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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Aug 26. 2020

남편이 자꾸!

내가 중심이 되는 성생활

한국 여자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이 자꾸'로 시작되는 하소연이 자주 등장한다. 남편이 자꾸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나한테 손대는 것도 싫다'부터 '저 인간, 어딘가 문제 있는 게 분명하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고민과 괴로움, 아픔을 보았다. 매일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 사이에서 성적인 욕구를 맞추어 가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가능한 차근차근, 단계별로 풀어보았다.  


시작점

일단 당신과 남편의 성적 욕구가 다른 건 너무나 당연하다. 둘이 만나 중국집에 들어가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고, 다른 사람은 짬뽕을 먹는데, 한 집에 산다고 마법처럼 매일 저녁 눈이 맞아 쿵짝쿵짝하거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예쁘게 손 잡고 자는 건 불가능하다. 성적으로 끌려서, 아니면 정말 황홀하게 너무 잘 맞아서 결혼한 경우에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결혼해서 같이 살기 시작하면 어떤 때는 남편이 마치 내 신체의 연장인 것처럼 빤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당신의 남편은 자기 나름의 욕망과 필요를 가진 다른 사람이다. 내 남편과 나의 성적 욕구가 별다른 노력 없이 한평생 딱딱 맞아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글쎄, 꿈 깨시라. 성생활은 마치 민감한 식물처럼 꾸준한 관심과 소통으로 조심스럽게 가꿔나가야 할 영역이다. 


함정(pitfall). 

커플이 느끼는 성적 욕구의 격차는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정답도 없다. 한국에서 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 어떤 조언을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일단 하고 생각해라', '남편의 섹스 요구는 절대 거절하지 말아라' 등등 읽다 보면 울화통이 터져 불 뿜는 용가리가 될 것 같은 글들이 인터넷에 생각보다 많았다. 세상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도 알겠고, 결혼생활에서 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바도 아니나, 이런 조언들을 보며 여전히 울분이 터지는 이유는 바로 당신, 커플 생활을 하는 여자가 Yes, No라고 말할 자유의지가 있다는 걸 이 상담사들이 하나같이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섹스와 성에 관련된 결정은 오직 당신만이 내릴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상담사들의 대답은 성관계를 해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표면적인 질문이 아니라, 성관계없는 결혼생활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자의 두려움에 대한 대답이다. 


성적인 어른의 의미. 

당신은 Yes, No라고 말할 자유가 있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당신 몫이다. 여기가, 성적으로 어른이 되는 첫 시작 지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실수도 해보고, 여기저기 부딪혀 넘어져도 보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듯이, 성적인 미성년도 실수를 통해 성인이 된다. 다만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 어디에서도 수치심과 의무감으로부터 안전한 배움의 공간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서 실전을 통해 하나씩 배워가는 것뿐이다.   

내 생각을 다르게 말하면, 만약 당신이 성적으로 Yes, No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면 당신은 아직 성적인 미성년이다. 그리고 생물학적 나이가 몇 살이 되든 Yes, No를 분명히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없는 사람과 성관계를 하는 건 위험하다.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형태가 되든 폭행,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일종의 침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내 삶에서 뭐가 중요하고 뭘 하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성적인 어른이 되고 싶다면 내 성생활에 바라는 게 뭐고, 필요한 게 뭔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잘못 vs. 놀이 

이쯤에서 다시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잘못했다는 질책이 아니다. 성생활 또는 힐링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에게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있다고 대답한다. 이건 말 그대로 미성년에서 성년이 되는 성장 과정이다. 내가 몰랐던 영역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아이에게 놀 공간을 마련해주듯이, 성적 자아에게도 놀이를 통해 배울 공간이 필요하다. 네와 아니오를 말하는 연습, 내 몸에서 네와 아니오가 어떻게 다른지 느끼는 연습, 내가 원하는 바와 반대로 말할 때 기분이 어떤지도 느껴보는 연습을 권한다. 물냉면이 먹고 싶어 식당에 갔는데, 회냉면을 시키지 않듯이 몸은 어떻게든 욕망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내 몸이 바라는 게 뭔지 느끼면서 몸의 신호와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정말 바라는 게 뭔가?' 

'네와 아니오'를 말하는 게 단순한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실생활에서 분명한 의사표현이 되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한 번이라도 내가 정말 바라는 게 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을 잘 알아야, 남편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는 성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파트너는 바꿔도, 나 자신에게 한 투자는 반드시 그 빛을 발한다. 당신의 욕망이, 여자로서 당신이 꽃처럼 피어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Photo by Gemma Evans on Unsplash


여자들이 자신의 감정, 성, 사랑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https://www.meetup.com/fr-FR/PussifulSeoul/events/xwtswrybclbjc/


심하나 KakaoTalk ID : Monianbo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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