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첫 직장은 직원 20 명 남짓한 조그만 규모의 외국 회사였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 회사가 대부분 그렇듯 영업 조직 중심으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대학을 마치기도 전에 4 학년 때 덜컥 들어간 이 회사는 내가 입사한 이래로 매년 성장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회사의 첫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13년 때 일이었다. 회사의 매출은 주로 액정 등 디스플레이용 전자재료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중심이었는데, 그 해 창사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꺾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인은 디스플레이 재료의 매출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기록적인 불황으로 일본 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법인의 긴축에 들어갔다. 영업을 장려하던 지사장님은 본사로 송환되고, 대신 숫자를 보는 관리 출신 지사장이 새로 부임했다. 소위 ‘칼잡이’의 등장이었다. 매해 성장을 하며 서로를 북돋던 분위기는 작은 밥그릇을 서로 뺏기 위한 견제와 혹시 모를 비위를 감시하는 상황으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갑작스러운 경직된 분위기가 직원들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직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은 또 있었는데 바로 앞잡이 직원 N 과장의 등장이었다.
앞잡이 직원은 대게 새로 들어와 입지를 확고히 해야 할 경력 사원이나,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느린 직원일 경우가 많은데, 이 N 과장이 그랬다. 새로운 사장은 기존 조직의 리더들을 마치 사기꾼 보듯 믿지 않았고, 대신 N 과장의 말은 대놓고 신뢰했다. 앞잡이 직원은 기존 조직과 사장 사이에서 공식적 비공식적 소통도 도맡았는데, 문제는 자신의 사익을 기준으로 직원들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N 과장의 탁월한 언변과 일본어 능력도 한몫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회의 시간에 새로 부임한 지사장에게 눈에 띄게 칭찬을 받고 수시로 면담하는 모습 때문에, 그는 순식간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조직은 빠르게 N 과장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많은 직원들이 퇴사했다. 나는 N 과장이 부상하기 전에 가장 큰 조직을 맡고 있던 팀장이었는데, 나도 어김없이 위기를 맞았다. N 과장이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나는 몰락하는 해였다. 급기야, N 과장은 나 대신 내가 맡던 팀을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이유도 없이 팀장을 내려놓은 것도 모자라 다른 팀의 팀원으로 강등되었다. 정치적 입김이 분명히 작용했지만, 추측일 뿐 증거는 없었다.
나는 평소 N 과장을 잘 대해 주려고 노력했기에 더 서운했다. 그가 경력 사원으로 들어와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경력 사원이라 외로울 N 과장의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을 도왔고, 심지어 회식하다가 늦으면 우리집에서 재우기도 했다. 그랬던 N 과장이 내가 맡던 팀을 맡게 되었을 때, 인간적인 위로나 사과가 있을 줄 알았지만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업무를 인수인계해 주겠다는 내 제안을 철저히 무시했고, 인수인계 교육이 있던 날은 직원들을 일부러 외근 보내 버리는 비열함도 보였다. 회사는 이제 N 과장의 시대가 되었고, 그것은 나머지 직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는 시대가 열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의 분노란!
나는 억울하기도 했고 모멸감에 휩싸여 버렸다. 머지않아 나는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내가 퇴사하고 2년 후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구조조정을 위해 왔던 그 지사장은 너무나 많은 직원이 한꺼번에 퇴사하는 탓에 예정된 임기보다 빨리 본사로 조기 소환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사장과 한 몸(?)이었던 N 과장 또한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퇴사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렸다. 자신들 때문에 전도가 유망하던 영업부의 상당수 직원들이 그만뒀으니, 어찌 보면 인과응보인 셈이었다. 나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N 과장의 몰락을 은근히 즐겼다. 그때까지도 서운함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있은 지 10년이 지났다. 나는 국내 대기업으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고, 이제 그 일에 대해서도 한층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이 복받치고 요동칠 때는 용서란 감정을 품기 어렵다.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인데, 감정의 파도에 휩싸여 이해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용서하고 마음에서부터 영원히 삭제시켜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분노의 고리에서 탈출해 나의 마음 챙김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안정적인 회사의 일상적인 루틴(Routine)에 취해, 변화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고 자기 계발에도 소홀했다. 내가 정당하다며 행동했던 일들도, 타인의 잣대에서 바라보면 비효율로 내비칠 수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배신한 N 과장의 선택은 지금도 잘못된 것이라 생각된다. 상황을 서로 바꿔 놓고 본다면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서로 그러질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 공자가 이야기한 나와 타인의 마음을 동일시하라는 서(恕)의 마음을 품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그때의 N 과장을 용서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시련을 겪고 나니 한층 더 성장한 느낌이 들었기도 했다면 너무 위선적일까? 그런 것보다 세상을 보는 나의 렌즈가 더 확대되어 타인을 이해하려고 아량이 커져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시간도 큰 작용을 한다. 복잡한 문제들도, 날카로운 마음의 생채기도 시간 속에 무디어지는 게 인간사 아니겠는가? 나의 발전을 위해서도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는 필요하다.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 바뀌지도 않을 구원(舊怨)을 품고 살기엔, 아직도 살날이 새털같이 많다. 나 역시 그 기억 속에서 늘 아파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