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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푸쉬야 Feb 11. 2024

저.. 남편분 맞으시죠?

세상의 착한 남편들은 반성하라.




몸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을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줌마들은 다 그래.'라고 하는 떠돌이 같은 말을 나는 굳게 믿었고, 일상에서의 내 모습은 누구보다 현실적인 스위치를 켜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피곤함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피곤함을 무시하는 차원에서 주부들과 공감하고 싶어 남겨본다.
한번쯤 공이 되어 본 적 있으신가요?
여담이지만, 아는 언니네 집에 방문했더니 언니가 걸레처럼 방에 구겨져 누워있거나
굴러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언니) "안 불편해? 허리 안 아파? 편하게 있어도 돼. 좀 누워 -"


가볍게 미소 지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었다.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렸더니 아이들 장난감은 널브러져 있었고, 
이불은 예술작품처럼 뭉쳐져 있었다. 찐 애 둘 맘이었다.
나는 결혼한 지 오래되지 않을 때여서 그 모습을 스캔해 두고선 내 마음에 저장버튼을 눌렀었다.
언젠가 미래의 내 모습일까? 이 모습보단 조금만 우아한 쪽으로 상상해 보자라면서..












착한 남편이 그날도 더 착해져서는 나를 보살님으로 만들어 줬다.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고, 

즐겁게만 일하고 있는 모양새 그것은 어디로 연결되느냐? 

남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고 결과물을 아주 보기 좋게 만들어 주고서는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 아저씨처럼 치킨 한 마리 아니면 

행사 상품들을 챙겨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도의 듣기 좋은 말로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부자인 상태로 집으로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은 건 아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거나 

예산에 비해서 노동력이 엄청나다는 뜻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부부이지만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만났기 때문에 

'같이 혹은 따로' 

라는 개념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 풀어야 할 듯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무남독녀로 사랑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가족의 분위기가 화목하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3살 때 재혼한 아빠는 고부갈등으로 따로 살 수밖에 없었고,
조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가끔씩 아빠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아빠는 집안에서 조금 다른 성향인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 개인의 성향들이 모두 그러하다. 아빠가 유달리 조금 더 그렇게 보였던 거다.)
아빠는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oo야~ 너는 너 자신을 지켜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를 비롯해서 누구의 말이든 참고사항일 뿐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하고 너의 인생은 네가 주인공이고 만들어 나가야 할 숙제란다."

이런 사고방식 탓인지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서로의 개인적인 영역은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인 삶의 개입이나 선을 넘는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하면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봤을 땐 서로가 아주 젠틀하고 심플한 관계 속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shy 한 성격 탓에 몸을 배배 꼬면서 끄덕끄덕이고 아빠등에 가서 목을 감싸고서는 매달리곤 했다.
그 말이 섭섭하게 들리기도 했고, 구속과 집착을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존중해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아빠와 나는 찰떡궁합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서로 너무 사랑했다.
그저 잘 놀아줘서 좋은 아빠가 아니라 가끔 만나지만 생각과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대충 이러한 사상이 장착되다 보니 남편의 개인적인 부분들에 대부분 반대하지 않았으며 

냉정하게 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쪽이었다. 

하지만, 바보같이 끄덕끄덕 '너 알아서 해'라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이야기해 준다는 쪽에 힘을 더 싣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가정이라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하나의 작은 사회이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요즘 같은 시대에 금전은 아주 중요한 사항이니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착한 남편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나 보다.

몸이 찌뿌둥하니 전날도 이상하게 시름시름 앓고선 겨우 잠에 들었다. 

남편이 매일 주물러 주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앉았더니 허리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한 손으로 허리를 붙잡고 한 손은 벽을 짚고 일어나서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으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아악 -!"

"왜왜왜??????????" (남편)

"허리를 꼼짝도 못 하겠어. 왜 이러지?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러지? 나 좀 도와줘!"

"응응. 잠깐만 - 천천히 하나, 둘, 셋!"

"아아아아악 -!!!!!"







