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2편: 경이로운 변화의 시작
나는 어렸을 때 꽤 많은 놀이와 스포츠를 했었다. 그 움직임이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몸을 만들겠다는 목적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는 놀이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많이 움직인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나의 건강, 정서, 가치관, 도덕성에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인생학교: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의 데이먼 영(Damon Young)은 "운동은 지적 즐거움과 더불어 도덕적인 자극도 줄 수 있다. 운동으로 사고가 바뀔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사고를 통해 운동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육체미 운동이라 불렸던)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중2 이후로 33년간 운동을 해왔고, 20년간 운동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 약 50년간 운동을 지속할 것이다. 마침내 나의 움직임은 몸이 대지에 스며들어 지구별에서의 여행이 끝날 때 멈출 것이며, 그것은 인간의 숙명이자 자연의 이치이다.
(성인이 된 후 숨쉬기 운동 외에 다른 운동은 해보지 않은) 당신은 운동하면 어떤 생각부터 떠오르는가? 시간을 내야 하고, 의지도 있어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물도 챙겨야 해서 귀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운동은 헬스클럽에서 하는 것이니 회원권은 1년 치는 끊어야 할 것 같다. 남들도 받는다는 PT도 한번은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실내는 답답하니 야외라도 나가야 왠지 운동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이처럼 운동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운동을 '움직임Movement'이나 '놀이Play'로 바꿔보면 어떤가?
"움직이는 거야 뭐, 매일 하는 건데."
"놀이라면 즐겁지. 매일 하면 좋을 정도로"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최초로 놀이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으로 놀이가 시간 낭비라는 편견을 뒤집었다. 그가 1938년에 쓴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문화적 창조력을 강조하면서 놀이가 문화적 잔존물이라는 기존 관념을 180도 바꿔 놓았다. 놀이는 법, 정치, 예술, 전쟁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의한 놀이의 본질적 특성 2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놀이란 실제적인 목적을 추구하지 않으며, 움직임의 유일한 동기가 놀이 그 자체다. 즉, 기쁨이 있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활동이다. 둘째, 놀이란 모든 참여자에 의해 인정받는 어떤 일정한 원칙과 규칙 즉, ‘놀이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활동이며, 거기에는 성취와 실패,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이 있다.
– <하위징아 : ‘호모 루덴스’>, 네이버지식백과 중에서
움직임의 유일한 동기가 놀이 그 자체라고 강조하면서 인간은 놀이를 통해서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놀이 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냥은 물론 전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이 있으며,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며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는 말과 함께.
그가 정의한 놀이 대신에 운동으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위징아의 말처럼 놀이와 함께 문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놀이가 바로 '움직임'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폭발이라는 움직임을 통해 탄생했고) 인류는 움직임을 통해 발전해 왔으며, 당신과 당신의 삶도 움직임 그 자체이다.
몸을 움직인다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퇴근 후나 주말이면 의자, 소파, 침대,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몸을 움직이거나 놀이를 하는 건 당신에게 식은 죽 먹기 아닌가. 비록 마음이 몸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당신이 몸을 움직이지 않을수록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을 느끼면서 생기가 점점 없어지는 걸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를. 만약 우리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죽는다.
2천 년 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460–377)는 다음의 말을 남겼다.
움직임은 생명이다(Motion is Life)
우리는 움직이는 동물이다. 움직임은 역동적이며,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면 인간은 죽는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잘 움직이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한 세상.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엔 전에 없던 문제가 발생하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적당히 움직이고 활동량에 맞는 식사를 하면 해결될 '생활습관병Lifestyle Related Disease'이라 불리는 질환도 알약 하나로 고치려는 '운동부족병Hypokinetic Disease, 운동기능 감소증'을 앓고 있는 시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을까? 147년 전인 1873년, 영국 총리 에드워드 스탠리(EDWARD STANLEY, 1799-1869)는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아플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작자 미상의 "운동은 '너무 많이 먹었어'의 벌이 아니다."란 말이 떠오른다. 운동이 다이어트만을 위한 수단으로 소모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날린 말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운동의 의미가 다를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체력과 몸을 만들기 위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부를 더 잘하고 싶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살고 싶고 살아가기 위해서 등등.
