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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Feb 25. 2018

원했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왜 20대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고 30대에 더 깊어지는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그저 일상생활을 하든 모든 것이 ‘인간’과 ‘인간’의 화학적 결합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나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저 각자의 의견이 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각자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때론 같이 가고 때론 응원하며 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근데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5년 정도 지났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회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은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틈만 나면 남을 헐뜯고, 본인의 공을 과장하며, 편을 가르고 오늘 내가 얼마나 더 주목받았는지에 집중하는 사람들로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매일 목도하고 있다. 그저 무시하면 그만이지 하다가도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 큰 사람들(이 사람들의 주장은 당연하게도 편향되고 외골수인 경향이 크다.)로 쏠리고, 또 사람들은 그 주장을 듣고 바로 판단하여 (이 또한 짧은 시간에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서 필연적으로 몰이해가 발생한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들을 종종 경험하다 보니, 아 우리네 삶이라는 게 참 팍팍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평화로울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마치 뇌에 그런 것들이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처럼 집단을 이루어지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나 혹은 우리 집단 외에 다른 자들(the others)를 만들어서 반목하는 것일까? 내 짧은 식견으로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반목은 그들의 생존 욕구의 발현인가? 능력 부족을 숨기기 위한 가장 쉽고 적절한 대책인가? 


사회생활이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삶에 대한 낭만은 사라지고 온갖 암투와 비리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저 모든 것을 놓을 수도 혹은 진흙탕물 속에 뛰어들 수도 없는 요즘, 그렇다면 나는 적절한 ‘경계’에서 살짝 발을 담갔다가 또 하루는 살짝 발을 떼었다가, 그렇게 적절히 마음을 조절하면서 살면 되는 걸까. 


모두가 평화를 노래하지만. 

우리 모두의 주변은 모두 전쟁 중이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동료 누구나 보이지 않는, 혹은 확연히 드러난 갈등을 해결하고자 서로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인생이 너무나 짧다. 20대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조금 있으면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현재 40대 50대인 사람들도 나보다 그렇게 많이 살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근데 그 조금 더 산 알량한 지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우위를 과시하고 자신의 스탠다드에 타인을 맞추려 하고, 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도대체 왜 사는가? 


언젠가 죽는다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살고 있다.

 

참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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