거의 실신직전이라 어떻게 씻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의사 선생님께 가서 침치료와 뜸요법을 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편치 않으신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oo 씨, 맥에 힘이 하나도 없어요.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는 일 있어요? 

몸을 좀 돌봐야 할 것 같아요."

"네 - 그런 가 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후쯤이 되어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oo 씨 - 접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아 -네 원장님, 침치료받고 나니 걸을 만은 한 것 같아요."

"다름이 아니라 건강검진을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혹시 모르니 시간 될 때 해보세요."

"네 ~"








한의학 자체가 대체의학에 가깝다 보니 단정 짓기 힘드시다는 말씀이신 걸로 알아들었다.

그 자체로 감사했다. 

긍정적이고 착한 남편은 걱정은 고사하고



"네가 아프니까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프지 마라~(장난 섞인 말투)"

이러니 내가 생판 모르는 남이 하는 말에 감동받지 아니하겠는가!














이 일이 있고 난 후 남편은 일주일 동안 전라도 광주로 출장을 떠나게 된다.

3일이 지나고 나는 아주 편한 상태로 잠에 들었는데, 

아침이 밝아오고 손가락만 까딱 할 정도로 몸이 침대에 본드 붙인 듯 딱! 달라붙었다.

어어.. 왜 이러지? 하는 순간부터 누워서 3시간 동안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다녀온 후, 침대에 기절할 듯 쓰러졌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 나 지금 죽을 것 같아. 아무래도 집에 와줘야 할 것 같아."

"왜? 무슨 일 있어? 아파?"

"어 - 완전....... 꼼짝도 못 하고 겨우 화장실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119 부를까 했는데.. 기어서 문을 열어주거나 해야 할 텐데.. 

내가 지금 그러지도 못해서.. 

문을 뜯으면 이거 일이 커질 것 같은데.."

"그.. 그래;; 어... 3~4시간 걸릴 듯한데.. 일단 갈게 -"

"고마워.."

(착한 남편은 이럴 땐 4시간 거리를 4분 거리처럼 편안하게 말해줘서 너무 고맙기도 하다. 

말이라도 예쁘게 받아주는 게 어디야..;;)

**현관문이 버튼식이다.















이럴 땐 왜 그리도 닭장 같은 아파트가 부러운지 모르겠다.

(아파트였으면 119 부르고 우아하게 병원 갔을까 싶어서..) 

인생이 노마드인가.. 처음부터 이렇게 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신혼 초에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지진이 났었다. 

아침 출근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지진 때문에 

복도에 타일이 다 뒤집어져서 억지로 밀고 나왔던 일, 

지진으로 화장실 벽면 타일까지 바사삭 깨져서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했고, 

일 때문에 파죽음이 된 날에도 우린 고층에서 1층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뼈 말라 다이어트 제대로 했던 일 등등은 최악이었다. 

(있던 밥맛도 떨어지고 피곤에 절어서 눕고 싶었는데 착한 남편은 운동해서 저녁밥맛이 좋아졌다고 했다;;) 


공사를 아파트 동호수 별로 나눠서 수리예정이었는데, 

매일같이 경비실에서 방송하는 통에 우리 집 반려견은 

"그만 좀 하라고 왈왈 와~~~~~알" 짖어댔다. 

결국 3개월 만에 우린 나와버렸고,

(그 외에도 층간소음에 마음속으로 아미타불 부처님을 얼마나 찾았던지..)

그 이후에도 아파트를 옮겨 갈 때마다 별안간 일들이 생기면서 

아파트는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집은 경치 좋은 산 아래에 있는 옥탑방이다. 
옥상에서 다른 집 옥상들이 훤히 보이는데 어느 집은 옥상에서 닭을 키우셔서
아침만 되면 시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꼬끼오~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사실 산풍경과 근처에 절이 보이고 닭울음소리가 정겨워서 월세 10만 원
아니 해가 바뀌고 올려달라고 하셔서 +10, 20만 원 월세에 거주 중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집에 올 때마다 이 옥탑방이 뭐라고 엄청 부러워한다.
마당에 화단을 조금 꾸며놨더니 사계절 지인분들은 꽃 보러 오시고,
매년 불꽃축제 시즌이면 아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옥탑뷰, 옥탑감성 덕분에 몇 년째 여기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반려동물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당에서 뛰 뛰 질을 한다.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이곳은 천국일까?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살라고 하시는 주인 할아버지께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남편이 집으로 왔다. 똑똑똑 -

"OO아~ 나 왔어."

