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부모만 거울삼아 바라보며 사회성을 기르다가, 문득 자신의 자아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친구를 갈망하게 되는 시기.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의 질풍노도는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른 곳을 바라봤던 것 같다.
고교 2학년이었던 1989년 가을 어느 적막하고 깊은 밤이었다. 친구의 발뒤꿈치를 보면서 숨죽여 따라가던 나는 학교 담장을 넘었다. 건물 진입 이후 우리는 각자가 맡은 층으로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한 대자보를 복도에 붙이고, 유인물을 각 교실에 뿌렸다. 가슴은 쿵쾅거렸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 움직이는 불빛이 아래쪽 계단을 통해 보였다. 누군가 계단에서 위층을 향해 올라오고 있음이었다. 틀림없이 경비 아저씨였다.
"튀어!"
위험을 감지한 우리는 2층으로 달음질쳤다. 건물 뒤로 난 창문을 황급히 열었고,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명씩 뛰어내렸다. 한참 떨어졌다, 마치 빠져나오지 못할 심연으로 추락하는 무엇처럼. 학교 건물은 예상보다 층고가 높았다. 그 짧은 찰나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우리는 전교조를 동조하는 소위 의식화(?) 된 학생들이라 불렸다. 진정으로 의식화된 것이었던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친구들은 매일 밤 대자보와 유인물을 작업할 장소가 필요했고, 마침 부모님이 기거하는 방과 조금 떨어져 있고 출입문도 반대편인 우리 방은 안성맞춤인 좋은 아지트였다. 평소 전교조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유인물 작업을 같이하며 조금씩 그들에 대한 탄압에 대해 알아갔다. 어느 날 해직된 선생들이 학교 정문으로 온다는 정보를 들었다. 우리는 그 선생님들에게 동조한다는 의미로 종이비행기를 날리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학교에 배포하기로 했던 날이 바로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린 날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던 그 당시에 나에게 이 사건은 작은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유인물을 뿌리고, 경비 아저씨를 피해 달아났던 다음날, 학교 어디에도 대자보와 유인물의 흔적은 없었다. 학교 측의 발 빠른 수거 작업이 들어갔음이 분명했다.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두 해 뒤 대학에 진학했을 때, 선배들은 내가 겪었던 종이비행기 사건에 흥미를 보였다. 자연스럽게 운동권 동아리 가입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 정권 시기였다. 6.29 선언으로 민주화 이미지를 포장하려 했지만 캠퍼스에는 여전히 공권력의 감시와 감청이 만연했던 시기다. 학교 곳곳에 숨겨진 감청 장치를 피하기 위해 '구일영'이라는 활동명까지 썼다. 다른 의미는 없었고 학번의 앞 3자리를 따 만든 가짜 이름이었다. 최루탄 냄새와 깨진 벽돌 조각이 캠퍼스에 난무하던 시절, 1991년의 봄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권경원 씨가 쓴 『1991, 봄』에 묘사됐듯 우리 모두는 입학과 동시에 생각 없이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그리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배들에 대해서 일종의 부채감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의 전무후무한 분신 정국 속에서, 나의 작은 모험도 하루하루 그 규모를 키워갔다. 민노래를 배우고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몰래 봤다.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동네 가게의 공병을 훔쳤다. (당시 가게 주인 분들에게 사죄드린다...) 나의 모험은 한층 더 가열되는 듯했다.
모험은 사전적 의미로 무릅쓸 모(冒), 험난할 험(險)을 써서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행한다는 뜻이다. 모험의 결과로 성공이 항상 보장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무릅쓰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자세가 되어있는지의 여부다. 주어진 틀에서 제도가 인정하는 바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모험이란 일탈을 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0년대 고조되고 꽃을 피운 민주화는 바로 그 잘못된 제도와 독재자에 대한 항거였다. 학생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모험'을 해야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종이비행기 사건은 순수한 열정으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교정을 떠나게 된 선생님들을 위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하다니. 그날, 유실된 대자보와 유인물을 대신해 우리는 각 반을 돌아다니며 종이비행기를 접어달라고 친구들에게 요청했다. 이윽고 선생님들이 오셨을 때, 수백 개의 비행기가 교정을 날아다녔다. 뭉클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의 모험도 그 종이비행기를 타고 높이 날아갔다. 우리가 연대하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던 경험이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자 모험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모험은 다른 형태로 다가왔다. 사활이 달린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일을 하고, 정열을 태운다. 사업 상의 위험이 크거나, 신규 사업일 경우는 일부러 사내 벤처를 통해 진행하거나, 아예 분사시키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모험의 변주로 볼 수 있다. 모험의 의미는 도전으로 바뀐다. 도전의 결말이 행여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를 질책하거나 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사원들을 장려하는 것이 현대의 혁신 기업의 특징이라며 교육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모험을 통해 결국은 성장하니까. 그날 나도 연대란 아름다운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본다.
오래갈 듯했던 나의 모험은 결국 역설적인 결말을 맞았다. 종이비행기로 날리며 시작된 나의 모험은 대학으로 옮겨 두 손에 쇠 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격정적으로 바뀌는 듯싶었다. 그러나, 어느 늦가을 생일을 맞이한 동아리 선배를 축하하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파국을 맞았다. 평소 우리가 행하는 일이 가난한 자를 위하는 일이라 힘주어 말했던, 내가 존경했던 그 선배는 알고 보니 부유한 집 출신이었다. 그날 사업하시는 선배의 어머니가 준 값비싼 선물을 자랑하는 선배를 '부르주아'라고 태연하게 놀렸다. 그러나 누구도 나만큼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그들의 열정이 내게는 위선으로 보였다. 동시에 아무도 나와 같은 절대 빈곤에 놓인 사람들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자 갑자기 서글퍼졌다. 나는 학생 운동도 참가할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군대에 자원입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