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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Sep 27. 2021

진실, 피해자 삼각형의 해독제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길

*이 글은 제가 피해자 삼각형을 배운 선생님 린 포레스트(Lynne Forrest)의 글 “The Three Faces of Victim - an overview of the Victime Triangle”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본은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ynneforrest.com/articles/2008/06/the-faces-of-victim/?fbclid=IwAR0scyq0z5QN54fJSN-kWoCWBYVr93KIEwoN46E285Cg1m6SeDvWZWqb9MU



투사 


우리는 부정(不正)적, 또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감정과 믿음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적절한 것들을 무의식으로 밀어 넣으며, 스스로를 구원하죠. 하지만, 우리가 무의식으로 치워버린 감정과 믿음은 거기 머물지 않습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은, 다르게 말하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감정과 생각들은 밖으로 투사됩니다. 보통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사하죠. 우리 안의 생각이나 감정을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해 거부하는 한, 무의식적으로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을 찾아 미워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투사라고 부르며, 피해자 삼각형 사이클을 계속하는 동력이 되지요. 우리가 외부에 투사하는 한, 피해자 삼각형은 반드시 계속됩니다. 


리사와 테드는 커플 상담을 위해 찾아온 고객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사가 어린 시절 내내 격하게 화를 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화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언짢은 기분은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분노가 ‘나쁜' 감정이라고 판단을 내리고, 자신이 화를 느낀다는 것조차 부정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주된 불평은 ‘걸핏하면 화를 낸다’는 것이었죠. 너무 당연하지 않나요? “그이는 항상 화가 나 있어요.” “뭐든지 걸핏하면 논쟁하려 들어요!”


그녀의 남편 테드는, 열려있고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자기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죠. 그는 리사와의 관계에 불만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마다, 내가 아무리 침착하게 표현을 해도, 아내는 내가 화가 났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안 해요. 결국 화를 내는 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게 된다고요.” 


이 둘이 삼각형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아시겠어요? 한번 살펴보지요. 


리사는 남편과 한마디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피해자 삼각형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화를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자기 자신을 박해함) 분노를 부정했지요.(자기 자신을 구원함) 리사는 자기 자신과 피해자 삼각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부인(Denial)을 통해 자신을 구원했지요. 부인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구하려는 시도입니다. 리사는 분노를 신속하게 차단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화를 의식적으로 느낄 기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노라는 커다란 에너지가 어디로 사라져 버리지는 않습니다. 


이제 남편인 테드가 등장합니다. 리사는 자신이 부정한 분노를 투사할 데가 필요했죠. 테드가 여기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리사는 테드 안에서 자신이 부정한 분노한 자신을 발견했죠. 그래서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테드가 ‘나쁜' 분노를 품고 있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녀가 투사한 ‘나쁜' 감정에 대해 남편인 테드를 가혹하게 비난했지요.(박해자)


처음에 테드는 자기가 어릴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이 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 위치에서 시작했지만, 곧 화가 치밀어 올랐고,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박해자 역할로 이동했죠. 이제 리사는 피해자 위치로 이동합니다. 어릴 적 두려워하던 ‘화가 난 아버지'가 떠올랐겠죠. 테드와 리사 둘 다 제한적인 믿음 체계를 서로에게 투사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드라마를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호작용 때문에 저는 피해자 삼각형을 역기능적 관계가 펼쳐지는 놀이터이라고 부릅니다. 


이 난장판에서 구원자는 어디 있냐고요? 잘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 있습니다. 위의 경우에 구원자가 외부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죠. 리사가 자신의 분노에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아버지처럼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겠죠.), 그녀는 부정을 통해 자신을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감정들은 남편에게 투사해서 자신은 빠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화가 나지 않은 척할 수 있었죠.(“화가 난 건 남편이지 내가 아니라고요.”) 의식의 어느 수준에서는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신이 심술궂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좋게 느껴졌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그림자처럼 따르는 피할 수 없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남편인 테드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좋은 상황으로 몰아가는 건 수월했지만, 그녀 자신은 스스로의 분노를 의식할 수 없었습니다. 삼각형 사이클에서 투사가 일어날 때 전형적으로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에고(Ego)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제한적 믿음체계는 우리가 계속 수치심을 느끼도록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낡은 믿음 체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지요. 각 스타팅 게이트 정체성은 삼각형 사이클을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하는 고유한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무의식적인 이야기로 발전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런 시나리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로 평생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이야기들은 온갖 종류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일으킵니다. 자신을 무가치하다거나, 어딘가 부적절하다고, 그리고 결함이 있다고 여기게 되지요. 피해자 삼각형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이런 믿음 체계를 강화, 영속합니다. 