"잠깐마안~~~~ 나 기어가야 해."

"어어...."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서 사력을 다해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가히 서커스보다 더 재미있는 광경이다.

반려동물들은 나에게 응원이라도 하듯이 짖어댔고, 나는 힘내서 벽을 짚고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고 남편이 들어왔다. 나는 겨우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119.. 119... 빨리.. 빨리 이.."

"어어어 - "








이번에도 착한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업무용 카톡을 보다 후다닥 119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속이 타들어 갔다.

"저 인간을 그냥 확 - 아유 진짜..." 딱 이 문구가 떠올랐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과호흡과 함께 백만볼트 전기에 감전이 된 것처럼 

팔다리에 경련이 오더니 눈앞이 하얗게 변해가고, 얼굴은 백지장이 되었다.



"대원님 - 왜 이래요? 감전된 듯이 아악 - 살려주세요."

"침착하시고요. 심호흡하세요."

(저렇게 침착하게 말씀하시니 죽을 건 아니었나 보다 싶었다.)












드디어 도착하셨다. 

태어나서 구급대원님께 도움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씻지고 못하고 거의 옥탑방 사는 불쌍한 한 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원님이 도착해서 집으로 들어오셨는데 남편은 업무전화를 느긋하게 받고 있었다.

1,2분 정도 내 눈치 봤다 통화하고 있는 남편 봤다가 하시더니 괜찮으시냐며 

언제부터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셨다.

눈치 없는 남편은 계속 통화 중이었고, 대원님이 결정타를 날렸다.




"저.. 혹시 남편분 맞으시죠?"

"네...."








남편은 그 말을 듣고서야 전화를 부랴부랴 끊었다.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연애시절부터 함께하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 모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백 번 천 번 이해하고 참으려고 했지만 감정적으로 깊은 화남이라고 할까? 이건 아니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표정과 함께 담담하게 대원님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억울했던지 울면서 감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지금까지 누워만 있었다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말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마치 어린아이가 "사탕 안 줬다고요~" 떼쓰는 것 같았다.

비참했고, 속상하고 가슴이 쓰라렸다.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래층 이모가 나오셔서 


"새댁 무슨 일이래? 아이구.."

"... .." 

(고개를 푹 떨구고 대원님들 사이에 껴서 끌려내려오고 있었다.)







이모님은 미처 추스르지 못한 나의 양말을 발목이 시릴까 봐 올려주셨다.

세상에나.. 천사가 내 눈앞에 있구나.. 눈물이 그렁그렁 거렸다.



"구급차가 와서 깜짝 놀랐어 - 아이구 어쩐데~ 쯧쯧쯧.."





우여곡절 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TV에서만 보던 구급차에 탑승하고, 호사를 누렸다.

어렸을 때부터 열이 많았던 터라 신경을 너무 썼던지 열이 조금 올랐다.





 

"아이구 - 코로나 때문에 열이 있으면 병원에 들어가지 못할 거예요."

"저 코로나 아니에요. 지금 그냥 너무 긴장해서 열이 오른 거예요.

잠시 후에 다시 체크 부탁드려요. 저 죽을 것 같아요. 어디든 빨리 가주세요. 네?"











코를 찌르던지 귀를 찌르던지 거의 자포자기상태였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나는 생을 마감하는 건가.. 뭐지? 

여러 가지 생각에 아무 말이나 뱉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잠시 후에 다시 열체크를 하고 근처에 있는 올드한(?) 양방병원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옴마야.. 이거 뭐야 - 집에서 죽는 게 나을 뻔했어.'

