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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Aug 16. 2020

귀향, 몸으로 돌아가기

성적 수행 경험담

내 몸은 내가 사는 집, 내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이 자라는 공간이다. 

내 몸을 느낄 때, 나는 안전하고, 완전하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내 머리가 출구 없는 미로를 그릴 때에도, 내 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다. 내 몸은 나에게 맞는 길을 안다. 


몸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때, 사람들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이 성과 관련된 기관이다. 

내 성기는 나에게 전력원이자 나침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부분, 아니, 사실 부분이라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로 나라는 사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여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한국어 표현을 찾는 게, 마치 내 본래 이름을 찾는 일인 양 중요하게 느껴졌다. 한국어로 여자의 성기를 부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강단이 필요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포궁(자궁)이나 질은 성기의 일부를 지칭하고, 보지는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지만, 정작 음부를 검색하면 여성의 성기인지 생식기 일반을 가리키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고 물리는 이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보지를 고르기로 했다. 여자의 성기를 하나의 기능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단어에, 이 부위에 대대로 축적된 감정의 무게를 보여주는 말. 표현하지 못한 욕망들, 무언가 잘못될까 싶은 두려움, 무거운 수치심과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엄청난 쾌락과 바닥이 안 보이는 감정들이 같이 담긴 공간. 여자의 성기는 연약하면서 위험하고, 들끓는 욕망의 대상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저속하고,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알 수 없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시로 읊어야 할 것 같은 대상이다. 생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작은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는 근원적인 힘의 공간, 그게 바로 내 보지다. 


많은 사람들과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이 마치 황량한 지뢰밭에 띄엄띄엄 위태롭게 서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세상에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데, 어쩌다가 발을 잘못 디디면, 자존감에 극심한 부상을 당한다. 관계에 대한 의무와 규범이 너무 조밀해서 성생활에 대해 편안하게 여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드물다.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관계를 재정립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는 '내 몸이 어떠해야 한다' 또는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라는 것. 마치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적인 수행은 나의 성과 의식적으로 같이 있는 것,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보지와 천천히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기능적 사고에 너무 익숙해져서 남자의 성기든, 여자의 성기든 꼭 절정에 다다라야 한다거나, 어디서 본 듯한 반응을 어떻게든 일으켜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수행 불안에 빠진 남자와 성관계가 포만감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피곤한 것과 같은 이치다. 목표지향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탐구할 때, 훨씬 더 다양하고 생생한 느낌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흑백영화가 천연색 영화가 되는 것 같은 감각과 의식의 확장을 경험한다. 


나는 몸은 상당히 예민한데, 머리는 정말 고지식한 편이라 몸의 반응과 감정을 가감 없이 믿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머리가 몸에서 보내는 신호들을 아예 무시하거나, 착각 또는 과장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이에 교신이 되질 않았다. 이게 우울증으로 터지지 않았으면, 아마 가능한 눌러 참으며 꾸역꾸역 살았을 거다. 다행히도 그게 꾸역꾸역 눌러 담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 정보망에 들어오는 다양한 치유 방법들을 하나씩 하나씩 꾸준히 시도해 봤다. 담당 의사를 열 번은 족히 바꿨다. 어떤 상담사는 세션 중에 졸기도 했는데, 건물을 나서며 화가 났다기보다는 측은했던 기억이 난다. 인디언 정화 의식, 스톤 힐링, 무명의 우울증 환자들 모임 등 머리로 생각하기에 이상한 것들도 시도를 아예 안 하기보다는 나에게 뭐가 도움이 되는지 하나라도 더 아는 게 낫다는 열린 자세로 성실히 임했다. 전남편이 오르가슴 명상이라는 걸 제안했을 때는 정말이지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도전 의식이 충만하다는 건 들었지만, 정말 갈 때까지 갔구나.' 

실제로 오르가슴 명상을 시도해본 후, 내 몸의 반응은 냉소적인 머릿속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배터리에 전원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살 것 같았다. 


내 보지와 관계를 회복할수록, 몸에서 오는 신호가 더욱 분명하게 잡혔다. 좋고 싫은 게 분명해지고, 나에게 필요한 걸 파악하기가 조금씩 쉬워졌다.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우울증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시작했던 성적 수행이 점차 나를 위해 할애하는 시간이 되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내 몸과, 내 성과 내 안에서 자라나는 그녀를 위한 시간. 히터에 등 대고 쌔근쌔근 자는 고양이처럼, 뭘 해도 이미 내적 쾌락으로 충만한 여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녀에게 계속 돌아왔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우울증에 걸린 아픈 여자'로 바라보지 않게 된 후에도, '여자라는 게 상당히 좋은 일이구나' 처음 생각하게 된 후에도, 전 남편과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이혼하고, 용서하는 긴 과정을 거치면서도 수행을 통해서 나에게 돌아왔다. 여기는 안전했다. 방치했던 폐가를 쓸고, 닦고, 다듬어서 안락한 집을 가꾸는 것처럼, 내 몸의 감각을 익혀 내 집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내가 머무를 유일한 공간, 삶과 감정, 감각이 실제로 일어나는 공간이 몸인데 몸을 잘못된 것으로 인지하는 사고방식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글을 읽는 분들이 아무쪼록 몸으로의 귀향에 성공하시길. 

건투를 빈다. 



Photo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여자들이 여과없이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https://www.meetup.com/fr-FR/PussifulSeoul/events/ntkkwrybclbzb/


심하나 KakaoTalk ID : Monianbo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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