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독일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유럽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독일은 유난히 가 볼 기회가 없었다. 나는 유럽에서도 부강한 독일에 대해 모종의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같이 일했던 대리점 사장 아들의 경험담은 나의 동경을 편견으로 바꿔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가 독일에서 직업 교육을 받았는데, 인종 차별이 아주 심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했던 것이다. 그의 말은 내게 독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품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난 독일에 출장을 가면 조심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독일에 대해, 이미 나는 타인의 의견을 근거로 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셈이다. 평소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거나, 잘 알고 있지 않는 존재나 사물에는 편견이 깃들기 쉽다.
한 번도 못 가본 독일 출장을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했다. 내가 직접 본 독일은 어땠을까? 예상과는 달리 독일은 유럽의 여타 어느 나라보다도, 아니 세계적으로도 준법정신이 우수하고 예의를 갖춘 사람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눈에 띄게 사람들이 유순했고, 특히 나와 같은 이방인을 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그 어떠한 차별의 마음도 읽히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유태인 말살 정책에 동조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것인지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법을 준수하고 질서를 지키며 거리를 깨끗하게 잘 유지하고 있는 독일인들을 보니, 과연 유럽을 선도하는 국가의 국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 편견은 금물이다.
특수 공예 지도사인 아내 덕분에, 나는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교육에 가끔 아내와 동행한다. 최근에는 고양시에 있는 이민자 통합센터에 공예 수업의 보조로 따라가곤 했다. 내가 갔을 때는 마침 중국의 중도 입국 자녀 부모를 위한 수업이 있었다. 중도 입국 자녀란 외국 여성이 한국 사람과 결혼하기 전, 원국가에서 혼인 관계로 낳은 자녀를 말한다.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원국에서 홀로 떨어져 살다가, 초청을 받고 한국에 온 이들은 법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철저한 이방인이다. 원국가에서 나고 자랐으니, 중도 입국 자녀들이 한국말과 문화를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국말도 서툰 자녀들은 한국의 교육 제도에 적응을 못하기 일쑤라고 한다. 아내가 다니던 통합 이민자 센터는 그런 아이들에게 주말 보충 수업을 하는 곳이다. 아내의 공예 수업은 중도입국자녀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을 위한 수업이었다.
처음 공예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들이 벌여 놓은 재료와 도구를 정리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몫이었다. 어머니 수강생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수업이 끝난 뒤 정리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인 중국인 어머니들 모두가 우리의 뒷정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주 깨끗하고 빠르게 뒷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중국인들은 자기중심적이라는 나의 편견이 과감하게 깨졌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인정과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던 계기였기도 했다.
우리는 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다. 불안은 자신의 것을 누군가 뺐었다는 박탈감으로부터 출발한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 어느 나라고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시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부상한 극우 세력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혐오 콘텐츠로 불안을 조장해 조회 수를 올려야 돈벌이가 되는 극우 유튜버가 넘쳐나고, 이들로 인해 성별, 지역, 세대, 이념으로 사분오열된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이다.
불안과 혐오의 중심에는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타자화(他者化)에 주목한다. 집단 속에서 관계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이 엉뚱하게도 타자화의 원인이 된다. 자기 집단에 대한 맹목적 사랑을 부르는 옥시토신이 역으로 타집단에 대해서는 잔인함의 원흉이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의 무한정 사랑은 자기 집단에서만 유효했다. 인간의 역사 속 수많은 유혈 전쟁이 타자화의 증거다. 하지만 인간은 다정함으로 살아남았다. 인간은 원시 도마뱀의 뇌로 느끼지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존재 아닌가? 인간은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정하였기에 살아남았다. 살육을 부르는 편견과 이기적인 본능을 억누르고, 이타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핵심에는 이성과 교양이 존재한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이성과 교양을 함양한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공감 능력을 키우고, 철학을 읽으며 참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혐오와 불안의 시대에 싹튼 뿌리 깊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으며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을 사실에 대해 편견의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삶의 이치를 깨닫는 교양을 추구하는 것은 편견에 빠져 '배운 괴물'이 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양식을 갖춘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편견과 혐오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로 '양식(良識)을 갖춘 대중'이 많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편견 가득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지금, 내 마음을 부여잡고 이성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교양을 가꿔주는 독서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