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번 남은 재활을 가기 전 날이었다.
허리 통증이 급성으로 와서 갑자기 주저앉아 버렸다.
출근 준비로 씻고 있던 남편은 침대에 풀썩 주저앉은 나를 들어서 눕혀보려고 시도했지만
온몸에 힘이 다 풀려버려서 함께 뒤로 넘어가버렸다.
너무 무서웠다. 재활을 하고 있었고,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했지만
이유조차 알기 힘든 이 상황을 두고 홍수 날 듯이 울어버렸다.
사지에 근육이 모두 풀어지고, 다리에 감각도 없고 무슨 큰 병인가 싶어
병원으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뿐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급박하게 주변에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고, 불안한 기운과 분주한 주인의 모습 때문에
우리 집 반려견들의 귀와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2층부터 1층까지 난관이 찾아왔다.
근육이 모두 빠져버린 다리는 후들후들 거리고, 통증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남편은 나와 걸음을 맞추며 아주 조금씩 걸어나아 갔다.
착한 남편은 옷도 대충 입고,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마법에 걸린 듯 아주아주 착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근처에 예전에 입원했었던 한방병원으로 향했고, 의사 선생님께서 다른 근처 한방병원으로 옮기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과정부터 걸어서 엘리베이터까지 가야 하는
긴 동선이 너무 힘들었다. 한 발을 앞으로 걸어 나가기도 힘들었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끌고 가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슬리퍼를 신고서 접수대까지 겨우 도착했다.
다행히 침구실에 누워서 겨우 돌아누운 상태로 침치료를 할 수 있었다.
약침을 놓으시는데 허벅지 끝까지 약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이마에 손을 짚고서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리 쉬었다.
이젠 스스로 자책하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과 동시에 한의사 선생님께서 오셨다.
'하루 입원비가 얼마지?
이거 내가 계속 있어서 될 일이 아닌데..'
몸 따위 보살필 생각은 저 멀리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병원에 누워있는 게 부담되고 있는 현실이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팬데믹도 있었고, 직원들의 작업물 속도와 결과물도 그렇고 여러 가지 정황상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했다.
남편은 항상 상황 대처능력이나 촉이 느린 편이라 한 순간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나는 늘 긴장 속에 있었다.
결국, 이 날 걸어 나오지 못해 입원하게 되었고, 딱 일주일만 입원하자는 마음이었다.
집으로 가려고 생각해 봤지만 남편이 출장을 가야 했기에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병원과 달리 침치료와 물리치료 등 모든 것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맞추어서 내려가야 했다.
당연히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병실에 누워서 침치료를 할 수 있었고,
식사 때도 이모님을 겨우 불러 "저 못 움직여서 그런데 식판 좀 가져다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멘트를 하고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같은 병실에 있던 성격 좋으시고 털털한 아주머니께서 식판도 정리해 주셨는데, 평소 같았으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라도 했을 텐데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말할 기운도 없었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커튼을 휘리릭 쳐버리고선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쥐 죽은 듯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보호자는 상주할 수 없었고 남편 역시 출장 중이라 또 한 번 우주신은 섭섭해할지도 모를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
사실, 혼자 있어서 머릿속을 비울 수 있으려나 하는 조금의 마음도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라고 여겼다.
입원한 지 5일째가 되었을 때 나는 벽을 짚고 걸을 수 있었고, 떡진 머리카락 와 냄새나는 나를 씻기 위해서 샤워실로 향했다.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나셔서는 내 마음을 읽으신 건지, 하지만 내심 갑작스러운 등장이 싫지 않았다.
낭떠러지까지 떨어진 내 자존감을 다시 주워 담아 주신 고마운 분인 건가?
생각보다 빠른 회복세에 걷는 것이 편안해졌고,
이번에도 딱! 일주일이라고 했던 나의 바람처럼 퇴원할 수 있었다.
남편은 또 늦었다.
나는 또 빨랐다.
왜 이렇게 서로의 시계가 다른 거지?
퇴원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도착이 늦어서 한참을 기다리다 '답답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스트레스받지 말자.'싶어서 짐을 들고 퇴원수속을 밟기 위해서 내려갔다.
남편이 도착하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나는 눈총을 쏘아댔다.
남편손에 껌딱지처럼 들려있는 휴대폰을 보자 부숴버리고 싶었다.
참지 못할 지경까지 온 나는 차에 타서 결국 화를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는 또 그렇게 투닥투닥 싸워야 했다.
꿈도 목표도 없이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살아가는 착한 남편을 언제까지 봐줘야 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미래가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손을 휘휘 저으면 이 어둠이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 같은 어둠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 빛이 보일까?
얼마동안은 집에서 차분히 바느질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길 바랐다.
재활을 다시 가려고 했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싶었나 보다.
어쩌다 예술 감성에 젖은 건지 압화를 배우고 싶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압화공방을 등록했다.
선생님께서 2주 뒤에 보자고 하셔서 약속했던 2주가 흐르고 길치인 나는 내비게이션을 켜놓고서 찾아가게 되었다.
비 오는 날,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던 중에 빼꼼히 대문을 여시고
손을 흔드시며 " 여기에요~~ "라고 하셨다.