이런 제한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고, 계속 믿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에고’(Ego)입니다. 시나리오 속 역할과 완전히 동일시해서, 그 역할로서 발화(發話)하고 역할에 앞으로도 충실하게 만들죠. 피해자 삼각형을 이용해 제한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화하고 계속 같은 고통을 느끼도록 합니다. 저는 에고와 우리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 동요를 생각합니다. 


“피터, 피터, 호박을 좋아하는 피터. 부인이 있었는데, 간수를 잘 못했지.
호박에 부인을 넣어, 잘 보관해 두었다지.” 
“Peter, Peter Pumpkin Eater, had a wife and couldn’t keep her.
So he put her in a pumpkin shell and there he kept her very well.”


에고와 우리의 관계가 바로 이렇습니다. 호박을 좋아하는 피터가 에고이고, 통제할 수 없는 와이프가 내적 여성성, 미스터리한 신성(神聖)이죠.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기억하는 건 바로 이 신성입니다. 에고가 이 본질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한적인 이야기, “호박 껍데기”에 본질을 가두는 길 뿐입니다. 우리는 제각각 이런 제한적인 이야기에 갇혀있습니다. 피해자 삼각형은 에고가 역기능적 서사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과정은 테드와 리사의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은 각자 매우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테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 비난받고, 무시당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죠. 그는 스타팅 게이트 피해자 유형이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무심히 행동해도 결국은 스스로에 대해 수치심과 무가치함을 느끼는 방향으로 상황은 흘러갑니다. 리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보는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 유형이었습니다. 테드가 화를 내어 자신을 해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테드를 통제하려는 그녀의 시도는 정당하다고 믿었죠. 테드가 분통을 터트릴 때까지 그를 무시하는 게 그녀가 벌하는 방식이었고, 그가 결국 화를 내면 남편이 “아버지랑 똑같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잔인한 성격”이라는 그녀의 이야기가 증명되었습니다. 둘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보다, 제한적인 이야기를 사실로 증명하는 게 이들의 에고에게는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친밀한 관계 맺기에 실패


우리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합니다. 다른 사람이 정말 자기 자신을 알도록 한 다는 게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결함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믿으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주길 원하지만, 아직 자기 자신은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거라고 믿을 수 도 없습니다. 무가치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항상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하죠. 숨은 의도를 품고, 진실을 부인하는 한 친밀한 관계는 불가능합니다. 피해자 의식은 다른 사람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피해자 삼각형을 반복하는 한 친밀한 관계는 불가능합니다. 




정리  


스스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참된 의도와 감정들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숨겨온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도록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로부터 자신과 타인을 구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말이죠. 


만약 우리에게 소중한 주변 사람들도 피해자 삼각형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면, 같이 더욱 건강한 관계를 함양할 수 있겠죠. 죄책감, 두려움과 수치심에 기반한 상호작용은 점점 줄어들 겁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삼각형 사이클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간에 최소한 자신은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과 그들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당신이 피해자 위치에 있다면, 그건 당신이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이죠. 


피해자 삼각형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당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필요한 바운더리 설정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바운더리 설정은 상대를 통제하거나, 그 결과를 조작해내려는 시도와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이를 자주 혼동하죠.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도를 살펴보세요. 이렇게 스스로에게 진실된 상태에서 우리는 드라마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참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 선택이 심지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삼각형의 고통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 길이 바른 선택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겉으로 박해자처럼 보일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질 자유가 있다는 걸 인정하세요. 많은 경우,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지요. 당신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 그 둘이 똑같아야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널리 퍼진 생각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가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이 되지요. 스스로의 믿음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만 나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해.”, “난 완전한 실패작이야.” 이런 괴로운 생각들을 믿을 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이런 믿음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제한적인 이야기는 이들 말고도 정말 많지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믿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그것이 사실이 되도록 행동하지요. 피해자 삼각형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열쇠는 이 지점을 자각하는 순간,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한 의식을 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스스로를 더 잘 알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 엄격하면서도 사랑에 기반한 진실을 통해서 삼각형 사이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진실을 말함으로써 자신을 해방할 때,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고차원적인 “관찰자” 위치에서, 피해자 이야기 이상의 크고 멋진 인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삼각형에서 벗어나는 작업은 한 번 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삼각형 사이클에 사로잡혔다가 빠져나옵니다. 스테판 카프만 Stephen Karpman의 드라마 삼각형 같은 도구를 이해하면, 자신이 위치한 지점이 어딘지, 지도를 그려볼 수 있지요. 우리의 관계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잘 알면 삼각형 사이클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이는 최종 도착점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창의적인 모험가, 적극적인 학생이 되어 여유롭게 과정을 즐기시길 권합니다. 


피해자 삼각형 사이클에서 자유로워지는 여정에서 당신의 생각과 감정들이 좋은 선생님이 될 겁니다.  



사진 출처 : https://weheartit.com/entry/346750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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