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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샵 Dec 08. 2021

회복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과 삶의 질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회복의 중요성

1998년 IMF 외환 위기 당시 나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사회초년생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다니던 한인 이발소 사장님께 들었던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발 중 나눈 20년 전 이야기가 모두 기억날 리 만무하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이발소 사장님의 뜬금없던 질문. 


"경제 대국이 된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글쎄요... 발달된 과학기술과 문화? 넓은 땅덩어리와 풍부한 자원 아닐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은 9시부터 5시까지만 일하기 때문이에요. 집중해서 일한 다음 충분히 쉬고 일을 하니 생산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미국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또 모두가 9 to 5를 하는 건 아니지만, 9 to 5가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긴 하지요."


당시 나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을 했었다. 쉬는 날 없이 일한 지 석 달쯤 되자, 마치 성능이 무뎌진 자동화 기계처럼 무기력하게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간 ESL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5시에 일을 마치긴 했지만,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였다. 운동과 공부를 하고 새벽 1시가 돼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ESL 수업을 땡땡이치고 바다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동네 야구장을 지나면서 봤던 광경 하나.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하는 야구 경기를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일 오후 5시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 - 워라벨! 하지만 불명예 1위의 한국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평균 12시간, 많게는 19시간을 일했던 지난날이었다. 최근 2년은 9시간만 일을 한다. 물론 내 목표를 위해 하는 일까지 생각하면 12시간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대부분 개인 사업ㆍ관리자 혹은 프로젝트 형태로 일을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을 다른 직원에 비해 더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심플 운동] 나는 ‘살기 위해’ 운동한다>를 연재하게 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일을 했었나 하는 때도 있었는데

하루 19시간 일하면서 매주 일요일은 밤을 새야 했고 쉬는 날은 한 달에 하루뿐이었던, 3개월 간의 모 대기업 사내 헬스클럽 오픈 프로젝트 기간도 있었다.    

오픈 이후엔 하루 12시간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말 그대로 주당 120시간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2018년 7월 1일, 기대 반 걱정 반 속에 주 52시간 근로가 시행됐다. 2004년 주 5일제를 도입한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가장 큰 기대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에 대한 실현이고, 걱정은 소득감소와 편법 운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OECD 국가 중 한국은 노동시간은 최상위권이면서 노동생산성은 하위에 속한다. 더불어 저임금 노동 의존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결과는 OECD 국가 중 과로사와 안전사고 같은 산업재해사망률과 자살률은 여전히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겨 주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최상위인 반면 생산성은 하위권 수준이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그에 반해 대부분의 선진국은 한국보다 훨씬 짧은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월등이 높고 삶의 질 또한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20년 전에 들었던 이발소 사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9 to 5를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선진국은 8시간의 노동시간도 많다고 더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은 주 30시간, 일본은 인구 형태에 따라 주 4일제 도입 등... 


선진국이라는 지위를 당당히 받게 된 한국도 사람을 갈아 넣으려는 행태에서 벗어나, 생산성과 삶의 질도 선진국이 된 상황에 걸맞게 추구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생산성은 충분한 휴식 후에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인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의 최대 효과는 최소한의 운동 시간, 충분한 에너지 섭취와 휴식의 밸런스가 맞을 때 극대화된다. <[완벽한 몸만들기] 몸을 망치는 오버트레이닝 – 주기화 원리 2편>에서도 했지만, 운동 시간이 길어지면 효과는 크지 않고 결국 몸을 망치게 되는 결과만 초래한다.


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회복의 중요성


한 때 스포츠계는 '오버트레이닝의 시대'라고 불리며, 운동 시간이 길면 성과가 좋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 과학이 발전하면서 체력과 경기력 향상에 필요한 운동 시간은 에너지 섭취와 회복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시간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로ㆍ피로ㆍ성과 사회'로 불리는 삶에서도 생산성 향상에 최적화된 최소한의 시간만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스트레스 예방과 더불어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는 시간이 주어져야 삶의 질과 행복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스포츠 선수의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은 단지 운동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진국의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도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경기력 향상과 생산성이 높은 결과를 내려면 최적화된 시간을 훈련과 노동에 투여해야 하는 동시에, 반드시 회복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에 합당한 보수를 지급하지도 않거나, 할 의향도 없으면서) 120시간 일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과 몰이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열정과 투혼 같은 정신력만 강조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체력을 올릴 수 있는 시간과 회복할 수 있는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웹툰과 드라마로 화제가 된 <미생>에도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몸만들기 운동이나 스포츠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에 필요한 훈련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최고의 선수들과 팀이 하는 훈련법을 본다면, 그들이 실제 운동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 듀크대학 풋볼 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매일 이 선수들은 웨이트 훈련실에서 모빌리티 훈련(Mobility: 종목에 맞는 움직임을 위한 기능성 훈련) 45분 후, 회복 훈련 20~30분을 한다. 이후 2~3시간 정도 실제 풋볼 연습을 하는 게 전부다. 


