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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Aug 06. 2020

친할머니의 남자들

살기 위해 하는 용서

주말에 내 멘토가 주관하는 대형 온라인 행사가 열린다. 금, 토, 일, 월 꼬박 나흘 동안 온라인으로 미국, 유럽, 호주 등지에서 참여하는 백여 명의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행사의 성격은 뭐랄까, 21세기형 여자들의 살풀이랄까. 여자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오는 어떤 마음의 습관, 내재된 힘을 온전히 쓰지 못하고 자꾸만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 악습관을 끊어버리자는 일종의 결기, 내 본래의 모습에서 일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깊은 서원이 담긴 행사다. 이번 주 내내 행사 준비하느라 마음이 부산했는데, 시작하기 전에 우리 친할머니 이야기를 꼭 쓰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리 친할머니 이야기는 상당히 어둡다. 마치 갯벌을 걸어가는 것처럼 무겁게 축축 쳐지는 이야기다. 그녀의 이야기를 비극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비극에는 갈림길에 선 주인공의 고뇌와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이 있는데, 내가 아는 그녀의 이야기에는 딱히 선택이라고 할 지점이 없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떻게 일어나 버린 삶, 그 안에서 원한과 원망으로 돌처럼 굳어진 여자. 내가 아는 그녀의 유일한 선택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 삶을, 자기 남편을, 자기 아들을 그녀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김정희, 이북 어느 지방 유지의 외동딸이었다고 들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빨갱이들이 부모님과 남자 형제들을 몰살했다. 이 때문인지 우리 아버지는 지금도 조선일보에 종편만 보시는데, 하나밖에 없는 자기 딸이 교환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다녀와서는 공대에서 갑자기 사회학과로 전향하겠다고 하자, 애초에 그 빨갱이 나라에 보내는 게 아니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내가 할머니 품에서 노는 아기였을 때, 전쟁에 대해서 살짝 물어봤지만 그녀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지 못했다. 어떻게든 부산까지 도망쳐온 그녀는 거기서 친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네 자녀를 낳았다. 어머니에게 유독 살갑던 둘째 아들은 밭일 나갔다가 트럭에 치여 나이 스무 살에 요절했다. 도박벽이 있던 남편 탓에 결국 집안 재산을 다 말아먹고 친인척을 피해 온 가족이 서울로 도망쳤다. 


삶이 그녀 성에 차지 않았다. 남편에게 말할 때는 항상 가시가 돋았다. 특히 서울로 대학에 대학원까지 보냈던 큰아들이 성에 차지 않았다. 며느리라고 데려온 계집애도 한참 자격 미달이었다. 셋째 딸은 공장에 나가 일하고, 막내딸은 차마 밖으로 내돌릴 수가 없어서 집안에 눌러 앉혔다. 스무 살에 시집온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와 막내 시누이 캄보(combo)로 시집살이의 정석을 밟았다. 대략 십여 년은 그럭저럭 고분고분 살다가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로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자 그들 사이에 쌓여 온 무언가가 드디어 터졌는데, 그 일로 친할머니는 결별을 선언했다. 몇 년 뒤 내가 과학고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딸내미를 내세워 용감하게 화해를 시도했다. 좋은 소식을 안고 갔는데, 공기가 참 무거웠다. 아버지가 조용히 안방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고, 나도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신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친할머니는 결국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걸로 나와 친할머니의 인연은 끝이 났다. 친가 쪽 누구도 아버지와 연락을 재개하지 않았고, 나도 아버지도 한참 후에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다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두 분 다 돌아가신 걸 알았다. 


용서가 삶을 위한 유일한 선택일 때가 있다. 내가 성인이라거나, 비범한 심성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단지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용서라서, 하기 싫어도 조금은 애를 써서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따르는 이스라엘 샤먼이 이런 말을 했다.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에는 사랑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고. 도박벽이 있던 남편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온갖 피 튀기는 사건들로 얼룩진 그녀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작지만 분명한 선택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었다. 남자들을 향한 원망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순간, 마음을 열거나 닫는 선택은 오직 그녀 자신만이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우울증 판정을 받고는, 나도 한동안 엄마 탓, 친할머니 탓을 참 많이 했는데 이제 완전히 보내드릴 때가 됐다. 원망으로 무거운 삶을 사는 습관, 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해 괜히 가까운 가족에게 시비 거는 습관, 마음을 강퍅하게 닫아버리는 습관도 같이 보내드린다. 아픔이 많은 여자들, 하지만 기 센 여자들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느끼고 기를 팍팍 북돋아 주는 좋은 멘토가 되었다는 감사의 말씀, 당신 손녀딸이 참 유별나도록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안부 인사도 같이 전한다. 

목련처럼 한 잎 한 잎 시드는 꽃보다는, 동백처럼 꽃망울이 똑 떨어지는 깔끔한 꽃을 좋아하시던 김정희 여사. 이북식 엿, 녹두전 그리고 엄청나게 큰 만두로 명절마다 푸짐하게 퍼먹던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고, 아픔과 슬픔은 고이 태워서 흘려보낸다. 

Rest in peace. 고인의 명복을 빈다.  



Photo by Glen Hod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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