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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Nov 04. 2020

사대주의 반성

내적 가치에 기반한 삶을 위해

갑작스러운 역병으로 인생 계획이 무마되어 안절부절못하는 성취형 인간들이 내 주변에 간혹 있다. 


나로 말하자면 천성이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여 평소 차마 맘 놓고 하지 못하던 기행, 뻔뻔하게 대놓고 즐기지 못하던 자기 탐닉을 전 지구적 재해를 핑계 삼아 마음껏 누렸다. 항시 떨어져 연애하던 약혼자와 대 봉쇄를 기회로 동거하기 시작하니 소소한 일상을 반려자와 나누는 재미가 날로 더하여, 평생 멀리하던 부엌일을 즐기고 주말이면 산으로 동행하여 자연을 벗삼았다. 예전에는 꼭 비행기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던 각종 수행의 대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부지런히 비디오를 찍어대니, 날마다 소셜미디어를 보며 멍 때리기에 바빴고, 온라인 워크숍 전후로 낮밤이 바뀌기 부지기수였으나, 행여라도 적적한 날은 넷플렉스가 빈자리를 메꾸었다. 

춘삼월에 구미 전역으로 퍼진 역병이 잎이 지는 가을에 오히려 기세가 등등하니, 보이지 않게 전파하는 역병의 끈질김이 내 게으른 성질을 거뜬히 이기고도 남음을 알았다. 이에 할 수 없이 그간의 소감을 적어 무료한 마음을 달래고자 한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떠돌기도 한참 전, 서구 중심주의에 깊이 물든 나는 사회학의 원조국이라 불리는 불란서로 유학하였다. 남의 것을 탐하고 제 것을 가꾸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를 그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통렬히 반성한다. 외세로 분단된 남한에서 강대국이라면 아메리카요, 미국인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대국이 불란서였으니, 이후 외국어를 어려워하는 양인을 볼 때마다 내심 비웃었으며,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미적으로 월등한 파리에 우월감을 느꼈다. 타국에서 본토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국인들끼리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습성을 한심하게 여겨, 억지로라도 현지인과 어울리던 것이 점점 굳어져 모국어가 외국어보다 어색하고, 사고가 다른 언어로 파편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남한 특유의 경쟁심과 시기심은 그대로 남아 여차하면 양년들을 이겨먹겠다 별렀고, 결국 제 성을 이기지 못해 지병인 화병이 도져 누웠다. 


세계 전역의 문물이 흘러든 모더니티의 수도에서 소싯적 서양문물만을 탐할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배웠으니,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존중은 유교적 획일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조선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구만리 이역에서 오히려 처음 불교를 접하고, 절이란 산에 올랐을 때 다리를 쉬러 방문하는 곳이 아니요 본래 수행의 공간임을 일식 승려복을 입은 불란서 승려에게서 배웠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대담함은 점차 극에 달했다. 21세기 대중 영성의 실험실이라 할 만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오르가슴 명상을 접하고 그 힘에 매료되어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로 매달 여행을 떠났다. 많은 돈과 큰 정성을 들여 머나먼 도시에서, 유명한 선생을 만나 배운 것은 무엇인가?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수행을 인생 제일의 의미로 삼는 서양 여자의 결기를 배웠다. 싸워서 장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남성적 서양 문화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반성과,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수준에서 여성성에 기반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현하려는 치열함을 배웠다. 내적인 통일에 집중해야 대인 관계와 사회생활에 통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동양적 가치가 하이힐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서양 여자에게서 온전히 체화된 것을 보았다. 나의 성과, 나의 몸과, 나도 몰랐던 자기 안의 본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내적 혁명을 이룬 여자에게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힘과 자유가 허락되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동양적 가치의 실현을 보기 위해 왜 저 멀리 아메리카까지 가야 했는가? 서양 선생들의 언어는 영어였으나, 그들의 기본 가르침은 무엇하나 동양에서 싹트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양한 사고와 영적 실험을 허용하는 자유와 실용주의는 미국 문화 고유의 장점이라고 치자. 하지만 내가 꼭 스스로에게 물어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어떠한 인식적 경향이 내 시야를 흐려 서양인들이 그토록 명료하게 집어낸 동양적 철학과 수행의 가치를 보지 못 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서구 중심주의, 남의 것을 탐하고 자신의 것을 하찮게 여기는 악습은 이미 언급했다. 전통 철학을 가르치는 조선의 것도 아니요, 학생 개인의 사고 능력을 기르도록 고무하는 블란서식도 아닌, 서양 학문의 대략적 얼개를 가져와 기계적으로 학습하고 무한 경쟁을 골수에 본능처럼 새기도록 하는 천박한 교육 방식도 같이 논해야겠다. 내적 통일, 도덕적 책임을 중시하는 문화 일반은 남았으나, 스스로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실생활에서 이를 함양할 수행적 수단이 없이, 상대방의 도덕적 결점을 꼬집어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가 판을 친다. 동양, 조선, 한국의 것이 아니라 서구의 문물을 더 중시하고, 나 자신의 성장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만을 갈구하고, 뼈를 깎고 살을 찢어서라도 외부 기준틀에 스스로를 구겨 넣는 태도는 모두 같은 마음가짐의 반영이다. 어떻게든 동료들을 이겨 먹어 남에게 잘 보이고,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여기던 내 천박한 마음을 깊이 반성한다. 


일이 년 전부터 여성적 명상의 전통을 한글로 표현하려 애를 썼지만, 그간 가르치고 배운 것이 외국어로 깊이 각인되었고, 한국식 행습을 부끄럽게 여겨 멀리한 지 십 년이 넘어, 번역을 하여도 비디오를 찍어도 겉도는 표현과 사고의 공백이 가득했다. 불란서에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내가 명상을 가르친 이들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모국어로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아의 일부가 소외된 데서 느끼는 괴리감은 그 성취로 해소되지 않았다. 모국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모국어로 활동을 할 방도를 찾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려운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음을 아무리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초 어떠한 외현보다 내적 통일을 중시하는 선생을 만나 나 자신을 경시하던 악습을 고백하고, 그간 방치해온 마음의 저항과 억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말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외국어로 닦은 사고가 미처 닫지 않아 어두운 곳을 말없이 떠도는 잊었던 나를 보았다. 아무리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내면의 뿌리에 닿지 않은 사람은 실 끊어진 연처럼 바람 부는 대로 방황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진실에는 국적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근본을 억누르는 사람은 한편으로 몽상에 빠져 날이 선 의식을 가꾸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악습을 쌓는 데 한 평생,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쌓은 벽을 허무는 데 다시 한 평생이 걸리니 내적 통일은 어떤 균형에 이르는 과정일 뿐,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결과가 아님을 배웠다.   


사사로운 과거의 면면을 굳이 글로 풀어내는 것이 한편으로 구차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아의 정신병적 집착에 불과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분명한 말로 어두운 본성을 밝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가슴속 마디마디 매듭진 것을 풀어 혹여 비슷한 고통을 겪는 자와 나누고자 한다. 어색한 구시대의 문체로 글을 쓴 까닭은 먼저 미천한 한국어 실력으로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문어체를 찾는데 장애를 느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신박하게도 자신을 반성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옛 말투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내적 통일이니, 수행이니 하는 용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려면 아무리 애를 써도 고리타분하게 들리는데, 아예 이상한 말투에 갖다 놓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듯도 했다. 근본도 없고, 두서도 없는 실험적인 글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Photo by Mathew Schwart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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