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소중한, 낭만적인 '중력'
원자와 빛이 탄생한 이후 우주는 이렇다할 변화 없이 약 4억 년 간 대부분 수소와 헬륨 가스 그리고 우주먼지만 떠도는 암흑의 시대를 보낸다. 빛을 내는 천체가 아직 탄생하지 않아 우주는 매우 어두웠다. 이 시기는 항성이나 은하 등이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천천히 키웠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동력은 우주의 근원적 힘 중 하나인 (아인슈타인이 힘보다 지형으로 생각했던 낭만적인) ‘중력(Gravity)’. 네 가지 기본 힘 중에서 가장 약하며, 유일하게 인력만 작용해 만유인력(萬有引力)으로도 불린다. ‘만물에 존재하는 인력’이라는 뜻이다. 중력은 만물에 영향을 미치지만 중력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만물이다.
우리가 낙하할 때마다,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몸을 밀어 올려 일어설 때마다, 뭔가를 들어올릴 때마다 몸은 중력의 존재를 새삼 느낀다. 이처럼 중력은 다른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것보다 우리의 움직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를 하던 우주비행사가 사고로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서 재난을 겪다, 중력이 있는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 《그래비티》.
중력은 원래 존재하고 어디서나 느껴지기 때문에 그 존재를 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낭만적일 것 같은 (산소도, 소리도, 중력도 없고 밤낮의 기온차가 200도에 이르는) 우주의 현실은 인간에게 죽음 자체다. 지구에서의 죽을 것 같은 참담한 현실은 중력이 존재하기에 오히려 낭만적이다. 포기할 것 같은 순간에도 중력을 이겨내고 일어설 수 있는 삶에 대한 희망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중력과 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부적으로 우리 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몸은 멈출 때까지 멈추지 않는 운동 기계로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우주 또한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중력은 모든 운동 뒤에 숨은 원동력이다. 또한 우리 몸의 생리적 구조에도 중력은 영향을 미친다. 근육이 스스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재건할 수 있는 것도 중력 덕분이다. 뼈와 신경섬유도 마찬가지.
모든 식물과 동물이 그렇듯 우리 몸도 중력 당김에 대항하여 항상 힘들어한다. 가만히 누운 자세에서도 우리 몸의 결합조직 틀은 지구 중심을 향해 당겨지고 있다. 인간이 직립 (보행) 자세를 선택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 그렇지만 팔다리가 흔들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움직일 때 중력이나 탄력 같은 다른 특성을 사용하도록 진화했다. 직립 자세를 선택한 인류는 평생 중력에 대항하여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중력은 우주의 기본 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긴다. 어느 날 아침 거울에 보이기 시작한 주름과 노인들을 보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1]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식물이 중력을 이용해 건강한 뿌리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중력 없이 사는 사람들, 즉 우주비행사를 관찰할 기회를 얻기 전까지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중력의 역할에 대해 알지 못했다. 무중력인 우주에서 생활하는 우주비행사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대개 노화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신기하게도 자궁 속은 무중력 공간이다. 양수로 가득 찬 자궁 안에서 태아는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태아가 중력 세계로 나온 순간 몸의 내부 힘과 외부 힘 간의 절충 즉, 보상(Compensate) 작용이 계속 진행된다.
이때 뇌는 자동으로 중력을 감지해 신경계를 이용한다. 덕분에 우리가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은 우주로 나가서 발견한 사실로 중력이 없으면 움직임 효과가 없다. 즉 근육과 뼈가 약해질 뿐이고,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중력은 해로운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력이 있는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은 금세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이는 몸과 뇌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력을 활용해 건강을 얻는 방법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2]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 또는 일주일에 여러 번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은 최선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하루 종일, 1년 365일 강도가 낮은 자극을 자주 여러 번 주는 편이 건강에는 가장 적절하다(다만 체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이라면 일정한 강도 이상의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우주 탐사로 밝혀진 지구에서의 건강 비결은 지구를 떠나는 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3]
중력은 지구에 발을 딛고 삶을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중력을 느끼는 운동으로 근육에 자극을 주고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 우주정거장에서 몇 달간 생활해야 하는 우주비행사들의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것은 무중력 상태가 원인이다. 비록 우리 몸이 중력의 영향을 넘어서는 시공의 휘어짐을 느끼진 못할지라도 일상생활에 관한 한, 우리는 지구의 표면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탄생 직후 우주에는 입자와 반입자처럼 가스 밀도 역시 불균형 상태였고, 가스도 질량이 있으므로 주위에 중력을 미칠 수 있다. 밀도와 질량이 커진 가스 구름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서로 움직이며 접촉한다. 지구와 달이 서로 끌어당기듯 우주 최초의 가스 구름도 서로 끌어당기며, 충돌하고 회전시킨다. 이렇게 가스와 우주먼지들이 밀집해 마치 구름처럼 보이는 성운(Nebula)에서 천체가 탄생하게 된다.
