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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Dec 10. 2017

쓰고, 누군가는 글을 읽는다

생각보다 적극적인 의사소통인 쓰고 읽기

술자리에 갔다. 친한 친구인 A와 A의 친구인 B와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술자리 자체가 조금은 루즈하고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리 콘텐츠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늘 우리가 주고받았던 어떤 철학적 사유가 아닌, 그저 그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일까. 이야기를 하는 내내 좀처럼 그 술자리에 빠져들지를 못하고 겉도는 나 자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야기에 ‘맛’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즐거운 포만감에 사는 맛을 제대로 느끼듯이 대화의 결이 맞는 즐거운 이야기 자리를 가지면 그와 어찌 보면 유사한 사는 맛을 느끼게 된다. 그런 자리를 가급적 많이 만들고 싶지만 세상에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가 않다. 그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니 어쩌면 1명 혹은 2명 정도만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술자리에서 내가 타인에게 말을 하고, 타인은 내 말을 들으며, 반대의 행위 또한 일어나고 있었지만, 사실 진짜 대화가 오고 간다고는 볼 수 없다. 내 영혼이 제갈길을 잃고 자꾸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탓이다. 결국 우리는 그리 얻을 것 없는 시간만 보내는 사실 크게 의미 없는 말의 교환만 한 채 자리가 종료되길 기다리는 형국이었던 셈이다.


누구든 사람은 자기를 잘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어떤 특정 상황에서, 혹은 어떤 삶의 궤적 속에서 나만의 경험을 나만의 감성으로 표현해냈을 때 그것을 정확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만약 그런 사람과 지금 술 한잔 하고 있다면, 그날은 정말로 같이 밤을 세가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옆에 아무리 매력적인 여성이 술을 마시고 있더라도 그날만큼은 조금은 그 이성에게 관심을 잃을 것만 같다.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글을 쓰고 누군가가 글을 읽는 행위도 진짜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아닌가 싶다.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글에 관심을 갖고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어 내가 하는 말(정확히는 쓰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 행위가 아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고 내 글에 적극적인 독서를 해주는 분들이야말로 정말 내게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 이야기의 진심을 알아내고자 열심히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때때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지속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을 다 알고 있다. 감사하다.) 그 사람들과 나는 비록 일방향성이지만 한편으론 적극적인 의사소통, 진짜 대화를 하고 있다. 때론 댓글이나 만남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보다 깊은, 적극적인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저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지금 당신이 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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