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대도 자산이다

by 구일영


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사람들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희망에 부푼다. 학창 시절 3월은 늘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서 뭔가 들떠 있는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한 반에 60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어색한 얼굴로 모였고, 몇몇은 혹시 지난 학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없는지 목을 길게 빼고 살펴보곤 하던 그 시절. 나는 소위 튀(?)는 학생이 아니라, 언제나 구석에 조용히 있었던 아이였다. 나는 전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늘 힘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 학기는 항상 두려웠다. 선생님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학교 생활을 하니 즐겁지 않으냐고 말하시곤 했지만, 조용하고 순한 아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의 희생양이 되기 쉬웠다. 악동들은 언제나 학급에 존재했고, 우정의 순서에 기대기보다는 주먹 세기 순으로 정리돼 버리고 마는 삭막한 서열 정리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차라리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는 것이 힘들고 두려웠다. 기대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다.


소극적인 나의 태도의 역사는 의외로 나름 장구하다. 기대하지 않는 나의 마음 자세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하루 노동에 지친 아버지는 새벽녘에나 들어오시곤 했는데, 그날이 크리스마스 날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저녁을 주시면서 착한 일을 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늘 밤 꼭 선물을 주실 거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고 양말까지 준비하고 잠들었다. 그런데 아마도 아이들 선물을 사 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아버지는 잊고 계셨던 것 같다. 선물 받을 기대에 부풀었던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해 애써 자는 척했는데, 선물을 사 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소곤거리는 핀잔 소리만 들렸다. 사실 나는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보다는 아버지가 사 올 선물을 손에 넣을 현실적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전혀 믿지도 않았지만 그런 척 발칙한 연기만 했던 것이다. 산타클로스면 어떻고, 아버지면 어때, 선물만 받으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사실, 기대는 나와 늘 조금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내 어린 경험 상 기대는 늘 벗어나기 마련이어서, 언제나 일부러 기대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너무 바랐다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 생길 마음의 상처를 대비한 자기 방어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성장하고 나서야 그것이 일종의 정서적 빈곤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태도는 주로 빈곤층의 자녀들이 가지는 심리 상태였다. 빈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태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일상에서 기대할 일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분위기 속에 장기간 노출된 사람은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게 된다. 보통 식당에 가면 '아무거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 많은 수는 바로 '정서적 빈곤'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면 과장일까?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은 빈곤을 경제적 능력의 부재로만 한정 짓지 않았다. 진정한 빈곤은 ‘자기 역량을 개발하고 발휘할 능력의 부재’로 정의했다. 새로운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끼며,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 것인데, 나도 아마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들도 비슷한 심리 상태였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는, 자유가 억압된 채 장기간 노출된 유태인 수감자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무관심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고통이 더 큰 상태였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차마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태도 속에 심각한 정서적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부러 너무 큰 기대를 품지 않으려는 자세도, 박해받거나 오랜 빈곤에 노출된 사람들의 공통된 자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 이루지 못할 것에 큰 기대를 걸다가 되려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심리가 낳은 방어기제다. 희망을 발판으로 기대를 걸어야, 자신의 능력도 개발되고 더 나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기를 더 원하니, 정서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대를 품는 마음가짐을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며, 심하면 심리 치료까지 필요하다.


살면서 나의 욕심을 처음으로 제대로 드러낸 것은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했을 때로 생각난다. 세계화의 바람이 불던 90년대 중반 해외 어학연수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그렇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낼 비용이었다. 그때 욕심을 부렸다. 어학연수를 갈 것이라고 부모님께 선언을 하고, 비용을 대기 위해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떠오른다. 점심값이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한여름 한강을 달리면 땀이 맞바람에 증발돼 티셔츠에 허연 등고선을 만들던 그때. 내가 강력하게 품었던 마음은 잘 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때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면,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직업반에 갔었다면, 지금 나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끔 생각하면 아찔하다.


생각해 보니, 그때 처음으로 내 마음에 집중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기대만 하느니, 차라리 안되더라도 내가 스스로 결정하자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공포에서 벗어나,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자 주변은 온통 기대할 만한 것으로 변했다. 나의 마음에 집중했을 뿐인데, 고맙게도 세상은 가능성을 내게 보여줬다. 기대도 자산이다.

keyword
이전 01화1. 우리 생각 속의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