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인생에도 종점이 있다면

by 구일영

90년대 대표적인 청춘 영화 중 <비트>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중년인 정우성, 고소영이 앳된 모습으로 나와, 당시의 X세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다. 내 뇌리에 자리한 영화의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떠올리자면 주인공 민(정우성 분)이 오토바이를 몰고 긴 터널을 지나는 장면이다. 민은 고속으로 오토바이를 달리던 중, 핸들을 잡았던 두 손을 놓고 눈까지 감는다. 터널의 소실점은 끝이 없는 듯하다가, 서서히 밝은 빛으로 바뀌며 가까이 다가온다.


'터널'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탈출할 수 없는 청춘의 방황과 두려움의 메타포(Metaphor)이며, 그 긴 터널을 손을 내려놓은 채 위태하게 달리는 주인공 민의 모습은 바로 그 속에서 고통받아 고뇌하는 현대의 청년 자체였다. 난 언젠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평했던 것 같다. 사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터널 반대편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출구의 빛이다. 터널의 형태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입구가 시작점이라면, 출구는 종결점을 의미한다. 고난으로 얼룩진 청춘 시절도 그 끝이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단정 지어 버린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 우리의 자유 의지와는 별개로, 우리는 한평생 살다가 다시 태어난 별로 돌아간다. 철학자들은 삶의 종점이 있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집착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수록, 생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그리고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이야기했던 로마 시대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시구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진정한 의미다. 삶의 유한성이 오히려 순간의 참 가치를 일깨워 준 사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종점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멸의 시점을 안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차이의 중심에는 삶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긴장감이 있지 싶다. 언제 올지 모를 마지막을 염두해 행동을 삼가고 불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비축하고 대비하는 자세는 현명하게 간주된다. 사고를 대비한 보험이나, 노후를 준비하게 위해 필요한 연금, 병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운동과 다이어트 등이 갑작스러운 변고(變故)에 맞서기 위한 인간의 대표적인 노력의 모습이다.


반면, 삶의 유한성을 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차피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면 아낄 필요가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죄다 써버리는 소위 '탕진잼'이라, 임기 말년의 공직자들의 해외 외유 등이, 종결점이 예견된 사람들이 품기 쉬운 삶의 태도다. 이는 정신분석학자 라이너 풍크(Rainer Funk)가 스승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의 유작들과 미발표작을 묶어서 펴낸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자아의식이 약하거나, 삶을 무의미하게 산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를 크게 느낀다고 전한다.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마음은 어찌 보면 낮은 자아의식의 표식이다. 삶과 죽음의 양극성을 두고도, 그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종점을 알면 미련이 싹튼다. 함께 순장(殉葬)하는 것도 아닌데, 살아생전에 있는 모든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심이 더 거세지는 것은 아닐까? 종결점은 시작과 끝의 분명함, 그리고 예측 가능성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온다. 왠지 끝을 안다는 것은 스포일러를 보고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허탈함도 준다.


전 직장 선배 중 기차로 가는 출장을 유난히 좋아하는 S 부장님이 계셨다. 목적지 앞까지 가는 접근성과 예약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어서, 승용차를 선호하던 나는, 불편하면서도 감히 왜 기차를 타고 가시는지 여쭤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 어렵게 물어봤었는데, 당시 S 부장님의 말씀은 기차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가는 동안에 잘 수도 있고,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또 책 한 권을 천천히 음미하듯 볼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을 설명해 주셨다. 그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그 선배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나 역시 기차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기차 여행의 제일 큰 메리트는, 종점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는 내가 생각한 궤도를 이탈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기로에 결론지어야 할 선택이 늘 있었다. 오히려,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꾸준히 되는 일은 없었다. 늘 차선책을 생각해야 했고, 그럴 경우를 대비한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살아야 했다. 역설적으로 기차는 그렇지 않다. 한 눈을 팔거나, 잠시 딴생각을 해도 기차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마치 인생의 변치 않는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바라보는 경외감이 든다.


종결점이 정해져 버려 재미없을 것 같던 인생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면 새롭게 보인다. 너무 빨리 달려 스쳐 지나가 버리는 바람에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한다. 영원할 것 같아 조금은 무시하고 살았던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일이든 끝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통찰을 준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르는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까지 어떻게 가느냐다. 삶에서 속도와 위치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것 같다. 오늘 퇴근길에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까지 가는 차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자. 분명히, 알지 못하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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