별도 초기에는 ‘원시별(Protostar)’로 시작한다. 가스나 우주먼지가 중력으로 인해 수축을 시작했을 때, 중력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하면 온도가 상승해 태양 질량의 100분의 1정도의 가스 덩어리로 성장한다. 성장한 밝은 천체가 바로 ‘별의 씨’로 불리는 원시별이다(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은 약 10만년 정도 원시별 단계에 머문다고 한다).
원시별은 우주의 역사로 보면 극히 단시간인 150만 년 동안 주위로부터 가스를 더욱 모아 중심부에서 수소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서 빛을 내는 ‘주계열단계(Main Sequence Phase)’로 진화한다.[4] 별의 진화 단계 중 일생의 약 90%를 차지하는 이 단계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진정한 별로서 일생을 시작하게 된다. 마침내 빅뱅 이후 거대한 항성인 '최초의 별(First Star)'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최초의 별이 탄생해 어린 우주를 비추기 시작한 것은 우주 탄생 4억 년 후의 일이다. 이때 우주의 크기는 현재의 15분의 1정도로 추정된다.
우리가 별이라 부르는 항성(Star)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는 천체를 말하는데, 핵융합 반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빛의 원천이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최초의 별은 매우 거대한 항성이었으며, 질량은 태양의 수십배에서 100배나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가벼운 별은 무거운 별에 비해 수명이 길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함을 별에서도 배울 수 있다.
최초 별의 중심부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수소의 원자핵에서 헬륨의 원자핵이 합성된다. 수소가 바닥나면 이번에는 헬륨의 원자핵끼리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탄소 원자핵 등이 합성된다. 이처럼 별의 심장부에서 가벼운 원소의 원자핵이 모두 타버릴 때마다 더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이 핵융합 반응의 연료로 쓰이게 되고, 다시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이 합성된다. 별은 우주의 '원소 제조 공장'이었던 것.
그리고 생의 마지막 시기에 별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별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중력과, 별을 부풀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가스 압력의 균형이 무너져 결국 팽창하게 된다. 최초 별의 경우 반지름이 원래의 100배 이상까지 팽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팽창한 별의 중심부에 철이 생기면 핵융합 반응은 끝나게 되는데, 가장 안정된 원자핵인 철이 생성되면 더 이상 핵융합 반응이 진전되지 않기 때문.
마침내 핵융합 반응이 끝난 별은 '초신성Supernova’이라 불리는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원소를 우주에 흩뿌리며 최후를 맞이한다. 초신성은 별의 일생 중 죽음의 단계로 마치 새로운 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신성 폭발 후 그 폭발의 중심에선 우주 괴물 ‘블랙홀Black Hole’이 태어나며 보통 은하에 중심에 자리한다. 최초의 별은 탄생에서부터 약 300만 년 후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 폭발을 통해 우주에는 탄소, 산소, 마그네슘, 철 같은 다양한 원소들이 흩뿌려진다. 별들의 속삭임이 시작된 것이다(이 원소들을 바탕으로 제2세대 이후의 항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주 탄생 5억 년 후 무렵에는 암흑시대에 성장한 가스의 밀도 높은 곳에서 별들의 섬 ‘은하(Galaxy)’도 태어난다. 최초의 은하는 비교적 소수의 별과 가스 그리고 우주먼지로 이루어진 '은하의 씨원시 은하'였다. 이 작은 원시 은하들이 몇억 년에서 몇십억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허블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충돌과 합체를 반복하면서 거대한 은하로 성장하게 된다. 이때 우주 크기는 현재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했다고 한다.
우주 탄생 후 약 91억 년이 흐른 무렵 지구와 같이 별 주위를 도는 행성(Planet)도 탄생한다. 태양계와 지구도 이 당시, 즉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쯤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한다. 지구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도 이런 과정을 통해 별이 만들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은 우리가 초신성 폭발의 잔해인 별 먼지로 만들어졌다고 즐겨 말했다고 한다. 고갱이 그림으로 던진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찾은 것 같다. 우리는 대폭발이라는 운동을 통해 태어난 우주가 만들어낸 별에서 왔으며, 우리 손 안에 별이 있는 것이다.
