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Hana Feb 04. 2024

사랑받기 101

어떻게 사랑받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세상에 사랑을 주려는 사람은 많은데, 사랑을 잘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요. 스스로 사랑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건, 마치 콘크리트 바닥에 물을 붓는 것처럼, 흡수되지 않고 모두 흘러가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제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지요. 


작년에 할머니를 뵈러 잠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연세가 이제 많이 드셔서,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많이 작아지셨고, 어떤 때는 눈동자가 말똥말똥하다가 잠깐씩 어딘가 먼 곳으로 가신 듯했고, 손에는 온기가 있었지만, 뭔가 메마르고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앉아서 할머니가 하는 얘기를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좀, 무작위적으로 바꿨는데,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어이구, 나한테서 이렇게 똑똑한 게 나왔어, 꼭 과학자처럼 똑똑한 게, 그게 신기하고 감사하지 뭐야.’

잡고 있던 손을 다시 한번 덥석 잡으시면서 말이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았고, 좋은 학교들을 다녔습니다. 경제 위기 때 부모님이 워낙 힘든 시기를 겪으셔서, 생존형으로 입시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거나, 친척들을 만나서 할머니가 내 자랑을 하면 그게 그렇게 불편했습니다.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고, 무언가 간지럽고, 껄끄러워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냥 공부 잘하는 손녀 자랑을 하고 싶으셨겠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안과 밖의 어떤 괴리가 생겼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애 어른 소리를 들었으니, 스스로 자신을 분명하게 느끼지 못하는 마음의 지형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인사’를 하러 다닐 때는 막연하게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야 제 언어로 다시 풀어 설명해 보면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스스로 인식하는 자신 사이에 괴리를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내면의 감각이 상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간격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그리고 결국은 부정적인 믿음 체계로 자리 잡았습니다. 누가 딱히 잘못한 건 없었는데, 그저 잘못된 생각이 자라났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밖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내가 공부를 못하고, 좋은 학교에 못 들어갔으면 난 관심도, 사랑도 받을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은 진짜 나를 좋아하지 않아.’, ‘진짜 나를 보이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 거야.’ 


한 사람이 자신의 한 속성으로부터 내면적으로 소외당하는 과정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아주 흔하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외모가 예쁘다거나,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건 한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측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런 속성은 변할 수도 있고, 본인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죠. 살다 보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다가, 어느 시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속성이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속성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소외됩니다. 


혼잣말처럼 되뇌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건, 똑똑한 손녀가 신박했던 할머니의 진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뭐, 돌이켜 보면 ‘이 나와바리에서 내 손녀딸이 제일 똑똑하다’, 뻐기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할머니는 그냥 신기하고, 신이 나셨던 게지요. 제가 좀 능청맞았으면, ‘할머니 닮아서 똑똑하지!’, 장난처럼 한 마디 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우리 머리는 자기 자신을 항상 평가하고, 간섭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 때문에 마음을 닫을 필요는 없습니다. 뭐가 중요한지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입니다. 어떤 기준이든, 어떤 이유든 자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데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4, 소망과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