다른 예로 12개의 올림픽 메달(금 4, 은 4, 동 4)을 획득했으며, 3개 종목에서 전 세계 기록 보유자인 엘리트 수영 선수를 보자. 2008년 올림픽 당시에 한 인터뷰를 보면, 41세의 수영 선수 다라 토레스(Dara Torres)가 자신의 하루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전 6시 45분쯤에 일어나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한다. 그러고 나서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인 후, 연습을 하러 간다. 수영 연습은 8시에 시작해 1시간-1시간 45분 정도 수영한다. 그다음 잠깐의 웨이트 훈련과 저항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다음 대략 2시간 정도 저항성 스트레칭인 키하라(Ki-Hara) 스트레칭을 한다(이는 메인 운동시간과 맞먹는 수준이다).

 

2012년 올림픽 전, 허핑턴 포스트가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스트렝스 & 컨디셔닝 코치이자 미국팀 선수들을 훈련시킨 롭 슈워츠(Rob Schwartz)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슈워츠가 올림픽 선수의 하루에 대해 말한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보통 하루를 굉장히 일찍 시작한다. 오전 6시~7시 15분 사이에 아침을 먹고 첫 훈련 및 연습을 오전 7~8시에 시작한다. 어떤 운동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연습은 1주일에 5~6일, 한 세션당 2시간 정도로 하루에 두 세션을 연습한다.

스트렝스 & 컨디셔닝 세션은 보통 1주일에 3~4회 하며 세션당 1시간~1시간 30분 정도다. 선수들은 추가 훈련을 하며, 개인의 부족한 점에 집중하여 15~45분 정도를 하며, 웨이트 훈련실에서 추가 운동을 하거나 운동 스킬 훈련 중에 하나를 한다. 

이것이 끝나면 재활과 회복을 위해 스포츠의학 세션을 한다. 우리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회복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올바른 영양 및 수분 공급과 충분한 수면은 가장 중요하며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수들은 냉온 교대  목욕, 사우나 그리고 전신마사지기를 이용한 마사지로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Olympic Trainer Rob Schwartz On What It Takes To Train For The Olympics> 중에서

회복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완벽한 몸만들기] 당신 몸은 먹는 대로 된다>에서 완벽하고 건강한 몸만들기 핵심 구성요소의 중요도는 영양 60%, 운동 20%, 휴식과 의지가 각각 10%를 차지한다고 했다. 10%밖에 안 되는 중요도를 가진 휴식이지만, 이 휴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효과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운동만으로 좁혀보면 저항운동과 스트레칭 같은 회복운동 간의 비율을 무시하거나 하지 않게 되면, 머지 않아 근골격계 통증이 당신의 몸을 뒤덮기 시작할 것이다.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 평범한 우리들은 스포츠 선수처럼 회복시간에 공을 들이기는 쉽지 않다. 일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육아 혹은 학교까지 바래다줘야 하기도 하고, 청소와 빨래도 해야 하고, 반려동물도 챙겨야 하고, 그 외 인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모든 것들을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야 하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결국 제도와 사회적 시스템 조율을 통해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 맞다. 공동체의 생산성과 행복지수의 향상을 위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인구마저 빠르게 감소하고 있지 않은가(달리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는 뜻이다). 다른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출산휴직과 육아휴직이 어려운데 인구감소를 막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낮은 행복지수는 저절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금속노동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된 초보 선진국인 한국은 아직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여전히 해가 되는 오버트레이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노동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오버트레이닝 증후군에 걸리듯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산업재해사망률과 자살률은 여전히 부끄러운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철폐 같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과로사가 많은 한국에서 부끄러운 1위를 애써 외면하느라 개선의 노력과 분담의 노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에게 너무 집중된 일을 고용의 증대를 통해 나눠가져야 한다. 하지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 상황들이 개선되기 전까지 개인의 생리적 휴식 시간을 반드시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아주 짧은 시간들로도 가능하다.


물론 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노동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안다. 그럼에도 호흡이 너무 얕아 긴장하고 있는 상황을 알아채고 심호흡을 틈틈이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부디 모든 이들의 삶의 질과 행복도가 높아지는 진정으로 한국이 선진국 다운 선진국이 되길 희망해본다.

돌리 파튼의 <9 to 5>
<9 to 5>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돌리 파튼(Dolly Parton)이 1980년에 세상에 내놓은 노래로 영화 <9 to 5>의 주제곡이다. 노래의 가사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사를 요약하면 사장들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직원들을 그저 부품으로 취급하며 부려먹고, 그들의 지갑을 불리기 위해 9시부터 5시까지 바쁘게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의 노래지만 가사는 사회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영화 이후에 미국에서 직장 내 남녀평등을 위한 활동의 전설적인 캠페인 송이 되었다.


원문: 회복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과 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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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근로시간 최상위권, 행복지수 최하위권… ‘불행한 대한민국’> 세계일보, 2021.5.1
<오늘부터 주52시간 시대…저녁 있는 삶 열리나> 뉴스원, 2018.7.1

<獨보다 576시간 더 일하는 韓, 노동생산성은 38개국 중 27위> 더중앙, 2021.8.4

<[선진국의 근로시간 단축 현황은] 유럽의 주 30시간 “하루 8시간도 길다”> 월간중앙, 2018.6.18
<Olympic Trainer Rob Schwartz On What It Takes To Train For The Olympics> HUFFPOST, 2012.8.6

<세계 13위의 경제규모 그러나 노동자-서민 행복지수는 바닥> 금속노동자, 2016.4.25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사이트&SNS: http://푸샵.com페이스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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