형광등이 깜빡깜빡거리고 아주아주 옛날 병원느낌이었다. 

너무 추워서 온몸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방치되어 있었다.

가혹한 현실.. 백 년같이 느껴졌다. 



"추워요 - 살려주세요."






에베레스트 산정상에서 고립되면 이런 느낌일 거야 - 저체온증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

의식을 놓을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4절까지 또박또박 불렀던 것 같다.

이제부터 정신력으로 버텨서 입원실까지 가는 거다.

아자아자!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 그래 할 수 있어!

입원실로 올라갔다. 임시로 3인실에서 일단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간호사 4,5명이서 이불자락을 잡고 나를 들어 올려 입원실 침대로 옮기려고 시도했다.




"하나, 둘, 셋! 으쌰 "

"아~~~~~~~~~~~~~~~~~~~악!"








나의 영혼은 이미 우주로 날아갔다 다시 돌아왔다.

간호사들은 참 환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이불자락을 짧게 잡아줬으면 덜 아팠을걸.. 이 병원엔 나이롱환자 밖에 없나.. 

어떻게 환자를 이렇게..

이제 정말 상황이 끝나겠지...

오른팔을 들어서 이마에 올리고서는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우주신은 나를 버렸을까? 

망망대해 나 혼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코딱지를 몰래 파서 혼났던 기억까지 

날 정도로 사소하게 잘못한 것까지 떠올랐다. 


'저 착한 남편은 아직도 착한 얼굴이네.. 이 정도면 무슨 표정이라도 지어야 되는 거 아닌가?'





남편은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살살 긁으면서 

"OO아 괜찮아? 어떻게.."

 라고 말했다. (남의 일이냐?!)

그때까지도 너무 추워서 윗니아랫니가 딱딱딱, 턱은 덜덜덜 - 

이 병원은 겨울왕국 촬영장인가.. 엘사 만들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저 간호사님 너무 추워서 그런데 난방 좀 켜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 병원 난방비 절감하는 것 때문에 불. 가. 능 하세요-"

(남편)"그럼 전기장판이라도 사 올.."

"환자분 그. 것. 또. 한 안되세요. 전기세 절감 때문에요."

"... .."








이건 또 뭐지? 나를 에워싸는 불길한 예감은 ;;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고, 추운 계절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너무 행복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젠 싫어하기로 했다. 

잘 참고 인내하는 거 하나는 1등인 나인데 환자 된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다.

그 와중에 링거 하나라도 더 꽂으려 하는 속물 같은 병원이 참 미웠다.

단호히, 거부했다. 



화장실은 또 왜 가고 싶은 거니.. 그렇게 다시 한번 힘을 냈다.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남편은 나의 허리를 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우고 있었는데 

통증 때문에 소리를 지르다가 감정이 주체하지 못하고 활화산처럼 터져버렸다. 

세상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언제나 잘 참던 나였기 때문에 남편도 놀랐던 모양이다.

그제야 남편은 나를 끌어안고 같이 울고 있었다.


'이 인간 뭐니.. 아픈 건 나인데 뭔데 울고 난리야 -'



나보다 자기가 더 울면 나는 어쩌라고.. 눈물이 역행해서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귀엽고 착한 우리 남편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나는 다시 강해졌고, 다짐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4절까지 애국심을 다해서 외우자! 아자아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손가락은 살아있었기에 내 몸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근처에 한방병원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리고 병원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그럼 혹시 픽업서비스도 가능할까요?

제가 거동이 불편해서 걸을 수가 없어요.(제발.. 제발..)"

"아 네! 고객님, 당연히 가능하시고요.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똑똑똑... 할렐루야! 옴 사뜨 사뜨-! 

감사하게도 병실까지 와주셨고, 처음 하신 말씀,



"병원이 왜 이렇게 추워요?"

'사..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마음속 외침)






걸을 수 없던 나는 그렇게 귀엽게 울부짖던 착한 남편을 뒤로하고 

외간 남자의 휠체어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다음 행선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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