 가뜨 ; 살아있니? 옴마야 ~ 남편이 돈 잘 버나 보네." 

"하하하 ^^;; 나 잘 살고 있어. 모두 너무 좋아서-"







친정식구가 없다 보니 나는 가족이 많은 것이 너무 좋았다. 

어머님과는 가끔 만나지만 사이가 꽤 많이 친해졌다. 

10년이 지나고 보니까 어머님과 내가 비슷한 구석이 좀 있어 보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해지는 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서로 통한 것인지 10년 동안 천천히 스며들듯 친해졌다. 

엄마가 없는 나로서는 (새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어떻게 친해질까를 고민했을 때도 있었다.


어머님은 조용한 성자 같았다.

늘 한 곳에서 사람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는 잎이 무성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

예민한 나는 그런 어머님을 만나면 절간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씩 남편과 똑 닮은 아버님과 살아가시면서 어떻게 견뎌오셨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이 망망대해 푸른 바다처럼 넓은 분임에 틀림없다. 

그런 어머니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야 하는데 아직 '나'라는 사람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리저리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 

마음의 움직임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력과 판단력이 더 빠르다면 좋겠지만 항상 느린 나를 발견한다. 







자주 만나 뵙고 싶은데 남편 눈치가 보인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착한 아들의 자존심 때문에 늘 몰래 전화나 메신저로 대신한다. 

하지만, 어머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리라. 

그리고 며느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전화나 연락을 전혀 하지 않으신다. 



결혼 전 우리 할머니는 밖에서 일할 때 가끔씩 연락하면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하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락할 시간에 네 인생에 집중해라." 하셨다. 

그런데 정말 연락하지 않으면 더 열심히 살게 된다. 

(인간이 쉽게 죽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생존 본능이 샘솟는다) 

그만큼 가족은 나를 100% 믿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도 100% 믿어주고 있다고 믿는다. 

넉넉하게 잘 살진 못하지만,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 확실히 약속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작은집이었다. 성향이 조금은 다르다 보니 큰집인 우리랑은 마음이 썩 - 맞지 않다. 

알고 계신 건지, 서로 조심하려고 하는데 가끔씩 현타가 올 때가 있다.

한방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침대에서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한 번도 일어나질 못했다. 

화장실 가는 그 마저도 침대에서 내려오는 시도들이 천리길 만리길 같았다. 

보조기에 의지해서 다리를 끌다시피 하다 보니 어깨통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못 걷게 되는 걸까?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알면 좋겠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를 가지겠다고 남편과 조율을 시작하고 조금은 노력하려고 시도할 때였어서 힘든 마음이 2배로 커졌다. 창 밖만 바라보면서 도움을 받고자 남편이 퇴근 후에 들르기만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혼자서 병원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하-아"  




한숨이 푹 - 쉬어졌다. 

오른손등으로 이마에 가져다 대고서 치고 올라오는 뭔지 모를 비참함과 

이 어려운 난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착한 남편은 퇴근 후에도 꼬박꼬박 매일 오지는 않았다. 일을 내려놓을 수 없는 그 마음을 어찌하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많이 들으면 가슴 아픈 일이 돼버린다.

내가 그저 혼자서 잘 이겨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코로나 기간이라 보호자가 함께 있지 못한다는 제도가 어쩌면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시댁 작은집에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국, 나는 불참하게 되었다.

누군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남편이 입원사항에 대해서 말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굳이 좋은 날에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픈 게 무슨 자랑이라고..(시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거라 이렇게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작은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결혼식에 왜 안 왔어?"

(역시나 말하지 않았구나)

"아.. 병원에 입원하게 돼서 그렇게 됐습니다."

감정들이 뒤죽박죽 꾸역꾸역 눌러 담겨있어 겨우 참고 있었는데,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왜? 어디 아프나?"

"허리 통증 때문에.."

"왜?"

"모르겠어요.."

"아휴 - 아프기는 뭐 한다고 아프노."

'그러게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게.. 상처로 박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는 내 속은 용암이었다.

나는 왜 아픈 걸까? 불현듯 폭발시동이 걸렸다. 


'그동안 착한 남편 모시고 사느라 속이 제 속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왜 아플까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말해야 하나 상상했다. 







어쩌다 보니 감정과 말이 뒤섞인 채로 기억에 잘 남지 않아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힘주어 얘기가 나온 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렸다. 



"by the way(근데: 강조해서 써본다), 

착한 사람 만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

"네? 네 - 네...;;"









전화를 끈고 나서 한 동안 숟가락을 들고서 가만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존재하고 있지?

그런 남편은 왜 존재하고 있으며, 착한 걸까? 착하게 보이는 걸까?

온 우주 가운데 쓸모없어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는데, 모든 것은 존귀하다고 했는데..

나는 이 순간 쓸모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아래를 보니 쓰레기통이 보였다. 

휴지 조각만도 못한 존재처럼 한 없이 작아졌다.




그 순간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손녀딸 가진 죄인, 

남편은 아들이라서 유난 떠는 건가 싶었다.


어릴 때부터 결혼하면 아들을 낳고 싶었다.

요즘은 딸이 커서 효도한다고 하지만 그 효도 그냥 돌아오는 거 아니다. 

장기 하나라도 더 달린 여자로 태어나서 열심히 고생해서 편히 살아가도 모자란데 

여자인 몸으로 효도한다는 거 생각보다 쉬운 일 아니다. 

딸은 곱게 키워 잘 살기를 바랄 뿐이지 효도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여자로 태어났고 

할머니가 온갖 유난 다 떨어가면서 곱게 키워주고, 여장부처럼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들보다 더 귀하게 여겨주셨고, 혹독하게 키워 주셨다.

여자, 장녀였지만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아 철이 없고 착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친척들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머니는 그렇게 살활을 걸고 지켜주시고 키우셨다. 







순간, 

어머님을 떠올렸다. 



.


.


.



'착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어머님이라서 

인연 닿아 만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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