2층 가정집 건물이었는데 도로공사 중이어서 굉장히 시끄럽고 복잡하기도 했다.
낯선 동네, 낯선 공간인지라 두리번두리번 눈이 바빴다.
따뜻한 차를 내어 주셨고, "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작품들이나 소품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항들을 선생님과 공유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들으시는 동안에 머리를 갸우뚱하셨다.
그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 당일날 바로 알 수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초조하기도 했고, 갑상선암 중에서도 좋지 않은 쪽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상담실로 들어갔다.
긴 이야기들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듯이 담담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은 수술을 하는 것뿐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서서히 갉아먹어 갔던 내 몸의 원인을 찾았다.
보석처럼 작은 암덩어리가 발견되기까지 그렇게도 긴 시간이 걸렸다니..
바로 삭제버튼을 눌러 없애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지지 않아도 될 작은 보석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해서 오래 씹어야 했던 이유도
목이 갑갑했던 것도 피곤했던 것도 잘 먹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10Kg 이상 증가했던 것도 내 목에 있던 작은 보석이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닌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죽음의 길은 아직 열리질 않았다는 것.
남편은 병원 가는 날도
"내가 볼 때는 절대 암 아니다 무슨" 전혀 믿지도 그럴 리 없다는 듯
나를 꾀병 부리는 사람처럼 쳐다봤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쁘다고 했던 남편인데 일단, 3일 뒤에 입원예정이니 알리긴 해야 했으니까.
목소리가 참 쾌활했다.
별 일이 아닌 듯이.. 자신의 사무실에 직원도 수술했는데 괜찮아 보이더라면서.
(괜찮은데 일을 그만둘 리가;;)
남의 일인 듯 듣고 있는 남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물론, 이해해야만 한다고도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힘든 시기에 있고 누구보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말 한마디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기대나 감정조차 올라오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행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남편의 회사사정은 급격히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려했던 상황들을 현실로 만드는 재주가 참 뛰어나다.
서서히 갉아먹히는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도 쉬지를 못했다.
직원과의 소통적인 문제와 임금 문제 등 많은 것이 불꽃축제 하듯 터지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은 그래서 그렇고, 이 상황은 이래서 그런 거 아닐까?
그동안 수 없이 뜯어말릴 대로 말렸고, 왜 남편은 귀가 멀었으며 행동은 그때만 느린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에
억울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저녁이 되어서 남편과 마주 앉았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울었다.
양손을 눈에 가져다 대고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아보지만
턱끝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남편은 그저 미안한 표정과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배려받지 못하고 남편이 하는 지금의 상황들을 들어야 했고,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써서 듣고 판단하고 해결에 힘써야 했다.
왜 이 지경까지 만들어서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만들까?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가혹하다.
실성할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실신할 것 같았다.
밤을 지새우고 두통에 시달리는 3일을 보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꽤 많은 절차들이 필요했다.
지치는 와중에 어떻게 절차들을 꾸역꾸역 해나갔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양갈래로 삐삐머리를 아주 예쁘게 해 주셨다.
죽으러 가는 거 아니고 살려고 가는 건데도 이게 마지막 모습이라고 상상하니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머리 땋는 건 재주가 없어서 간호사님께서 도와주셨는데 괜스레 감사했고,
그저 모든 것이 감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인간에게 의지하며 돕고 쓸쓸한 죽음이 아니었음을..
마지막의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수용하는 태도로 바뀌어 갔으며 마지막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할까? 해야만 할까?라는 가끔씩 생각해 볼 수 있는 생각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조용히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가까운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의 또 다른 생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 그뿐이었다.
우리는 순간의 찰나 속에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이방인이다.
어떠한 물질로 형성된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쓰임을 모두 다 한 이후 한 줌의 재로 돌아간다.
던칸 맥두걸의 가설. 영혼의 무게 21g은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야겠지.
깊은 생각으로 이어진 나의 생각의 끈이 어느덧 수술대 위까지 올라가 있었다.
간호사님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었고, 나의 이름과 사는 곳 등등 물어봤다.
그렇게 잠들 듯 눈을 감았다.
길지 않은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서 간호사님이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힘겹게 떴다.
목이 너무 아팠고, 움직일 수 없었다.
식사시간이 다가와서 침대를 세우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표정과 미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남편은 회사일 때문에 계속 통화해야 했고, 자금난 때문에 힘들어했다.
저녁이 되어서 남편은 떠나고, 혼자 2인실의 병실을 차지하고선 조용한 병실에서 강제 침묵했다.
통증 때문에 밥을 먹기 힘들 것 같았지만 밥을 꾸역꾸역 모두 먹으려 노력했다.
표정은 냉정했고, 복귀한 내 몸에 대해 평정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식판을 들고 수거함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남긴 식판들이 즐비했다.
모두 비운 나의 식판을 끼워 넣으며 왠지 모르겠지만 하나를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졌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마음의 수용상태로 또 한 발 내딛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직감했다.
회사의 직원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가야 했고, 빚이란 것이 생겼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남편에게 왜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말 한마디 없었냐고 윽박질렀다.
목소리를 잃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용한 병실이 들썩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에게 빛이 아니라,
빚을 선물로 보내준 우주신님!
잘 계신가요?
도대체 왜 이러시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