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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sHya푸쉬야 Feb 04. 2024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10년은 참 10년스럽다.





어렸을 적 운동회에서 달리기 시합에 참여할 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어야 한다는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달렸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살지 않은 모든 내 인생에서 목숨까지 걸 정도로 심각하게 목표지점을 향해서 뛰는 거다. 눈빛에선 레이저 광선이 마치 피카추의 백만 볼트 같다. 그렇지만 1등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저질 체력인 나로서는 처음부터 감당하기 힘든 몸뚱이였겠지. 약해 빠진 나는 사색하거나 열쇠 꾸러미를 돌려가며 비밀일기를 만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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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도 죄이고,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죄일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금 나는 결혼을 한 지 10년 차 주부이다. 

결혼 전에는 요가 선생님으로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며 치유하는 사람이었고, 

20대 후반이 될 무렵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아픔이란 없다'라는 마음과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꼬꼬마 시절의 달리기 시합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작은 해프닝이었다.)      

5년 전에 나는 갑작스럽게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도 이유도 모를 '시름시름'이었다. 매일 하루 2~3번씩 청소를 하고, 남편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그야말로 나는 초 결벽증 아줌마였다. 

이것은 우리 집안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결벽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머뭇머뭇   



        

"나 들어가도 돼?"라고 말하곤 했다.


          

"왜? 자기 집 들어오면서 새삼스럽게 물어봐?"라고 말하면


           

"너무 깨끗해서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러네."라는 남편이었다.


      

“뭔 소리래 ~ 어서 손 씻고 밥 먹으러 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2~3년이 지날 무렵부터는 숨이 차오르고, 느려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매일 누워만 있어야 했고, 전보다 청소며 빨래며 모든 것들이 미뤄지거나 느려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원래부터 내가 하는 것에 잔소리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그러려니 했고, 사업 때문에 바빠 날뛰는 날이 많아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점점 나를 갉아먹는 시간이 늘어나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날 때쯤이었다. 

먹는 것에 예민하고 잘 먹지도 않던 나는 어느 날 거울을 보고서는 후덕해진 내 모습 초췌한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주변의 어른들이나 사람들도 -  


        


"남편이 잘해줘서 그래? 살 좀 빼."


           

"그게 뭐니, 아이고 살 좀 빼."


           

"게을러서 그러니 살 좀 빼!"  




         

점점 더 벼랑으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 아무리 말해봤자 아무도 이해해 주지도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 말하지 않고 침묵상태로 그저 나의 공간에서 나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남들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 정도로 나를 위해서 무시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는 잘 먹지도 못했고, 잘 마시지도 못했고, 잘 걷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몸의 내부에서 잘못 됐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내가 스트레스받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언제나 했던 요가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작들이 하나둘씩 하기 힘들어지더니 몸이 굳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직감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욕실로 가려는 순간, 


          

"악 - 오빠 오빠! 나 큰일 났어. “라고 소리쳤다. 


          

"왜?"


           

"허리가 안 움직여져 꼼짝을 못 하겠어." 


          

그렇게 남편이 나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질질질 - 끌려들어 가서 머리를 감고 병원으로 향했다. 몇 가지 검사들을 진행했지만 단순 스트레스일 거라고 했다. 나는 양방병원에서 한방병원으로 옮겼고, 침 치료와 약침요법으로 무려 일주일간 입원을 하고서 겨우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워낙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면서,      


'그래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그 일을 마주하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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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 아닌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남편의 등장이 심심한 이유는 일 중독에 빠져서 견디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발견된 뒤에 돌아오는 말들은 ”괜찮을 거야. 힘내 -“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애처로운 표정과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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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왜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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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일과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거의 집에서 밥을 먹지 않거나 집에서 잠자는 시간 고작 몇 시간 외에는 없었던 날이 더 많았다. 출장을 가게 되면 2-3일, 일주일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예민한 나는 잠을 깨고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 시간 동안 집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했고, 부실하게 먹게 되기도 했고, 남편 사업의 리듬에 따라서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하면서 묵묵히 참기도 참지 못해 화를 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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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구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지만, 주변의 사업하는 지인분들의 아내들도 모두 나처럼 그렇게 저렇게 꾸역꾸역 여기저기 아프면서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작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심한 일이라고 여겼다. 언젠가 합류하게 될지도..라는 우려 속에서 조심하며 그렇게 혹부리 할멈들의 이야기들이(*혹부리 할멈 : 스트레스로 암에 걸린 그들) 나의 현실과 맞닿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더라? 나는 참고 인내하는 시간 속에서 요가와 명상의 내공으로 다른 사람보다 잘 인내할 수 있을 거라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의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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