우리 손 안의 별이 수놓아져 있는 지금의 우주는 거시 구조로 볼 때 왜 이토록 편평하고, 온도는 어느 곳 어느 방향에서 영하 270.42℃가량으로 거의 균등할까? 그러면서도 왜 물질이 이리저리 한곳에 모여 은하, 항성, 행성을 이룰까? 그것은 우주 탄생 시점에 급팽창이라는 운동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5]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러시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알렉산더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 1888-1925)이 ‘프리드만 방정식’을 통해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처음 예견한다.
그리고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이 획기적 발견이라 불리는 ‘적색편이Red Shift, 적색이동’을[6] 발견하면서 사실로 밝혀진다. 적색편이를 발견함으로써 기존의 정적인 우주관은 무너지고, 팽창하는 동적인 우주관이 자리잡는다. 우주도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운동하는 우주라니!).
1990년대 초신성 관측이 가능해지면서 우주가 점점 더 빨리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빨리 가속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 발견의 애초 목적은 “우주가 미래의 어느 순간 갑자기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놀랍게도 팽창은 감속하지 않고 지금도 가속 중에 있다.[7] 풍선처럼 팽창하고 움직이는 우주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우주의 시작을 설명한 빅뱅 이론의 기반은 1915년 탄생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과학자들은 그가 만물에 대한 인류의 시각을 자기도 모르게 혁명적으로 바꿔놓았음을 조금 뒤에야 알아차렸다. 그때까지 믿고 있던 우주가 처음부터 줄곧 정적으로 똑같은 상태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정작 본인은 믿지 않았지만, 우리 우주가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주가 변한다는 뜻이다. 항성과 행성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것들이 움직이기 때문. 그들이 만들어낸 공간의 휘어짐 또한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물체 주위의 국지적인 영역에 통용되는 법칙은 우주 전체에도 통용될 수 있다.[8] 그럼에도 빅뱅 이론이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풀었을 때 가능한 답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폭발 이후 지금까지 138억 년! 100년의 시간을 채우기도 벅찬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우주의 나이. 우주도 운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겨우 100년. 우주의 탄생은 급팽창과 대폭발이라는 운동으로 시작됐고, 지금도 우주는 팽창하며 움직이고 있다. 138억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우주의 본질인 변화와 가능성을 담고 있는 운동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주와 지구의 탄생 순간을 보기 위해 양자 수트를 입고 했던 우주 여행으로 지구 시간은 고작 몇 초만 흘렀을 것이다. 현재의 지구별로 무사히 귀환한 것을 환영한다.
존재의 가장 큰 신비는 우리의 상상력 너머에 있고, 우리의 상상력과 수학적ㆍ철학적 이해력은 정말 보잘 것 없다. 어쩌다가 우리 뇌는 4차원 밖에 이해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우주 자체보다 복잡하면서도, 10억 개의 뉴런과 금실 같은 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빅뱅이 정확히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중력이 있는 지구별에 무사히 발을 딛고 있는 지금, 꼬리를 무는 의문 하나.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하나가 전부, 전부가 하나”라고 외치고, 노래하고, 쓰고, 춤췄던 모든 샤먼들, 신성한 사람들, 철학자와 과학자들, 그리고 살짝 정신 나갔던 사람들이 혹시 옳았던 걸까? 조금 견강부회식으로 말하자면 옳았을, 수도 있다.
■ 다음 연재 글: <운동 안내서>는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1부 – 안내서에 대한 안내서: 움직인다는 것
1장. 움직인다는 것_태초에 움직임이 있었으니
시작은 Movement
• 모든 것은 하나
[1] p204, 앤드류 R. 비엘의 《움직임 가이드북: 움직임을 위한 몸 제작 이야기》
[2] p11~12, 전자책, 조앤 버니코스의 《움직이는 습관: 생각을 바꾸면 일상의 모든 활동이 운동이 된다》
[3] p13, 전자책, 조앤 버니코스의 《움직이는 습관: 생각을 바꾸면 일상의 모든 활동이 운동이 된다》
[4] 사이언스올 과학백과사전 중에서, https://bit.ly/2vOwjZ0
[5] <“우주, 빅뱅 뒤 급팽창” 이론 입증…전 세계 ‘흥분’> 한겨레, 2014.3.18
[6] 저자 주: 1929년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계까지의 거리가 일반적으로 적색편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적색편이는 물체에서 나오는 빛이 파장에 따라 비례하는 것 또는 스펙트럼의 적색 끝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물체의 적색편이와 청색편이 현상은 ‘도플러 효과’로 과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7] p211,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또 다른 교양: 교양인이 알아야 할 과학의 모든 것》
[8] p69-70, 전자책, 크리스토프 갈파르의 《우주, 시간, 그 너머: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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