(운동이 너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벌이 아니라면) 과연 운동이란 무엇인가?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혹은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지만,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운동(Exercise):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운동(Movement): 생물이 그 몸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공간적으로 이동시키는 동작을 일컬음.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운동은 '목적을 가지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단순한 행위가 당신의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은 꽤 다양하며 그 효과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의학박사이자 달리기 철학자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은 "인간은 운동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운동은 자신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 깨닫게 한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우리 모두에게 운동은 그 어떤 행위보다 빠르게, 고통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을 들려준다."라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 <운동 안내서>에 다루고자 하는 운동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움직임, 즉 운동은 한자로 옮길 운運, 움직일 동動, 영어로 Movement, Exercise이다. 운동은 분야별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몸, 신체 부위의 움직임, Movement, Exercise, Motion [인체, 의학]
가지고 있던 생각이 바뀜. 또는 그런 생각을 함, Movement [심리]
일반적인 운동의 동작, Movement [체육]
장소의 이동, Movement [일반]
물리적으로 물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일, Movement [물리]
생리적으로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Exercise [건강]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신체의 기량을 닦거나 기술을 겨루는 일. 또는 연습과 훈련 Exercise [체육]
사회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방면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일, Movement [사회]
운동의 의미를 음미하다 보면 움직임과 운동은 가장 중요한 ‘변화Change’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담고 있던 무無가 대폭발이라는 운동을 통해 일순간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세상 만물과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를 외면하지 않는 깨어 있는 시민에 의한) 동학 운동과 촛불 운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선진국 문턱을 넘기는커녕 저질스러운 인간들에 지배당한 채 여전히 헬조선의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건강, 체력, 지적 생산성, 행복, 삶의 변화 등에 관한 긍정적 체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운동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나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나를 변화시켜 삶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움직이고 운동하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 한다. 생각을 흐르게 하고, 몸과 마음을 흐르게 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질서가 아닌 무질서가 우리를 포위하게 된다.
운동은 변화의 의미를 지닌 동시에 ‘가능성 Potential, Possibility, Chance’을 품고 있다. 우리 몸과 마음속에 깃든 잠재력Potential을 깨우는 변화의 노력이 있기에 그만큼 가능성Possibility이라는 기회Chance의 문이 열린다. 움직여야 변하고, 점점 잠재력이 발현되기 시작하면,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주역에서 (움직일) 운運이 좋지 않은 시기에는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활력을 얻는다.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심리적 건강도 얻을 수 있다. 운동을 하면 점점 삶에 대한 의욕도 생기고, 웬만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자신감이 생긴다. 운동은 결국 우리가 가진 기운을 움직이는 것이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아 우리 몸과 마음의 기운이 온몸을 순환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부정적 생각과 감정, 욕심 등으로 무거워진 기운이 순환하지 않아 질환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IMF 시절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나고, 달리기 인구가 늘어난 이유는 망연자실하지 않고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1887년 영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가 한 다음의 말을 인용했다.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무모하지만 운동이라는 섬을 조금씩 넓히기 위해 지금까지 준비한 바로 그 의무(덕질이라고 읽는다), 를 성실히 실행하고자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알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아보기 힘들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제대로 몰입할 때 진짜 운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고갱이 건넨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삶의 여행에 관해 독자 스스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같은 이해 덕분에 지구별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여는 글 3편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로 이어집니다.
참고: <당신이 지닌 최고의 의사! ‘운동’을 위한 안내서 – 1편>
참고: <인생학교: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데이먼 영 지음 | 구미화 옮김 | 프런티어(2016)
참고: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운동을 하면 운이 좋아진다?> 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 경남도민신문, 2017.9.7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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